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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명사에세이 > 기타 명사에세이
· ISBN : 9791191114904
· 쪽수 : 312쪽
· 출판일 : 2025-09-05
책 소개
당연함을 의심하고 평범함에서 경이를 발견하는, 과학적 태도를 만나다
지구를 사랑하고, 거기 사는 인간들을 사랑하고,
그 인간들이 사용하고 빚어내는 언어와 예술마저 사랑하기에
영원히 고통받는 두 과학자들의 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김영하)
“머릿속에 물음표를 그려보는 그 순간이 바로 과학입니다.”
물리학자 김상욱과 천문학자 심채경이 『과학산문』을 출간했다. 동명의 유료 이메일 구독 서비스에 2024년 가을부터 2025년 연초까지 연재한 글을 다듬고 살을 붙였다. 『과학산문』에서 김상욱과 심채경은 서로와 독자를 수신인으로 편지를 주고받는다. 물질의 근원을 탐구하는 물리학과 거대한 우주를 관찰하는 천문학, 조금은 다른 세계에 기반을 둔 두 사람이 일상의 풍경과 사유를 글에 담아 교환한다. 이러한 마주침 혹은 충돌은 과학과 삶을 오가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 책은 ‘과학’산문일까, 과학’산문’일까? 과학과 산문 사이 그 어디쯤에서, 우리 곁의 과학자들은 때로 다정하고 주로 단단한 글을 주고받으며 심상한 일상과 심상찮은 통찰을 나눈다. 이 책은 과학자들의 교환 편지인 동시에, 가끔은 물리학자·천문학자라는 명명 바깥으로 살짝씩 쏟아지는 ‘인간’ 김상욱과 심채경의 세상 탐구 일지이며, 그들과 우리가 함께 겪은 어떤 계절의 기록이기도 하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과학은 잘 알지 못해 쉽게 오해했던 학문일 것이다. 알고는 싶지만 난해하고, 어려운 공식과 용어를 보면 지레 겁을 먹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침착하게 고개를 들어 세상을 보면, 전기부터 AI까지 일상을 구성하는 많은 것이 과학에서 시작되었다. 이제 과학 쪽으로 한 걸음 다가가 손을 내밀어볼 때다. 『과학산문』에 과학 이론은 없다. 그러나 이 책은 과학적인 태도로 가득 차 있다. 저자들은 말한다. “과학산문이라고 해서 꼭 과학을 설명할 필요는 없”다. 과학 지식을 쏟아붓는 것보다, 지극히 평범한 풍경 속에서 발견하고 성찰해낸 과학적 태도야말로 과학의 진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지구별 이웃 김상욱·심채경이 안내하는 우리 곁, 태도로서의 과학을 만나보길 권한다.
우리 이웃의 과학자들: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
“자신이 공부할 내용에서 인간이 보이면 애착이 생깁니다. 인간은 사물이나 개념이 아니라 다른 인간을 사랑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이죠.”
정부는 내년 과학 연구개발(R&D) 예산을 사상 최대 규모인 35.3조 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특히 기초연구에 대한 지원이 크게 확대되었다. 이런 흐름은 과학을 아는 일이 단순히 지식을 쌓는 차원을 넘어, 앞으로 우리가 어떤 미래를 살아갈 수 있을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토대임을 보여준다. 물리학자 김상욱과 천문학자 심채경은 사람들에게 과학을 알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티브이,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며 강연을 하고 과학서를 출간했다. 『과학산문』은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그들의 좀더 사적인 이야기를 다룬다. 이 책은 어려운 이론 대신, 두 과학자가 주고받은 글로 이루어져 있다. 28편의 편지 혹은 일기 또는 수필에서 김상욱과 심채경은 납작하게 고정된 ‘과학자’의 전형적 모습을 살짝 벗어난다.
