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시대 일반
· ISBN : 9788976041265
· 쪽수 : 412쪽
· 출판일 : 2015-07-10
책 소개
목차
글을 시작하며
제1장 왕 곁에 잠들지 못한 왕비
조선 개국을 못 본 향처鄕妻!
신의왕후 한씨 - 건국 시조 태조의 원비
살아서 조선 최초의 왕비가 되었지만
죽어서 조선 최초의 폐비가 된 경처京妻!
신덕왕후 강씨 - 건국 시조 태조의 계비
그대가 너무 먼 곳에 잠든
정순왕후 송씨 - 제6대 왕 단종의 비
원손을 낳은
장순왕후 한씨 - 제8대 왕 예종의 원비
부덕한 아버지를 두어 단명한
공혜왕후 한씨 - 제9대 왕 성종의 원비
칠거지악七去之惡에 걸린
폐비 윤씨 - 제9대 왕 성종의 폐비
7일의 왕비
단경왕후 신씨 - 제11대 왕 중종의 원비
왕을 잃어 버린
장경왕후 윤씨 - 제11대 왕 중종의 제1 계비
천장遷葬을 하면서까지 왕 곁에 잠들려 했던 악비
문정왕후 윤씨 - 제11대 왕 중종의 제2 계비
원비의 아들이 많아 왕 곁을 차지할 수 없었던
장렬왕후 조씨 - 제16대 왕 인조의 계비
먼발치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인경왕후 김씨 - 제19대 왕 숙종의 원비
인현왕후 민씨가 부러운
인원왕후 김씨 - 제19대 왕 숙종의 제2 계비
왕 곁을 계비에게 빼앗긴
단의왕후 심씨 - 제20대 왕 경종의 원비
아직도 왕을 기다리는 우허제右虛制와
정성왕후 서씨 - 제21대 왕 영조의 원비
제2장 왕 곁에 잠든 왕비
시동생이 무서웠던
정안왕후 김씨 - 제2대 왕 정종의 비
왕을 만든 여장부
원경왕후 민씨 - 제3대 왕 태종의 비
가슴앓이 하다가 죽어간
소헌왕후 심씨 - 제4대 왕 세종의 비
죽고, 죽고, 또 죽은
현덕왕후 권씨 - 제5대 왕 문종의 비
최초로 여왕 노릇한
정희왕후 윤씨 - 제7대 왕 세조의 비
왕위를 도둑맞은
안순왕후 한씨 - 제8대 왕 예종의 계비
후궁들의 멘토
정현왕후 윤씨 - 제9대 왕 성종의 제2 계비
그래도 지아비 곁을 찾은 폐비
거창군부인 신씨 - 제10대 연산군의 비
억울하게 지아비를 잃은
인성왕후 박씨 - 제12대 왕 인종의 비
마마보이 지아비를 둔
인순왕후 심씨 - 제13대 왕 명종의 비
적자를 낳아주지 못한
의인왕후 박씨 - 제14대 왕 선조의 원비
적자(영창대군)를 낳아준
인목왕후 김씨 - 제14대 왕 선조의 계비
날벼락 맞은 폐비
문성군부인 류씨 - 제15대 광해군의 비
삼궤구고두三跪九叩頭로 항복 례를 한 왕의 비
인열왕후 한씨 - 제16대 왕 인조의 원비
꾸지 않았을 꿈을 이룬
인선왕후 장씨 - 제17대 왕 효종의 비
가장 행복한
명성왕후 김씨 - 제18대 왕 현종의 비
죽어서도 여인들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지아비를 바라보아야 하는
인현왕후 민씨 - 제19대 왕 숙종의 제1 계비
자녀를 낳을 수 없어 안타까웠던
선의왕후 어씨 - 제20대 왕 경종의 계비
원비를 어이없게 만든 당돌한 계비
정순왕후 김씨 - 제21대 왕 영조의 계비
왕비가 되어서야 마음을 놓았을
효의왕후 김씨 - 제22대 왕 정조의 비
안동 김씨에게 세도정치의 물꼬를 터준
순원왕후 김씨 - 제23대 왕 순조의 비
왕 곁에 계비와 함께 잠든
효현왕후 김씨 - 제24대 왕 헌종의 원비
왕 곁에 원비와 함께 잠든
효정왕후 홍씨 - 제24대 왕 헌종의 계비
강화도 농사꾼의 아내
철인왕후 김씨 - 제25대 왕 철종의 비
일본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된
명성황후 민씨 - 제26대 왕 고종의 비
한 지붕 세 가족이 된
순명황후 민씨 - 제27대 왕 순종의 원비
망국의 슬픔을 겪어야 했던
순정황후 윤씨 - 제27대 왕 순종의 계비
제3장 왕 곁에 잠들 수 없었던 후궁
좋았다가 망한
공빈 김씨 - 제14대 왕 선조의 후궁
희비가 교차된
인빈 김씨 - 제14대 왕 선조의 후궁
궁녀에서 왕비까지 초고속으로 승차陞差한
희빈 장씨(장희빈) - 제19대 왕 숙종의 후궁
아들에게 콤플렉스를 제공한
숙빈 최씨 - 제19대 왕 숙종의 후궁
정조 덕분에 수지맞은
정빈 이씨 - 제21대 왕 영조의 후궁
사도세자와 정조에게 죄인이 된
영빈 이씨 - 제21대 왕 영조의 후궁
삼간택을 거쳐 후궁이 된
