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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내기의 오랜오랜 떨림

촌내기의 오랜오랜 떨림

김창진 (지은이)
  |  
신구문화사
2017-03-20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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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내기의 오랜오랜 떨림

책 정보

· 제목 : 촌내기의 오랜오랜 떨림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76682284
· 쪽수 : 334쪽

목차

책머리에 … 4

제1부(1997년 10월~1999년 4월)

제1信 나신(裸身)을 스치겠지요 … 11
제2信 단풍 숲의 바람남 … 15
제3信 빗소리 광시곡(狂詩曲) … 18
제4信 스며라, 스며라 … 24
제5信 은행알 산탄(散彈) … 28
제6信 까치는 무슨 생각에서 … 33
제7信 길을 묻는다 … 40
제8信 유이무 무이유(有而無 無而有) … 48
제9信 그 집에 가면 풍경이 운다 … 53
제10信 낮추었더니 호롱불 되고 … 57
제11信 노을 그리고 먼지 … 64
제12信 당신은 돌아오지 않는다 … 71
제13信 내 친구 알퐁스 신부 … 77
제14信 꿈 같기에 설어라 … 85
제15信 어둠의 근친들 … 91
제16信 쓰비쓰비쓰비쓰비 … 98
제17信 저 새벽 종소리 … 103
제18信 뛰어들고 싶어라 … 109
제19信 여치가 스치네 … 115
제20信 움메, 그 긴 울음소리 … 122
제21信 신발이 젖었으니 … 130
제22信 별 볼일 없는 별 보는 이 … 135
제23信 그 자유에서 … 142
제24信 그대 늙었을 때 … 146
제25信 우리들의 영혼 … 154
제26信 생명연습 … 161
제27信 우리 자유로울 수 있는가 … 169
제28信 마음 습하거든 … 174
제29信 초우재 뒷길의 기억들 … 183

제2부(2000년 9월~2003년 12월)

제30信 취미의 풍령(風鈴) … 193
제31信 벽난로 가에서 … 197
제32信 여기 아무개가 누워 있다 … 206
제33信 낙화송(落花頌) … 212
제34信 너에게는 21번이 … 220
제35信 맥문동 화동(花洞) … 227
제36信 한복을 입고 오실래요 … 230
제37信 세상에 순한 당신에게 … 236
제38信 촌내기의 오랜오랜 떨림 … 242
제39信 내 소꿉놀이 주방의 분위기 … 245
제40信 S역에 가보아라 … 247
제41信 물 가의 산양(山羊) … 251
제42信 천연(天然)의 눈빛 … 255
제43信 팔매질의 파장(波長) … 259
제44信 설령(雪嶺)이 죽었어요 … 262
제45信 누옥(陋屋), 누옥(漏屋) … 267
제46信 저배기의 신방(新房) … 273
제47信 산승(山僧)이 마주 앉아 … 276
제48信 빗방울 소리들의 느림 … 279
제49信 저 황홀한 새벽노을 빛 … 282
제50信 거기 있거니 거기 있거니 … 286
제51信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 292

평설 : 초우재 거사(居士)의 초상/곽광수 … 295

저자소개

김창진 (지은이)    정보 더보기
경남 김해에서 출생, 부산 중.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에서 국문학을 공부했다. 가톨릭대학교에서 봉직하다가 정년퇴임을 했다.(문학박사) 한때는 소극장(카페-포켓무대)(1972~4년)운동에 열중했다. 시집‘그대, 우리 자유로울 수 있는가’(1992) 산문집‘나폴레온 크라식에 빠지다’(1996) 들꽃시집 ‘오늘은 자주조희풀 네가 날 물들게 한다’(2013) 및 ‘저 꽃들 사랑인가 하여하여’(2015)를 출간하였다. ‘초우재 통신’(2017)은 저자가 편집해 놓은 유고를 간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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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서론]

