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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청소년 > 청소년 문학 > 청소년 소설
· ISBN : 9788971996119
· 쪽수 : 208쪽
· 출판일 : 2014-06-30
책 소개
목차
마을 9 / 동물원 19 / 우리 32 / 목소리 46 / 이유 59 / 전사 67 / 선물 84 / 식사 92 / 법 104 / 연 119 / 길 139 / 시험 157 / 열쇠 177 / 탈출 196
리뷰
책속에서
“제발 목소리 좀 낮추라니까!”
라마가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하늘을 살펴보며 애원하듯 말했다.
형제는 깜짝 놀라 이 동물을 보았다가 다시 저 동물을 보았다. 심장이 물수제비를 뜨는 돌처럼 통통 뛰었다. 안드레이는 마린 삼촌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동물은 네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어. 비밀을 간직할 줄도 알고.’ 동물이 말을 한다는 사실은 저희끼리만 알면서 사람에게는 비밀로 간직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틀림없었다. 호들갑을 떠는 게 실례겠지만 안드레이는 어쩔 수 없었다.
“말을 하잖아!”
“그래서 뭐? 우린 말하면 안 돼? 우리한텐 얘깃거리가 없을 거라 생각해?”
샤무아가 말했다.
“사람들은 늘 떠들지. 입을 다물고 있지 못해. 샌드위치 더 없어? 만지지 마, 세균투성이니까 하고. 부탁하는 게 아니라, 시키는 거야 하고. 우리라고 말하지 말란 법 있어?”
라마도 말했다.
알리체가 나이를 먹어 감에 따라 동물들도 나이를 먹어 갔다. 세월은 알리체에게 새롭고 놀라운 것을 가져다주었으나, 동물들에게는 그런 선물이 아닌 따분함을 가져다주었다. 동물의 세계에선 어떠한 도전이나 모험도 펼쳐지지 않았던 것이다. 재규어, 긴팔원숭이, 들고양이, 사슴. 이 모든 동물은 알리체와 같이 아침에 깨어났다가 밤이면 똑같이 잠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동물은 나이를 먹었고 끝내는 죽음에 이르렀다. 알리체가 걸음마를 떼던 무렵 좋아했던 오소리는 열 살 생일 때 털이 잿빛으로 변하더니 죽었다. 공작은 어느 날 저녁에 보니 눈부시게 아름다운 깃털 사이에 묻혀 쓰러져 있었다. 평생을 동물원에서 살던 재규어가 죽었을 때 알리체는 열네 살이었다. 재규어는 추운 날씨를 싫어했고 관람객을 무서워했다. 털이 까맣다 못해 푸르스름했다. 알리체는 제 모습이 재규어의 구릿빛 눈동자에 비치는 걸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재규어의 눈빛은 언제나 알리체 너머 정글을 찾고 있었다. 눈 내리는 들에 서서 재규어 무덤을 파는 아빠를 도우며 알리체는 죽음이 재규어를 자유롭게 해 주어 이젠 덩굴진 포도나무를 올라가고 따뜻한 강물을 핥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길 바라며 울었다.
알리체는 여전히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쾌활했지만, 그 뒤 몇 년 사이에 친구와 만나는 시간을 줄이고 더 많은 시간을 홀로 보내며 생각에 잠기고는 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문이 닫힌 동물원에 찾아가 동물들을 쓰다듬고 말을 걸면서 홀로 동물들과 마주했다. 동물이 태어난 땅이나 살았을지 모를 삶에 대해 읽어 주었고, 학교에서 배운 것을 들어 가며 동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으스름한 달빛 아래에서 동물들은 해안, 산, 돌풍, 빙하, 피, 굴, 새끼 같은 단어를 들었다. 알리체는 두 손을 창살 사이에 넣고 샤무아의 털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었다. 부드럽고 빽빽한 털에 다섯 손가락이 지나간 자국이 생겼다. 알리체는 제 말을 들으며 누워 있는 동물들에게 말했다.
“할 수만 있다면 너희를 풀어 주고 싶어.”
알리체는 동물들에게 자기가 알고 있는 다른 것, 아버지에게 수백, 수천 번도 더 들어서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동물원에 살던 동물은 원래 서식지로 돌려보내 주어도 살아남지 못한다는 사실을. 어떤 동물은 태어날 때부터 갇혀 살아서 다른 세상은 알지도 못한다. 어떤 동물은 갓 태어난 새끼 때 야생에서 사는 법을 미처 배우기도 전에 잡혀 왔다. 어떤 동물은 다친 채 발견되어 동물원이란 보호구에 들어왔지만 그때 입은 상처가 지금도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