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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88972751649
· 쪽수 : 304쪽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지퍼를 올리고 안도했을 때 그게 일어났다. 찌릿찌릿한 떨림과 온몸이 얇은 막에 감싸이는 감각, 그리고 시야에 들어오는 광경의 전환이다.
나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었다.
와, 하고 환성을 지를 뻔했다.
화장실에서 후가가 나왔다. 웃음을 억누르지 못한 얼굴로 눈을 반짝이며 다가와 “내가 물 내렸어” 하고 말했다.
우리가 기쁨을 공유하기 위해서 악수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유가, 굉장해. 우리는 굉장하다고.”
“쌍둥이라서 그런가.” 어린 마음에도 나는 이치나 이유를 찾았다.
“이걸 이용해서 어떻게 할 수 없을까?”
“어떻게 한다니?”
“놈을.”
폭력을 휘두르고 고함을 지르는 아버지와, 아버지에게 복종하며 스스로를 지키기에 여념이 없는 어머니, 좁고 허름한 집, 늘 똑같은 식사와 똑같은 옷, 둘이 나눠 쓰는 학용품, 게다가 게임도 스마트폰도 없이 하루하루 살다 보면 기분이 암울해질 따름이다. 그런 생활이 기본이었던 우리에게 1년에 하루라고는 하나 남과는 다르게 특별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정신적인 구원이었다.
생일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다 전날이 되면 뭘 할지 후가와 설레는 마음으로 계획했다. 생일이 있었기에 어떻게든 살아올 수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자각했던 우리의 특수한 생일은 그로부터 열몇 번 찾아왔다. 규칙도 늘었다. 위치가 바뀌면 원래 거기에 있었던 사람으로 행세할 것. 예를 들어 내가 후가가 있는 곳에 갔을 때는 어디까지나 후가로서 행동한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안 그러면 성가셔진다. 그리고 거기서 경험한 일은 세세하게 보고할 것.
지금까지 생일에 기묘한 일, 유쾌한 일, 불쾌한 일, 무서운 일을 체험했다.
그중 몇 가지를 소개하려 한다.
나는 눈을 돌리고 싶은 그 광경에 사족을 못 쓰는, 부도덕한 쾌락에 환장하는 재산가의 아들로 행동해야 하기에 혀로 입술을 핥으며 쇠사슬에 묶인 알몸의 소녀를 바라보는 척했다.
관객들은 박수도 치지 않았다. 이 정적이 더욱 잔혹하게 느껴졌다.
고다마의 숙부가 뭔가 말했다.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였지만, 어쩌면 내 머리가 몽롱했던 탓인지도 모르겠다.
고다마는 수조 옆에 서서 머리 숙여 인사했다.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알몸으로 서 있는 걸 창피해하거나 두려워하는 낌새도 없었다.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체념했다. 고다마의 인생에서 이게, 이것과 유사한 일이 너무 흔하게 일어났다는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