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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경제경영 > 경제학/경제일반 > 경제이야기
· ISBN : 9788976334015
· 쪽수 : 400쪽
· 출판일 : 2009-09-21
책 소개
목차
회고록을 출간하며
남덕우 총리와 개발연대의 한국 경제 - 최우석(전 삼성경제연구소 부회장)
1장 미국 유학을 가기까지
의용군 출정식에서 간신히 도망치다 - 6ㆍ25 세대의 고난
두 권의 책을 들고 후퇴하다 - 1ㆍ4 후퇴와 부산 피난
한국에 ‘계’와 ‘사채’는 얼마나 있나? - 미국 유학의 계기가 된 질문
2장 천직을 바꿔놓은 만남
미국식으로 가르치리라 - 1960년, 뼈저린 반성 속에 귀국하다
처음으로 공부 한번 해본 것 같습니다 - 서강대학교에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허점 - 박정희 대통령과의 첫 만남
줄넘기로 이자율을 설명하다 - 대통령 앞에서의 보고
이따가 내 방에 좀 들르시죠 - 미국행 여비를 건네준 박 대통령
이제 맛 좀 봐! - 14년 관료의 길로 들어서다
3장 개발경제의 난제들 - 재무부에서(1969. 10. ~ 1974. 9.)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 정면돌파와 긴축 정책
소신대로 해보시오 - 은행장들을 교체하다
은행 민영화를 바랐지만 - 테스트로 끝나고 만 상업은행 민영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 긴축 정책의 효과
내우외환의 1970년대 초 - 닉슨 독트린과 국내 경기의 냉각
사채를 동결하라 - 8ㆍ3 긴급조치
기업에 장기금융의 길을 열기 위해 ① - 제2금융권 개발 : 증권과 보험
기업에 장기금융의 길을 열기 위해 ② - 제2금융권 개발 : 기업공개와 우리사주
기업공개를 촉진하라 - 5ㆍ29 특별조치
중화학공업의 발상과 발등에 떨어진 불 - 1973년의 중화학공업 선언
자금 조달의 해법 - 국민투자기금 도입
어느 토끼를 잡을 것인가 - 석유파동과 3중고
국제 사금융의 유혹 - 석유파동과 한국 경제 위기설
4장 경제개발과 외자조달 - 경제기획원에서(1974. 9. ~ 1978. 12.)
부가가치세 도입의 과제를 남기고 - 재무부에서 경제기획원으로
민주화의 경제적 기초 - 외자 도입과 인권 문제
자조가 있어야 도움도 있다 - 자주국방과 방위세
중화학공업, 말썽도 많았지만 - 성장률이 보여준 중화학공업의 성과
나에게 100억 원을 줄 수 없나? - 문화예술 진흥과 유적 보존 사업
133개국 4만여 명이 배우러 오다 - 농촌 재건과 새마을운동
전자 시대를 열다 ① - 컬러 방송과 전자산업
전자 시대를 열다 ② - 전자식 전화의 도입
해외건설의 발판이 된 중동 진출 - 중동 건설 현장을 돌아보며
세계를 돌며 제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팔다 - 경제외교와 외자 조달
또다시 유럽으로 - 대한국제경제협의체 회의에서의 설득
경제외교, 고배를 마시기도 - 미국과 독일의 거절
일본으로 역수입된 부동산 대책 - 경기과열과 부동산 투기
20일의 휴직 - 부가가치세 실시와 개각
5장 개발연대의 종막 - 경제특보로 돌아와서(1979. 1. ~ 1979. 12.)
내가 봐도… 엉터리야! - 경제특보로 들어와 보니
가장 골치 아픈 문제 - 중화학공업 구조조정과 안정화 시책
석유 협상과 새마을운동 - 대통령 특사로 중동에 가다
태극기를 달고 톈진에 입항하다 - 고추파동과 중국 진출
영원한 작별 - 마지막 보고가 된 미국 출장
한 시대의 막이 내리다 - 놓치고 만 결단의 시기
6장 박정희 대통령을 생각한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 박정희 대통령과 민주주의
임자들은 경제개발에만 전념하시오 - 박정희 대통령과 권위주의
대통령과 CEO - CEO에게 요구되는 네 가지 기능
나를 구해준 봉투 - 박정희 대통령과 봉투 정치
개발 시대의 엘리트들 - 브리핑제도와 해외연수
7장 과도기를 넘어 - 하와이에서 총리실로(1980. 9. ~ 1982. 1.)
금본위제를 연구하고자 - 한국개발연구원의 객원 연구원
지역적 협력 방안의 모색 - 태평양경제협력위원회의 창설
오시면 알 것이니 꼭 오십시오 - 국무총리로 정부에 복귀하다
헌법 개정과 국민투표 - 제5공화국의 출범
사형선고와 특별사면 - 김대중 사건
지켜진 약속 - 과도기, 경제 정책의 전환
아아… 김재익 - ‘경제 대통령’을 잃고서
8장 '무역 한국'을 위하여 - 한국무역협회와 산학협동재단에서(1983. 10. ~ 2007. 2.)