나신(裸身)을 스치겠지요

요새 초우재(草友齋)에는 동산(動産)이 하나 늘었습니다.
헌 중고(中古)의 자전거 한 대입니다.
거의 다 벗겨져 가는 빨간빛의 도장(塗裝)입니다. 그런데도 모습이 언뜻 보아서는 그리 낡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키가 큰데다가 뼈대와 바퀴가 가늘어서 제법 모던한 모양새입니다.
과천(果川)에 내 외종형이 한 분 있습니다.
이분이 용인 어느 시골에 살 때에는 집뒤의 텃밭 가장자리에 옥수수며 호박모종을 심어 놓고, 새벽에 잠이 안 와서 매양 이것들을 보살피면서 훤히 트는 아침 햇빛을 맞는다더니 요새는 어두컴컴한 새벽에 서울대공원에 가서 몰고 온 자전거를 한참 타다 보면 동이 트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형은 자전거 바퀴를 돌리면서 자기의 하루를 애써 엽니다.
그런데 이 형이 하루는 아침 일찍 저에게 전화를 하기를 자전거를 하나 주웠다면서 쓸 만하니까 네가 가지고 가서 타라는 것입니다. 알다시피 초우재는 산 중턱 가까워서 자전거를 타기에는 경사가 심해서, 이런 산길에서도 경기용 사이클을 몰고 다니는 젊은이를 보면 부러워는 했으나 자전거가 있었으면 하고 그걸 부러워한 일은 없었지요.
그런데도 나는 이 형의 이 분부를 쉽게 거역하지는 않았습니다. 형의 그 갸륵한(?) 마음씀을 거절할 넉살이 없었고, 조금은 이제는 아주 잊어버린 내 자전거 시절에 대한 향수 같은 게 내 마음 밑바닥에서 그때 비집고 올라오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내가 그 자전거를 처음 본 순간에는 그것이 초라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런데도 쓸 만하겠다는 애착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자전거포에서 브레이크등의 허술한 데를 고쳐서 내 차 뒤 트렁크에 어중간하게나마 억지로 싣고서는 밤중에 초우재 뜰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창을 통해서 그것이 내 눈에 들어왔는데,
밤의 어둠을 지새고 아침 햇살에 은륜(銀輪)으로 내 눈에 다가서는 그것이, 아니 그것으로 해서 초우재가 그리 평화롭게 보일 수 없었습니다. 그리 여유 있게 느껴질 수 없었습니다.
나는 자전거가, 외종형의 마음씀이 고마워서 마지못해 이를 초우재에 데리고 온 중고품이 이런 상황을 연출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자주 이 자전거에 내 마음이 머뭅니다.
우거(寓居) 초우재에 가득한 평화와 여유를 만끽합니다.
마당을 비추는 외등(外燈)을 밤 내내 켜 놓습니다.
그리고 요새는,
그것이 왜 그런 연출을 할 수 있는지 자꾸 생각해 보려 합니다.
그것이 서 있는 곳이 흙마당 위라는 것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요.
또 그 배경이 비록 손바닥만 하지만 열무밭이어서 연둣빛의 색감이 주는 시골스런 분위기와의 관련에서인지요.
자동차와 자전거는 둘 다 차(車)이지만 한쪽은 수레 거로 읽는 이름의 다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차’쪽은 내 의지를 뒷받침하는 밧데리라든지 휘발유 등의 매체를 통해서만이 움직일 수 있으나 ‘거’쪽은 바로 내 몸이 갖는 움직임에 오로지 연유해서만 가고 섭니다. 그러니까 내 감각이 그것에 닿는 직접성과, 그것이 갖는 복잡하지 않는 기계구조의 너무 뻔한 단순성 등이 사람의 세계와 쉽게 닿는다는 어떤 혈연성(血緣性)의 동질감을 주어서 그런가요.
오늘날 자동차 문화가 주는 우리들 몸이나 마음에 던지는 폭력성이나 경제적 압박 같은 게 전혀 없습니다.
중학교 다니는 나이 때 자전거를 몰고 다녔던 신작로(新作路)나 풀섶 사이의 좁은 흙길의 배수로를 생각습니다. 이슬들이 바퀴를 간지럽게 적십니다. 잠자리가 날으면서 핸들 위에 앉아서 저와 동행합니다.
아침마다 한 시간 넘어 자전거를 타고는 산 밑의 기차역에 이르는 긴 낙동강 둑길의 자전거 전용의, 통학 길의 행로(行路)를 생각습니다.
그리 좋아하던 매형(妹兄)이 새 자전거를 타고 누나가 있는 저의 집을 찾던 유년시절의 그 반가운 날을 기억합니다.
때론 집에 어른이 앓아누워서 십리 밖의 양의(洋醫)가 까만 진료 가방을 달고 마당에 들어오는 낯선 자전거가 있었긴 하지만, 대개는 반가운 분들의 내왕(來往)이라는 징표로 나에게는 떠오릅니다.
멀리서 큰댁의 형이 와 있습니다.
내가 학교에서 책보를 들쳐 메고 집 마당에 들어서면 그 낡은 자전거는 누가 우리 집에 와 있다는 것을 대번에 말해 줍니다. 십리 윗길의 사촌매형이거나 십리 아랫길의 이종형의 것도 눈에 익은 자전거입니다. 나는 그 자전거의 핸들에 붙어 있는 요령을 한 번 울리고는 대청마루에 오릅니다.
이런 어린 날의 기억들 때문일까요.
외사촌이 요새 사람들이 걸핏하면 버리는 중고품의 자전거를 하나 주워 와서, 그것을 나에게 주어
산자락의 내 초우재 앞뜰에
세워 놓았더니
이렇게 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내일쯤에는 저걸 사립문 밖으로 몰고 나가서 호젓한 산길을 찾아서 한 번 타보렵니다.
이팝나무의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들을 저것의 은륜(銀輪)이 감촉할 것입니다. 그리고 내 반백(半白)의 머리카락들은 나뭇가지들의 나신(裸身)을 스치겠지요.

