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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과학 > 농업 > 농업일반
· ISBN : 9788975278853
· 쪽수 : 224쪽
· 출판일 : 2012-11-22
책 소개
목차
여는 말_ 잡곡이 살아야 농업이 산다 _5
1부 농사꾼이 들려주는 토종 씨앗 이야기 _백승우
대표적인 불량식품, 밀 _12
가장 작은 곡식, 조 _18
열 사람이 지어서 한 사람 먹인다, 기장 _24
일찍 심으면 일찍 먹고, 참깨 _30
팥, 좋아서 심는다기 보다도 _38
콩농사, 알고 지으면 거둘 게 많다 _44
쉬우면서도 어렵다, 율무농사 _53
가난한 농사꾼들의 호사(豪奢), 수수 _61
고생고생 사람잡던 보리농사 _71
2부 농부와 토종 씨앗의 동행 _김석기
새로운 비상을 꿈꾸다, 토종 앉은뱅이밀 _84
밀은 밀인데? 토종 호밀 _111
그 맛이 궁금하도다, 기장 _125
자식만큼 손이 많이 가는 농사, 토종 참깨 _145
추위를 몰아내는 기운, 토종 팥 _164
전통농업의 주인공, 토종 콩 _188
맺음말_ 잡스러운 세상이 건강하다 _219
리뷰
책속에서
큰 산 하나만 넘고 강물 하나만 건너도 비바람이 다르고 햇살이 다르고 땅과 흙이 다르니 지역마다 잘되는 씨앗이 따로 있었을 테고,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니 고집 세고 긍지 높은 농사꾼들, 아마도 제 맘에 맞는 씨앗도 다 따로 있었을 것이다.
맛이 있는가? 수량은 얼마나 나는가? 모양이 예쁜가? 빛깔이 고운가? 가뭄에 잘 견디는가? 비바람에 쓰러지지 않는가? 갑작스러운 추위에 견디는가? 병은 없는가? 벌레가 꼬이지는 않는가? 저장도 잘되는가? 두루두루 따져보고, 이웃이 심은 밭을 여러 해 동안 지켜본 뒤에 어렵게 말 꺼내서 조금 얻어온 씨앗. 한꺼번에 왕창 심었을 리도 없다. 조심스럽게 조금 심어보고 씨 받아 늘리면서 확신이 선 뒤에야, 물려받은 씨앗을 그만두고 새로운 씨앗을 심었을 것이다. 이웃이 청하면 또 조금 나누어 주고…….
이렇게 이 땅에서 오랜 시간 여러 대에 걸쳐서 선별되고 고정된 씨앗을 ‘토종’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밀의 원산지는 아프가니스탄 지역이지만 ‘앉은뱅이밀’의 원산지는 한반도가 된다. 우리 땅과 하늘과 비와 바람이 농사꾼의 손을 빌어 선택한 씨앗, 이것이 토종이다.
- ‘여는 말_토종이 살아야 잡곡이 산다’ 중에서
마을로 내려와서 동네 사람들이 참깨농사를 짓는 모습을 보니 “씨앗을 제대로 못 붙이는” 집이 많았다. 자신들은 도마재에서 괭이로 골을 타고 아궁이 재에다 참깨 씨앗을 섞어서 뿌리는 방법을 개발하여 참깨를 세우지 못하는 일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보듯이 참깨는 씨앗이 잘다. 그 자잘한 씨앗을 적당히 고르게 뿌리는 일이란 여간 어렵지 않다.
“너무 많이 뿌려도 (솎느라) 힘들고, 아예 적게 뿌리면 (싹이 잘) 안 난다. 많이 뿌려 깨를 솎아내고 앉아 있다가는 다른 농사를 못 짓는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처음에는 흙이나 모래에 참깨 씨앗을 섞어서 뿌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흙과 모래는 무거워서 그런지 별로 신통치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재는 거름도 되고 가볍고” 하니까 여기다 섞어서 뿌려보자는 생각에 그렇게 해보았다. 역시 생각했던 것처럼 씨앗과 섞기에도 맞춤하고, 심고 나서 싹도 잘 났다. 그 이후 참깨를 심을 때에는 늘 재에다 씨앗을 섞는 방법을 썼다고 한다. 이런 방법이 옛날에도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카하시 노보루 박사의 ??조선반도의 농법과 농민??을 보면, 재뿐만이 아니라 재에다 똥을 버무린 똥재를 말렸다가 가루로 부숴 조나 밀 등의 씨앗과 섞어서 뿌리는 방법이 자주 나타난다. 조나 참깨같이 씨앗이 작고 가벼운 것들은 그것만 들고 뿌리기에는 어렵고 흙을 덮어주는 일도 곤란하다. 미리 재나 똥재와 같은 가벼운 알갱이와 섞어서 뿌리는 것이 더욱 수월할 것이다.
