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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불교 > 불교명상/수행
· ISBN : 9788970095363
· 쪽수 : 416쪽
· 출판일 : 2012-01-30
책 소개
목차
서문_아침 죽은 먹었는가? 그럼, 발우나 씻게나
추천사_미야모토 다이호오(宮本大峰) 방장 스님
읽기 전에_본서 『무문관 참구』의 특징
해설_간화선 수행의 교과서,『무문관』
무문의 자서(無門의 自序) / 선종무문관
제1칙_ 조주구자(趙州狗子) / 조주의「무」
제2칙_ 백장야호(百丈野狐) / 백장의「불락인과?불매인과」
제3칙_ 구지수지(俱?竪指) / 구지의「한 손가락 선」
제4칙_ 호자무수(胡子無鬚) / 혹암의「달마는 어째서 수염이 없는가」
제5칙_ 향엄상수(香嚴上樹) / 향엄의「입으로 가지를 물고 매달려 있을 때 어떻게 대답할까」
제6칙_ 세존염화(世尊拈花) / 세존이 꽃을 드니 가섭이 미소 짓는다
제7칙_ 조주세발(趙州洗鉢) / 조주의「발우나 씻게나」
제8칙_ 해중조차(奚仲造車) / 월암의「수레를 해체하면 어떻게 되는가」
제9칙_ 대통지승(大通智勝) / 청양의「대통지승불」
제10칙_ 청세고빈(淸稅孤貧) / 조산과 청세의 청빈
제11칙_ 주감암주(州勘庵主) / 조주와 두 암주의 주먹
제12칙_ 암환주인(巖喚主人) / 서암의「주인공」
제13칙_ 덕산탁발(德山托鉢) / 덕산이 발우를 들고 되돌아가다
제14칙_ 남전참묘(南泉斬猫) / 남전이 고양이를 베다
제15칙_ 동산삼돈(洞山三頓) / 운문의 세 차례 방망이와 동산의 깨달음
제16칙_ 종성칠조(鐘聲七條) / 운문의「종소리가 나면 어째서 가사를 입는가」
제17칙_ 국사삼환(國師三喚) / 혜충국사가 세 번 부르고 시자가 세 번 대답하다
제18칙_ 동산삼근(洞山三斤) / 동산의「마삼근」
제19칙_ 평상시도(平常是道) / 남전의「평상심이 도」
제20칙_ 대역량인(大力量人) / 송원의「대역량인은 어째서 다리를 들지 못하는가」
제21칙_ 운문시궐(雲門屎?) / 운문의「똥 덩어리」
제22칙_ 가섭찰간(迦葉刹竿) / 가섭이 아난에게 법을 전하다
제23칙_ 불사선악(不思善惡) / 육조의「선도 악도 생각지 않을 때 너의 본래면목은」
제24칙_ 이각어언(離却語言) / 풍혈의「말에도 침묵에도 걸리지 않는 한마디」
제25칙_ 삼좌설법(三座說法) / 앙산의「대승의 법은 사구를 여의고 백비를 끊는다」
제26칙_ 이승권렴(二僧卷簾) / 법안의「일득일실」
제27칙_ 불시심불(不是心佛) / 남전의「아직 사람들에게 설하지 않은 법」
제28칙_ 구향용담(久響龍潭) / 용담이 등불을 ‘훅’ 불어 끄니 덕산이 깨닫는다
제29칙_ 비풍비번(非風非幡) / 육조의「바람도 깃발도 아니고 마음이 움직인다」
제30칙_ 즉심즉불(卽心卽佛) / 마조의「즉심즉불」
제31칙_ 조주감파(趙州勘婆) / 조주의「오대산의 노파를 완전히 감파했다」
제32칙_ 외도문불(外道問佛) / 세존의 거좌와 외도의 깨달음
제33칙_ 비심비불(非心非佛) / 마조의「비심비불」
제34칙_ 지불시도(智不是道) / 남전의「마음은 부처가 아니고 지혜는 도가 아니다」
제35칙_ 천녀리혼(?女離魂) / 오조의「천녀의 육체와 영혼, 어느 것이 진짜인가」
