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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70128597
· 쪽수 : 156쪽
· 출판일 : 2010-12-10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거꾸로 열리는 세상-제주 신화
궉새를 부르다
거꾸로 열리는 세상
서천꽃밭, 꽃감관
포세이돈을 위하여
해바라기 신화
부신(副神) 칠성아기 전설
화석의 시간들
그림자놀이
달빛에 꼬리가 숨는다
하늬바람이 불어와
새들의 비상
산 그림자를 헤아리다
꽃향기를 좇다가
태양을 들어 올리다
태양의 기록
할로영산 궤네깃도
영(靈)을 위한 월광곡
아라비안나이트, 산적과 도둑
민들레꽃 씨앗이 바람에 날리고
바람에 잎사귀들 춤춘다
날개 잃은 천사
꽃잎을 살라먹고
거친 들판에 말 달리자
숲에서 새들이 날아오르다
빗방울이 길을 내며 흘러가듯
불꽃놀이
산유화 뿌리줄기, 샘물
가시나무 사이로
부엌 신, 조왕할망
해상왕국을 세우다
불씨를 새기다
수평선을 흔드는 소리
깊은 밤을 날아가는 반딧불들
진달래꽃 흐드러지다
범천총의 눈
제2부 해안선을 봉합하다
해안선을 봉합하다
티벳, 고도를 날다
가을의 전설, 억새들
겨울의 신부
하품
식구들
날개
몸에 새겨지는 생의 채찍들
생선에게도 혀가 있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거미줄, 부드러운 혀
부레
혼이 타는 냄새
꼼지락 여자
꽃
미당 생가에서
죽은 나무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오이도
등 푸른 바다의 시간
가랑잎 손바닥
파문
라디오 송신소
사라진 소 떼에 관한 기억
다시 꽃
세상의 딸들에게
연극
허공을 딛는 발자국들
일몰 후, 인디언 썸머
송신소 가는 길
오보에 리듬 같은 바람
이어도
작품해설 : 네겐트로피를 꿈꾸며_김석준
저자소개
책속에서
궉새를 부르다
고운 무명천에 쓴 먹빛 사연, 편지를 든 두 손이 떨려온다. 그녀의 눈빛이 수려한 필체의 물살을 타고 흐르다가 어느 굽이에선가 멈춘다. 가서 안부만 전하고 오겠다던 님이 활짝 핀 꽃향기에 취해 오늘도 못 온다는 소식을 보냈는가. 이승과 저승의 인연을 이어준다는 궉새. 신화 속의 새를 간절하게 기다린다. 눈앞을 빗겨 나는 새들이 궉새가 아닌지. 하늘의 언저리를, 나무의 흔들림을 유심히 바라본다. 두 눈의 눈물로 베틀을 짜고 몸에서 풀린 실로 비단 이불을 짜서 오지 않는 님을 애타게 기다린다. 비단 이불에 수놓은 이름을 보고 님이 오신다면, 짓무른 마음속에서 지웠던 실올들, 모두 다시 살아난다고 전해다오.
해바라기 신화
제주 주년국에 살았다는 소사만이, 일찍 부모를 여의고 어렵게 산 사만이가 장가를 들었지요. 능력이 없었던 그는 아내의 머리까지 잘라야 했지요. 그의 부인은 비단결 같은 머리를 자르면서도 남편을 원망하지 않았지요. 천성이 착한 남편이 머리를 판 돈으로 양식 대신 총을 사들고 왔을 때, 그녀의 가슴엔 먹구름 드리우고 사나운 바람이 불었겠지요. 그래도 아내는 남편을 이해했지요. 사냥에 미쳐 산천을 쏘다니며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날에도, 빈손으로 들어오는 날에도 그의 지친 발을 어루만져줬지요. 남편의 사나운 잠을 어루만지는 아내, 들짐승과 산짐승에 쫓겨 벼랑에서 떨어지는 순간에도 해바라기처럼 그를 환하게 비춰주고 있었지요. 남편이 주워온 해골을 날마다 닦고 문지르며 정성을 다해 기도를 드렸고, 그 정성으로 가세는 불같이 일어났지요. 고방에 놓여 있던 해골은 신선이었고 곧 저승차사들이 잡으러 올 거라고 귀띔을 해주었지요. 부부는 놀라 온갖 정성을 다해 차사들을 대접해서 보냈고, 한 상 거하게 얻어먹은 저승차사들이 그들의 정명을 삼십이 아닌 삼천으로 고쳐주었지요. 삼십(三十)에 획 하나를 더해 삼천(三千)이 되었다는 장난 같은 운명, 사소한 삶에서 운명을 엮은 사람들, 어머니의 어머니, 아버지의 아버지 이야기가 고방 속에 감춰져 있었지요.
거미줄, 부드러운 혀
가끔씩 아이들에게 심부름을 시키다 보면
어릴 적 멋모르고 했던 거짓말들이 생각난다
어머니가 콩나물 사오라고 하면
몇 백 원쯤 비어 있는 콩나물 비닐봉지를
아무렇지 않은 듯 내밀었고
내 거짓말은 요술주머니 같아서
어머니의 마음을 잘도 구슬려주었는데
그때 내 말이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어머니는 알고 계셨을 거다
내 얕은 수를 다 꿰뚫고 있으면서도
푸성귀 같은 거짓말들을 묵인해주셨다
거짓말을 수없이 했던 이력으로
나는 지금 상상력의 거미줄을 치는
거미와 같은 운명을 살게 되었으니
어둠을 견디고 새벽이슬을 머금은
씨실과 날실들이 어느새 탄탄한 기둥이 되어
생의 주춧돌로 박히고 만 것인데
푼돈 슬쩍 떼고 갖다 주는 것으로 봐서
오색 풍선 아이들도 부풀리고 꺼뜨리는
말의 오묘한 질감을 알고 있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