제2의 공직생활을 위한 ‘낙하산 인사’ - 한국무역협회 회장으로
제가 꼭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 한국종합무역센터 건설의 시발
1원을 입찰한 극동건설 - 무역센터 건설 중 있었던 일
무역 한국의 상징 - 무역센터의 준공
하나의 세계를 향하여 - 무역 자유화의 발자취
무역 반세기를 이끌어온 저력 - 한국무역협회의 역할
산학협동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하다 - 산학협동재단에서 보낸 16년
9장 외환위기를 돌아본다
흔들린 신뢰 - 민주화의 과정에서
준비 없는 개방 - 세계화의 과정에서
IMF를 기피할 때가 아니다 - IMF의 개입
IMF 체제의 공과(功過) - 외환위기의 수습과 그 대가
설립 목적에 부응하지 못한 IMF - IMF 자체의 문제점
단순한 외환위기를 경제위기로 - IMF 체제의 거시 정책
외환위기 탈출 선언, 무엇을 놓쳤는가? - IMF 체제 2년을 평가한다
10장 동북아로 눈을 돌리자
아시아 시대의 도래 - 동북아 경제권 다시 보기
한국을 동북아 물류 중심지로 - 중국의 부상과 한국의 살길
한 장의 공문을 보물로 간직한 쑤저우 - 정부 규제완화와 자유화의 힘
두바이 변신의 비밀 - 창조력과 지도자의 힘
경쟁과 협력 - 동북아의 정세 변화와 협력의 과제
연해주의 어제와 오늘 - 연해주에 주목해야 하는 두 가지 이유
동북아개발은행을 설립하라 - 동북아 협력을 위한 제도적 장치
동북아안보협의기구를 창설하라 - 동북아 번영을 위한 정치적 토대
선진화의 과제 - 한국선진화포럼과 선진화운동
에필로그 지켜야 할 가치
과거 경제 운영에서 아쉬웠던 여덟 가지 - 지난날을 돌이켜보며
우리의 가치는 무엇인가? - 국가이념과 국민통합
저자 약력
저작과 강연 목록
List of Selected Articles and Speeches
저자소개
책속에서
그런데 어느 날 한국은행에서 큰 충격을 받게 되었다. 박숙희 부총재가 한국은행 자금과에 들러 김성환 과장과 이야기하다가 나를 보더니 한국에 계(契)와 사채가 얼마나 있는지 추정해보라는 것이었다. 나에게 이 일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 당시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하여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었으나 표본조사 같은 것은 전혀 몰랐고, 국세청의 병종배당이자 소득세 자료로 추정해볼 수 있다는 생각도 전혀 하지 못했다. 방법을 모르는 것은 배운 것이 없는 탓이고, 공부를 더 하지 않으면 내 앞길이 막힐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모교인 국민대학 은사를 찾아가 말씀드렸더니 전임강사로 오라는 것이었다.
1954년 3월 한국은행에 사표를 내자 인사과장은 신입 행원이 한국은행의 핵심 부서인 업무부 자금과에 배속된 뜻을 아느냐고 물으면서 사임을 극구 만류했다. 그러나 나는 공부를 더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나는 재무부 장관 취임 이후 긴축 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을 수습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앞에서 본 바와 같이 거센 반발에 부딪혔고, 특히 수출업계의 비명이 드높았다. …
청와대로 올라가면 박 대통령은 언제나 나에게 담배부터 권한다. 지금은 안 피우지만, 그 당시에는 줄담배를 피웠는데, 그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소파에 앉더니 박 대통령은 두 손으로 빨래 짜는 시늉을 하며 “남 장관, 쥐어짜지만 말고 업계의 사정 좀 돌봐줘” 하는 것이었다. 그전에도 긴축 정책의 어려움을 보고한 일이 있어서 또다시 변명할 자리는 아니기에 “알겠습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재무부에 돌아와서 이용만 이재국장에게 자금 추가 공급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실무자들은 잔꾀를 부려 약간의 추가 자금 외에 어차피 나가게 되어 있는 자금을 마치 추가 공급인 양 보도 자료를 작성했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말없이 넘어갔다.
나는 먼저 박 대통령의 의중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어느 날 대통령과 특보들이 식사를 같이하는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정국에 관한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봐도 유신헌법의 대통령 선출 방법은 엉터리야. 그러고서야 어떻게 국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겠어? 헌법을 개정하고 나는 물러날 거야.”
나는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랐다. 그리고 왜 법률특보를 임명했는지 짐작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