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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72757542
· 쪽수 : 964쪽
책 소개
목차
21가지 이야기
파괴자들
특별한 임무
외설 영화
설명의 암시
사기꾼이 사기꾼을 만났을 때
일하는 사람들
아, 가엾은 몰링
피고 측 주장
에지웨어로 인근의 작은 극장
다리 저쪽
시골 드라이브
천진한 아이
지하실
레버 씨의 기회
형제
즉위 25년 기념제
하루를 버는 것
나는 스파이
확실한 증거
두 번째 죽음
파티의 끝
현실감
정원 아래서
모랭과의 만남
이상한 시골 꿈
숲에서 발견한 것
남편 좀 빌려도 돼요?
남편 좀 빌려도 돼요?
뷰티
회한 삼부곡
작은 여행 가방
영구 소유
8월에는 저렴하다
충격적인 사고
보이지 않는 일본 신사
생각하면 끔찍한 것
크롬비 선생
모든 악의 근원
점잖은 두 사람
마지막 말
마지막 말
영어 뉴스
진실의 순간
에펠 탑을 훔친 사나이
중위, 마지막으로 죽다
정보부 지부
어느 노인의 기억
복권
새로운 집
진행 중이지 않은 작품
불순한 이유에 의한 살인
장군과의 약속
새로운 단편들
축복
전투의 교회
팔켄하임 박사님께
국경의 저쪽
해제
옮긴이의 말―인간의 내면을 찾아가는 가열한 탐험
그레이엄 그린 연보
리뷰
책속에서
“넌 투덜이 영감이 많이 미워?” 블래키가 물었다.
“아니, 그렇지 않아.” T가 말했다. “영감을 미워한다고 해서 재미가 있는 건 아니잖아.” 불붙은 마지막 지폐가 그의 음울한 얼굴을 밝혔다. “미움과 사랑 같은 것은,” 그가 말했다. “나약한 헛소리에 지나지 않아. 그저 사물들만이 있을 뿐이야, 블래키.” T는 실내를 둘러보았다. 실내에는 반쪽이 난 사물, 부서진 사물, 이전의 사물들의 낯선 그림자가 널려 있었다. “집에 누가 먼저 가나 경주하자, 블래키.” 그가 말했다.
_ 24~25쪽, 「파괴자들」에서
“그의 계획을 그처럼 단순한 것이나 어설픈 것으로 생각해선 안 됩니다.” 마주 앉은 상대가 말했다. “그 가엾은 사람의 기질에는 사랑보다 증오가 훨씬 더 많았어요. 당신이라면 존재한다고 여기지 않는 것을 증오할 수 있겠어요? 그럼에도 그 사람은 자신을 자유사상가라고 불렀답니다. 자유롭다는 것과 그처럼 증오심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은 양립할 수 없는 모순이잖아요. 그 방학 기간 내내 그의 강박관념은 나날이 커져 갔던 게 틀림없어요. 그러나 그는 참고 있었어요.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내가 말한 ‘그것’이 그에게 힘과 지혜를 주었는지도 몰라요. 그는 방학이 끝나기 일주일 전에야 그토록 깊은 관심을 쏟고 있던 문제에 대해 얘기를 꺼냈어요.”
_ 62~63쪽, 「설명의 암시」에서
공원까지 가는 동안 내내 욕정이 꿈틀거렸다. 그러나 사랑을 하려면 돈이 필요했다. 가난한 사람에게 있는 거라곤 성욕뿐이었다. 사랑을 하는 데는 좋은 옷과 차가 있어야 하고, 어딘가에 아파트가 있거나 좋은 호텔에 갈 수 있어야 했다. 그럴듯한 치장이 필요했다. 그는 종일토록 방수 외투 속의 지저분한 넥타이와 해어진 소매를 의식했다. 자신의 몸뚱이를 넌더리 나는 물건이나 되는 것처럼 꾸역꾸역 데리고 다녔다. (대영 박물관의 열람실에서 행복했던 순간들이 있었지만, 몸이 다시 자신을 불러냈다.) 그는 공원 벤치에서 저질렀던 추잡한 행위들에 대한 기억을 지니고 있었고, 그게 그의 유일한 정서였다. 사람들은 몸이 곧 죽는 것처럼 말했는데, 그것은 크레이븐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몸은 계속 살아 있다. 반짝이며 내리는 빗속을 걸어 연단이 있는 곳으로 갈 때, 그는 ‘몸이 다시 소생할 것이다’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검은 정장 차림의 조그만 남자 곁을 지나쳤다. 꿈 하나가 떠올랐다. 그 꿈 때문에 그는 세 번이나 몸을 부르르 떨면서 깨어났다. 온 세상의, 거대한 암흑 동굴 같은 매장지에 그 혼자 있었다. 땅속에서 무덤 하나하나가 모두 다른 무덤과 연결되어 있었다. 세계가 죽은 사람을 위해 벌집 모양의 공간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매번 다시 꿈을 꿀 때마다 그는 몸이 썩지 않는다는 섬뜩한 사실을 새로이 발견하곤 했다. 거기엔 벌레도 없고, 분해 작용도 없다. 지하 세상에는 무사마귀, 부스럼, 발진과 함께 다시 소생할 준비가 된 수많은 죽은 살들이 널려 있었다. 그는 침대에 누워 결국 몸은 타락한다는 것을―‘크게 기쁜 소식’으로―상기했다.
_ 119~120쪽, 「에지웨어로 인근의 작은 극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