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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88975276354
· 쪽수 : 592쪽
· 출판일 : 2014-04-14
책 소개
목차
1. 언제나 시작은 선서로
2. 히렌의 까만 병아리
3. ‘행복한 시간’
4. 고행이 차라리 낫다
5. 아란의 요리
6. 시험 날짜는 빛의 속도로 온다
7. 병아리의 휴일
8. 얄밉다 못해 원망스러운
9. 언제나 소풍 전날 밤은 잠이 달아나지
10. 학생이라고 놀이기구를 다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11. 도시락과 소나기
12. 도서관의 요정
13. 중간고사가 사람 잡네
14. 문제의 그 사진
15. 위기를 돌파하는 방법
16. 불티나는 완자탕
17. 이것이 아카데미 축제
18. 또야? 그리고 또다
19. 마무리까지 잘해야 정말 성공한 법
20. 갈림길에 도착하다
21. 아카데미판 국회 개회
22. 아카데미판 국회 진행
23. 아카데미판 국회 폐회
24. 폭풍이 오기도 전에 아수라장
25. 야식 조달 대작전
26. 폭풍 지나가니 태풍 온다
27. 종이 한 장이 방학을 판가름하지
28. 자개 나비는 까만 비단 위에만 앉는다
29. 장소가 바뀌어도 하는 일은 똑같다
30. 누구를 위한 전화위복인가
31. 바다와 휴양과 너
32. 결국 남은 건 삐약삐약
33. 정리, 정리, 정리
외전 1. 학생이라고 놀이기구를 다 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외전 2. 옥상의 무도회
외전 3. 흑심을 박아넣다
외전 4. 가장 눈부신 계절
외전 5. 작은 아란의 즐거운 하루
책속에서
살랑거리는 꽃잎을 입에 집어넣었다. 달콤한 설탕 맛이 났다. 역시나 솜사탕이다. 사실 식당에 마법학부 교수님하고 애들이 와서 밥을 먹으면서 회의하는 걸 들었다. 올해 꽃은 솜사탕으로 하자고. 앞을 잘 노니는 꽃잎을 잡아 열심히 입에 털어넣었다. 고급설탕을 썼는지 끝맛도 좋다. 이게 다 등록금이다. 그러니 난 많이 먹어도 된다. 꽃잎 한 장에 1브론, 오, 그리 생각하니 즐겁다. 여기도 1브론, 저기도 1브론. 그렇게 난 총 57브론을 먹었다. 꿀꺽하고. 단맛이 입안에 감도니 기운이 난다.
‘올해도 적과 싸울 것입니다. 제발 이번에는 이기게 해주시옵소서’라고 빌었다. 누구에게? 신에게. 적이 너무 강해서 신의 도움이라도 좀 받아야겠다. 내가 아는 문제만 쏙쏙 나오게 해주시면 참 좋을 텐데. 공부는 열심히 할 테니 족집게처럼 딱딱 시험지를 만들어달라고 그리 빌었다.
“방금 전에 넘어지려고 할 때, 치맛자락이 날리는 게 꼭 날개가 파닥거리는 거 같더군. 까만 병아리.”
병아리, 병아리, 병아리, 병아리! 결국 난 폭발했다. 마치 마나 폭탄이 터지는 것처럼 장렬하게.
“병아리 아니거든!”
큰 소리로 외쳤는데 주변은 여전히 시끄럽다. 난 팔을 번쩍 들어 검지를 쭉 뻗었다. 단단한 것이 닿는다. 실드는 또 언제 펼쳐둔 거냐!
“똑같아, 병아리랑. 날개를 파닥거리는 것도, 삐약삐약 우는 것도.”
실드가 사라졌다. 그리고 딩동딩동 종이 울렸다.
“오늘 수업은 끝이군. 내일 봐.”
필통을 손에 쥐고 부르르 떨다가 난 깨달았다. 공부, 하나도 못 했다. 나쁜 놈, 못된 놈! 한 글자도 못 봤잖아! 역시 너는 적이다!
흐름을 따라 열심히 걸어가고 있는데 멀리서 삐죽 나온 머리통이 보인다. 각 관마다 시험을 끝낸 시간이 정확하게 똑같아서 히렌도 나와 비슷하게 나왔다. 내가 알기론 소렌 칼리지에 원서를 내어 1차를 통과한 우리 학년 학생은 히렌과 나, 그리고 이름을 잘 모르지만 집이 자작가라는 애 한 명밖에 없었다. 가서 말을 걸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히렌도 사람인데 당연히 힘들겠지. 피곤은 수다로 푸는 게 좋다. 그리고 답을 뭐라고 썼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
“아, 좀 비켜!”
덩치가 커다란 남학생이 날 세게 밀쳤다. 문제에 기를 쪽쪽 다 빨린 터라 미처 중심을 잡지 못하고 뒤로 넘어졌다. 퍽 하고 부딪친 엉덩이가 얼얼하니 아팠다. 이 예의라곤 다 팔아먹은 싹퉁 바가지 놈이! 그런데 빠직 하고 불길한 소리가 내 귀에 들어왔다.
“아, 어…….”
뭔가 허전한 머리. 그리고 불길한 소리. 난 소리가 난 쪽으로 눈을 돌렸다. 내 비녀가 부서져 있다. 대대로 물려받은, 정말 소중한 물건인데 이름 모를 누군가의 발아래에서 부서졌다. 반짝이는 가루, 떨어진 보석들.
눈앞이 까맣게 변했다. 차마 소리도 지르지 못할 정도로 무거운 절망이 앞을 가렸다. 지키지 못했어. 속에서 무언가가 터져 나오려 했다. 부서져 조각조각 난 비녀를 손에 끌어 모아 쥐고 눈을 감았다. 할머니, 할머니.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