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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75582066
· 쪽수 : 318쪽
목차
정마을의 잔치
인격과 도, 그리고 수도장
기다리는 사람과 떠나려는 사람들
빗자루를 든 괴인의 괴력
정마을의 대책
답을 기다리는 하나의 그림자
선인들의 추리
미친년과 건달들
칠성들의 뜻밖의 수확
거지 무덕의 요염한 변화
위험한 대결
옥황부의 긴급사태
생명의 향연
저자소개
책속에서
“풍곡(風谷), 오랜만이구려. 지척 간에 있으면서도 서로 이토록 볼 수가 없더니만, 그래 그간 평안했소?”
“고휴, 당신도 여전하구려. 허허허…….”
“자, 어서 들어오시오. 연진인(眞人)께서는 아직 당도하지 않으셨소.”
고휴는 자리를 권했다. 풍곡이 자리에 앉자 고휴는 적이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대체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이오? 내가 알아서는 안 될 특별한 일이라도 있소?”
풍곡과 고휴는 서로 그리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사이로서 선계에서는 배분(輩分)이 같았다. 풍곡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쓴웃음을 지으며 얘기했다.
“모든 것이 다 내 불찰이오. 허허 부덕한 소치이지…….”
“아니, 대체 무슨 소리요? 답답하구려.”
“……실은 내가 사람을 하나 구했소.”
“사람을 구했다고? 그거야 무슨 잘못된 일이 아니지 않소?”
고휴는 몹시 답답해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죽을 사람이었던 것이오.”
“뭐요? 그럼 천명을 어겼단 말이오? 대체 무엇 때문에 인간의 일에 참견한 것이오, 당신답지 않구려…… 도대체 왜 그렇게 한 것이오?”
“음. 그것은 내가 경솔했기 때문이오. 처음엔 잡귀가 억지로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만 알았는데…….”
기가 찰 노릇이었다. 아무리 선공이지만 연진인에게 죄를 지어 압송 중인데 이런 말을 하다니…… 고휴는 말문이 막혀 그냥 대꾸하지 않고 있었다.
“어때? 안 되겠는가?”
선공은 재촉하자 고휴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제게는 그런 권한이 없사옵니다.”
“아니, 자네가 그냥 풀어주면 그만 아닌가?”
고휴는 몹시 불쾌했다.
“선공님께서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이옵니까? 연진인의 명을 수행 중인 저한테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시옵니까?”
“허어, 그렇다면 할 수 없군. 자네한테는 미안하지만, 일이 있으니…… 안 풀어주면 내가 풀어야지.”
선공이 이렇게 말하자 포승은 저절로 풀렸다.
“아니, 이게 무슨 짓이옵니까?”
고휴는 놀라서 큰 소리로 말했다. 고휴는 이 말을 하고는 갑자기 몸이 굳어오면서 힘이 쑥 빠지고, 말을 더 할 수가 없었다. 고휴는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선공의 비정한 목소리가 겨우 들려왔다.
“고휴, 미안하네. 먼 훗날 다시 보세. 그리고 몸은 잠시 후 괜찮아질 것이네.”
“태극이라면? 우리나라 국기의 중앙에 있는 것 말이야?”
“그렇지요. 태극(太極)은 바로 태극(泰極)이에요. 통일과 조화·혼돈·생명·동일성 등 이 우주에서 가장 뜻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만물은 혼돈에서 멀어져 질서를 가지려 하니 생명이란 반대지요.”
“만물이 혼돈에서 멀어지려고 하다니?”
“예. 모든 가능성을 없애서 하나가 되려고 하는데, 이것은 죽어서 하나가 되려는 뜻이지요.”
“무슨 소리이지?”
“예를 들면 말이에요. 자연에는 높은 곳과 낮은 곳이 나누어져 있는데, 이런 것들은 차차 올라가고 내려가서 평평해지려고 하지요.”
“음? 다시…….”
“산이란 점점 낮아지고 높은 곳에 있는 것은 낮은 곳으로 내려가서 빈 곳은 메꾸어지려고 한다는 뜻이에요. 이 우주는 시간이 갈수록 하나의 죽음, 즉 평형으로 향해 가지요.”
“그것 참, 알 듯 말 듯 하군.”
박씨는 이해하기가 몹시 힘든 것 같았다.
“허참, 그리고 생명이란 그 반대라니?”
“생명체와 생명이란 다른 뜻이지요. 몸은 자연의 일부로서 만물과 함께 흘러가지만, 생명 즉 영혼 그 자체는 자유를 원하고 자연의 흐름에 역행하고자 하는 힘도 있다는 것이에요. 말하자면 아저씨가 정신과 몸을 화합하고자 하고 나아가서 영혼의 힘을 몸에 끌고자 하는 일은 모두 혼돈, 즉 생명의 원천으로 돌아가려는 것이지요.”
“어허, 이해가 좀 되려고 하는구먼. 그리고……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