제36칙_ 노봉달도(路逢達道) / 오조의「말과 침묵을 초월한 자를 어떻게 대하겠는가」
제37칙_ 정전백수(庭前柏樹) / 조주의「뜰 앞의 잣나무」
제38칙_ 우과창령(牛過窓?) / 오조의「머리도 몸도 통과했는데 어째서 꼬리만 통과 못하는가」
제39칙_ 운문화타(雲門話墮) / 운문의「말에 떨어져 버렸군」
제40칙_ 적도정병(?倒淨甁) / 백장의 주지 선발시험에 위산이 정병을 차 버리다
제41칙_ 달마안심(達磨安心) / 달마의「너의 마음을 이미 편안하게 했느니라」
제42칙_ 여자출정(女子出定) / 문수와 망명의 여인 깨우기
제43칙_ 수산죽비(首山竹?) / 수산의「죽비를 뭐라고 부르겠는가」
제44칙_ 파초주장(芭蕉?杖) / 파초의「주장자가 있으면 주고 없으면 뺏을 테다」
제45칙_ 타시아수(他是阿誰) / 오조의「석가와 미륵을 종으로 부리는 그는 누구인가」
제46칙_ 간두진보(竿頭進步) / 석상의「백척간두에서 어떻게 나아가겠는가」
제47칙_ 도솔삼관(兜率三關) / 도솔의 세 관문
제48칙_ 건봉일로(乾峯一路) / 건봉의「열반으로의 한 길」
황룡삼관(黃龍三關) / 황룡의 세 관문
색인
무문관 불조 법계표
리뷰
책속에서
방장: ‘무’를 보았느냐?
김 : 보는 자도 없고 보이는 것도 없습니다.
방장: 설명은 필요 없다. 보았으면 본 것을 그대로 보여라.
자, 어떻게 보이더냐?
김 : …….
방장: ‘무’가 되는 것은 자신을 잊은 듯한 기분이 되는 게 아니다.
하물며 그 기분을 설명하는 것은 더구나 아니다.
한 점 남김 없이 ‘무’에 죽어라.
“입을 열면 곧바로 진리를 놓치고, 입을 다물어도 또한 잃는다. 입을 열지 않거나 다물지 않아도, 십만 팔 천 리.” 이것은 ‘사구를 여의고 백비를 끊었다’는 말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대승의 법은 입을 열어 말로 표현하는 순간 놓쳐 버린다. 그렇다고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어도 잃어 버린다. 어떻게 하더라도 모두 다 틀린다.
설법은 스스로 설법이라 하지 않는다. 입을 열 때 연다 하지 않고, 다물 때 다문다고 하지 않는다. 무엇인가를 의도하면 그만큼 멀어진다. 눈이 있는 자는 보고, 귀가 있는 자는 들을 것이다.
남전이 승의 질문에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고 물건도 아니다.”라 외친 것을 평해서 무문은 “자기의 재산을 깡그리 탕진한다. 빈털터리 그 모습이 실로 꼴불견이다.”라고 한다. 남전이 ‘자기의 재산을 깡그리 탕진한다’는데, 그 탕진한 ‘재산’이란 무엇을 말할까? 원래 무일물(無一物)인데 재산을 숨긴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무일물의 세계에서는 아무리 재산을 탕진해도 파산이란 없다.
이렇게 재산을 모두 탕진하여 한 푼도 남지 않은 남전을 향해 무문은 “빈털터리 그 모습이 실로 꼴불견”이라고 욕을 퍼붓는다. 그러나 실은 ‘설하려 해도 설할 수 없는 법’ 그 자체를 사는 무일물(無一物)의 남전에게 최대의 찬사를 보내고 있다. 빈털터리 그 모습, 정말 멋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