교수와 박사, 물리학자와 천문학자라는 호칭은 잠시 접어두자. 이 책에서 둘은 서로를 ‘상욱님’과 ‘채경님’으로 칭한다. 김상욱은 국수를 좋아한다. 1차원이라 더 좋다고 한다. 좋아하는 게 꽤 많아 보이는 상욱은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무척 신나 보인다. 국수도, 미술도 좋지만 과학 다음으로 좋아하는 건 책인 듯하다. 그는 지하철에서 사람들 틈을 비집고 빨간 펜으로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는다. 심채경도 그만큼 책을 좋아하지만 억울하게도 집는 책마다 파본이다. 싱긋 미소를 지으며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낼 것만 같은데 의외로 허술한 면모가 있어 물건을 잘 잃어버린다. ‘파워 내향인’인 채경은 쉽게 지치지 않으려 열심히 일상 곳곳에서 기운 낼 거리를 찾는다. 미신을 믿진 않지만 토정비결도 보고, 피아노 음악을 들으며, 퇴근길에는 어쨌든 하루를 잘 마무리한 자신을 다독인다. 이 역시 둘에 대한 단편적 포착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엉뚱한 취향과 평범한 희망, 잠깐의 절망과 세상살이의 고단함이 담겨 있는 이들의 나날이 우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일상에서 우주까지: 잘게 쪼개고 멀리 바라보며 함께 넓어지는 과학적 사유
“오늘날의 우리와 그 존재를 가능케 한 모든 것이 과학이라는 우주, 우주라는 과학 안에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들과 우리 사이엔 명백하게 다른 점도 있다. 생활감이 묻어나는 글들을 따라 읽다보면 어느덧 과학적 사고의 한복판에 도달해 있다. 김상욱과 심채경은 그런 태도가 과학이라거나 과학적이라고 소리 높여 말하진 않지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관찰하되 판단하지 않는 것, 그리고 열린 태도로 데이터를 수집한 다음 패턴을 찾아내는 것”, 과학은 섣불리 단정짓지 않는다. 답하기 전 단어가 가진 의미를 묻는다. 질문하고 또 질문한다. 답이 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탐구한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한다…… 현실을 완전히 담아낼 순 없지만, 생략함으로써 만물의 움직임을 이해하는 근사(近似)값의 근사함이 과학에는 있다. 그렇게 근사한 과학적 자세를 『과학산문』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일상과 계절을 따라 흐르던 그들의 사유는 무심결에 과학으로 돌아온다. 여행 중 무덤을 방문한 물리학자는 생각한다. 육체는 그저 물질에 불과하지만 한편으로 무덤 속 육체는 죽은 자가 남긴 유일한 물리적 실체이기에, 살아남은 이들이 죽은 이를 기억하는 태도를 무덤에서 발견하며 무덤이 죽은 자가 아니라 산 자를 위한 공간임을 통찰한다. 그런가 하면 빨래방에서 웅웅거리는 소음을 들으며 밀린 업무를 처리하려던 천문학자도 과학으로 굴러떨어진다. 빛도 소리도 물질도 없는 것이 대부분인 우주 공간 안에서 특이하게도 가장 떠들썩한 이상지역(anomaly)에 우리가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닫는 순간이다.
잘게 쪼개어 본질을 이해하려는 물리학자의 시선과, 멀리 있는 대상을 면밀히 관찰하는 천문학자의 태도는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이 책에서는 서로를 보완하며 더욱 넓은 사유의 장을 연다. 두 저자가 나눈 글은 과학적 질문에서 출발해 민주주의의 역사, 동서양의 그림, 기억과 죽음, 미신과 습관 같은 인문학적 주제로 확장되며, 정답을 찾기보다 질문을 이어가는 과학의 본질을 드러낸다. 김상욱과 심채경의 글은 경계를 허물고 장르를 넘나들면서 과학이 단순한 학문을 넘어 삶을 풍요롭게 하는 사유의 방식임을 일깨운다. 평범한 일상 속에 스며든 과학적 통찰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새롭게 바꾼다. 과학을 설명하기보다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드러내어 독자에게 친밀하면서도 깊은 대화의 자리를 마련하는 『과학산문』은, 과학이 멀고 낯선 것이 아니라 우리 삶 가까이에 다정하게 머무를 수 있음을 전해줄 것이다.