수빈 박씨 - 제22대 왕 정조의 후궁
명성황후 민씨를 배신하고, 고종의 승은을 입은
순헌황귀비 엄씨 - 제26대 왕 고종의 후궁
글을 마치며
부록1〈조선왕계도〉
부록2〈조선의 왕릉 42기〉
부록3〈조선의 원 13기〉
부록4〈조선왕릉 상설도〉
참고 문헌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하지만 그녀는 죽은 원비 공혜왕후 한씨와는 달리 질투심이 많았다. 그 질투심으로 인하여 그녀는 자신의 무덤을 스스로 파기 시작했다. 유난히 여색을 밝혔던 성종 때문에 그녀도 어쩔 수 없었다는 견해가 있기는 하나 그녀의 행동이 도를 넘었던 것도 사실이다. 야사에 의하면 성종이 그녀의 처소에 들르지 않고 후궁들의 처소만 찾자 그 후궁들을 질투한 나머지 잡아다가 죄인처럼 추궁하고, 문초를 하는 등의 행위를 하다가 성종의 눈 밖에 나게 되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성종과 말싸움 중 성종의 얼굴에 손톱자국을 낸 것이 발단이 되어 왕대비이자 그녀의 시어머니인 인수대비의 분노를 사서 폐비가 되었다고도 한다. 또 한편으로는 삼사의 탄핵으로 폐출되었다는 설도 있으며, 그녀와 경쟁 관계에 있던 성종의 후궁들이 인수대비를 찾아가 그녀를 비판하며 폐위를 부추겼다는 설도 전해온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 등으로 폐비 윤씨는 결국 1479년(성종 10년) 왕비에서 폐위되었다.
(칠거지악七去之惡에 걸린 폐비 윤씨 - 제9대 왕 성종의 폐비)
고종은 을미사변으로 왕비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의 압력으로 음력 8월 22일(양력 10월 10일), 그녀를 폐위하고 서인으로 강등시키기까지 했다. 일본인에게 처참히 살해된 명성황후 민씨는 서인이 된 이튿날인 음력 8월 23일(양력 10월 11일) 다행히 서인에서 빈호를 특별히 내리고, 그해 음력 10월 10일(양력 11월 26일)에는 왕후로 복위시키는 조서를 내려 현종과 명성왕후 김씨가 잠들어 있는 동구릉 내의 숭릉崇陵 오른쪽 언덕에 국장을 지내고 그녀에게 숙릉肅陵이란 능호를 내렸다. 숭릉과 내연지 사이에 명성황후 민씨의 초장지 흔적이 남아 있다. 잡목 속에 석물 몇 점이 그녀의 초장지였음을 애써 알리고 있다. 그녀는 비록 세상을 뜨고 없었지만 왕비에서 서인으로 하루 동안 강등되었다가 빈이 되었고, 빈에서 46일 만에 다시 왕비로 복위되었다. 어이없게도 명성황후 민씨는 47일 동안 폐비가 되었었다. 자칫하다가는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처럼 그녀도 영원히 폐비가 될 뻔했다.
(일본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된 명성황후 민씨 - 제26대 왕 고종의 비)
그녀는 궁녀로 입궁하여 후궁에 올랐고, 왕비까지 되었던 왕의 여인이다. 조선왕조 역사상 후궁이 왕비가 된 경우는 여럿 있었지만 궁녀가 왕비에 오른 경우는 장희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녀가 궁녀에서 후궁이 되었을 때 수많은 궁녀들이 그녀를 매우 부러워했을 것이다. 왕비까지 되었으니 그녀로 인하여 궁녀들의 꿈과 희망이 한껏 부풀어 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게 찾아온 부귀영화는 몇 년 못 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갑자기 신분이 상승된 게 화를 불렀는지도 모른다. 왕비의 자리는 아무나 오르는 게 아님을 장희빈이 일깨워 주었다. 숙종은 장희빈을 끝으로 아예 후궁이 왕비에 오를 수 없도록 법을 만들어 버렸다. 숙종이 장희빈에게 질려버렸던 모양이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고, 누에는 뽕잎을 먹어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 준 장희빈이다.
(궁녀에서 왕비까지 초고속으로 승차陞差한 희빈 장씨(장희빈) - 제19대 왕 숙종의 후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