(중략)
안석자 님이 기르는 참깨는 시어머니 때부터 내려오던 씨앗이다. 분명 신품종을 쓰면 수확량이 더 많을 텐데 왜 바꾸지 않고 토종 참깨를 그대로 이어오신 걸까? “옛날에 쓰던 걸 내려오다 보니까 계속 심어요. 맛은 아마도 옛날에 먹던 게 더 낫다고 생각하구요”라는 그녀의 답에선 아무 특별한 까닭을 찾을 수 없다. 수확이 더 난다든지, 맛이 특별히 더 좋다든지, 농사짓기가 훨씬 수월하다든지 하는 색다른 까닭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옛날부터 심어오던 것이니까, 별 문제가 없으니까 심어 나아갈 뿐이다. 어떻게 보면 습관이라고나 할까.
그런 습관이 또 하나 있다. 씨앗을 준비하는 행위이다.
“일단 씨앗부터 좋은 종자를 골라서 남기고, 나머지를 팔고 먹고 그래요. 옛날에는 씨를 안 받으면 어디서 구하지를 못했어요. 씨앗을 미리 마련해두고 나머지를 팔아야 살 수 있으니 알뜰히 한 거지요. 나는 특히 마을사람들이 우리 집으로 씨앗을 받으러 다 와서 늘 일부러 넉넉히 뒀어요. 먹는 건 좀 덜 먹어도 씨앗을 넉넉히 뒀지요. 옛날부터 씨앗을 많이 두는 사람을 넉넉하고 마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했어요. 그만큼 씨앗이 최고 중요한 거예요.”
그러나 지금 농사는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최대한 많이 수확해서 싹싹 긁어서 내다 팔아 돈을 만들고, 다음에 농사지을 때에 쓸 씨앗은 종묘상에서 사다가 심는 식의 농업으로 전환된 지가 오래되었다. 이제는 씨앗을 받아 심는 사람도, 그걸 대를 이어 물려받을 사람도 사라진 시대다. 최고 중요하다는 씨앗은 이제 농업 관련 기업에서 전적으로 생산하여 판매한다.
- ‘자식만큼 손이 많이 가는 농사, 토종 참깨’ 중에서
현재 토종 씨앗은 전통농업의 소멸과 함께, 그리고 농민의 죽음과 함께 사라지고 있다. 농사가 더 이상 집에서 먹을거리 위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산업의 하나로 편입이 되면서 그러한 경향은 더욱 빨라지고 심화하였다. 산업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집에서 먹을거리를 농사짓던 사람들은 경쟁에서 밀려 도시로 이주해야 했고, 그나마 농촌에 남아 집에서 먹을 것이라도 조금씩 농사짓던 사람들은 이제 나이가 많아지며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다. 그래도 아직 농촌에 토종 씨앗이 남아 있는 것은 할머니들이 살아 계시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여전히 힘들긴 하지만, 자식도 다 키워 젊었을 때처럼 치열하게 살지는 않아도 된다. 주로 텃밭에서 자기 먹을거리나 자식들에게 보내줄 농산물을 생산할 정도면 충분하다. 그런 사람들에게 아직 토종 씨앗이 살아 있다. 하지만 곧 그마저도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한데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토종 씨앗이 부활하고 있다. 바로 도시농업이라는 분야이다. 도시농업은 주로 자신이 먹을거리를 농사짓는다. 그도 그럴 것이 도시는 땅값이 너무 비싸 농업을 생업으로 삼기에 어려움이 크다. 그래서 다섯에서 열 평, 또는 넓어야 몇백 평 규모의 밭에서 자신의 먹을거리를 직접 농사짓는다. 그런 도시농부들에게 토종 씨앗과 전통농업이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수 있을지 모른다.
- ‘전통농업의 주인공, 토종 콩’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