목차
상욱의 무물
1부| 과학 안에서 미끄러지기
과학자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 × 상욱
빗면 위 물체의 가속운동 × 채경
낮은 차원의 이야기 × 상욱
회전하는 물체의 각운동량 × 채경
총, 빛, 사람 × 상욱
방향지시등 × 채경
창의성은 노가다에서 나온다 × 상욱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면 활짝 웃어볼까요 × 채경
인쇄술의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 상욱
파본을 부르는 손 × 채경
흑백 필경사―문체 계급 전쟁 × 상욱
빛과 고요와 빨래방 × 채경
무엇이든 물어보는 것에 대해 물어보다 × 상욱
제자리걸음도 걸음은 걸음이다 × 채경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 상욱
지구인에게 남은 선물 × 채경
2부| 답장에 답장 보내기
폴리 베르제르 술집의 거울 × 상욱
지울 수 있는 흔적만 × 채경
미신, 습관, 흔적 × 상욱
어느 쪽이든 옳은 선택입니다 × 채경
유물론자가 무덤을 방문하는 이유에 대하여 × 상욱
기억의 공간 × 채경
겸재 정선 산수화의 비밀 × 상욱
피아노 물방울 × 채경
깊다深, 캐다採, 거울鏡 × 상욱
더그와 알렉스, 그리고 바다 세상 × 채경
따스한 햇살 아래 행복한 시시포스 × 상욱
언젠가는 × 채경
채경의 무물
에필로그
책속에서
계절이 지나가는 시간을 느끼며 두 사람이 글을 주고받습니다. ‘과학산문’이라고 해서 꼭 과학을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과학산문이란 무엇인가, 머릿속에 물음표를 그려보는 그 순간도 바로 과학이라고 말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이야기는 때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엉뚱한 곳으로 새어나갑니다. 크고 작은 이야기, 사소하고 무거운 이야기를 타고 우리는 어딘가로 나아갑니다. 편지와 일기, 수필의 삼중점 영역 그 둘레를 굽이굽이, 오늘도 내일도 지구가 성실하게 공전하며 그리는 타원궤도상의 호弧 어드메를 함께, 걸으면 어떨까요?
<프롤로그: 채경의 말>
가위로 면발을 난도질하는 것은 국수의 본질을 훼손하는 행위로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1차원은 ‘길이’라는 단 하나의 물리량으로 그 존재가 규정됩니다. 면을 자르는 것은 1차원 구조가 가진 유일한 특성을 제멋대로 재단하여 면의 자존심을 꺾는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지 편히 먹기 위해 근본을 버리는, 쉽게 말해서 UFO의 이상한 움직임을 이해하자고 물리학을 버리는 것과 다름없는 행위입니다.
<낮은 차원의 이야기×상욱>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 공간에는 대부분 빛도 없고 소리도 없고 물질도 없잖아요. 아주 드물게 물질이 있고 소리가 있고 빛이 있는 엄청나게 특이한 이상지역anomaly에 우리가 존재한다는 걸 생각하면 기분이 좀 묘합니다. 책을 읽다보면 가끔 종이에 티가 있는 걸 봅니다. 우리가 발 딛고 서 있으며 보고 듣고 느끼는 이 모든 물질이 종이 위 활자도 아니고 책 한 권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한 작은 티끌에 불과한 우주를 상상합니다. 이 넓은 우주에서 가장 떠들썩한 곳, 백 가지 소음으로 가득찬 곳에 우리가 있습니다.
<빛과 고요와 빨래방×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