별 얘기 아닌 것을 갖고 길게 늘어놓았습니다.
시월이 저물고 있습니다. 초우재에도 가을이 와 있습니다.
너무 짙어서 답답하기까지 했던 수목들의 무성한 잎새들도 이제는 성기어져서 내 생각이 나무와 나무 사이를 갈 수 있게 되어 갑니다.
며칠 전에는 초우재 뒤에 있는 은행나무를 털었습니다. 초우재 주인은 은행 알의 산탄(散彈)을 맞으면서도 그것을 줍는 욕심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농사짓는 이의, 돈으로 따질 수 없는 행복을 생각하면서요.
좋은 가을 되십시오.
가을 문턱

달밤에 할 일이 없으면
메밀꽃을 보러 간다.
섬돌 가 귀뚜라미들이
낡은 고서(古書)들을 꺼내 되읽기 시작할 무렵
달밤에 할 일이 없으면
나는 곧잘 마을 앞 메밀밭의
메밀꽃을 보러 간다.
병든 수숫대의 가슴을 메우는
그 수북한 메밀꽃 물결,
때로는 거기 누워서
울고도 싶은 마음.
아, 때로는 또 그 속에 목을 처박고
허우적거리고 싶은 마음.
(박성룡; 메밀꽃)

S형,
올해의 가을은 이 시 때문인지 모르겠네요.
해마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오는 철에 꼭 앓는 버릇이 이번에도 틀림없이 찾아온 것이.
참, 박성룡의 이 시 ‘메밀꽃’, 철맞이 인사로 내가 보내드렸지요.
마음이 먼저 아프기 시작했는지, 몸이 그랬는지, 해마다 이 문제는 풀리지 않아요.

숲 속에 취해 있으면
그 취기로 도는
잠머리와, 잠이 오기 전의
마즈막,
그 나눌 수 없는 경계,
문득 잡히는
첫 가을 새벽의
순간, 그 순간일수록
새로워라.
(졸시 ‘스스로와라 스스로와라’의 셋째 연)

그 무더운 여름에서 어느 아침 한 순간에 잡히는 가을 느낌, 그러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가을앓이, 그러나 그건 해마다 새롭게 다가와선 나를 심하게 괴롭힙니다. 이러고 나야 나는 가을 속에 확실히 앉게 되는 모양입니다.

친구 따라 한 십년 만에 제주도를 갔습니다. 여전히 많은 오름들과 남국의 정취가 異國스러워 우리들은 쉬이 나그네가 되는 기분입니다. 하얀 벽의 호텔이 조용해서 더욱 마음에 들었습니다. 밤에 멀리 海潮音이라도 들려올까 하고 바닷가로 갔다가 돌아오면서 근처의 호텔들을 기웃거려 보았습니다. 거대한 한 호텔은 ‘분수 쇼’란 게 있다며 법석거렸습니다. 그 옆의 다른 호텔에는 들어서자 음악이 다가왔습니다. 로비보다 조금 낮은 층의 커피숍에서였는데, 그건 생음악이었습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연주였습니다. 그리로 내려가려다가 우리는 무엇 때문인지 멈칫하고는 그것을 끼고 내려가는 더 아래의 또 다른 로비쪽을 갔습니다. 우리는 거기서 쉬었어요. 음악이 연주되는 위층은 복층의 구조로 높은 천장 쪽이어서 그 음악들이 그냥 내려오고 있어 우리는 훔치는 기분으로나마 즐길 수 있었습니다. 올드 불랙죠 같은 것, 보리밭 같은 것, 대개는 그런 낯익은 것들이었습니다. 거기선 차도, 가벼운 술도 마실 곳이 아닌데도 때론 그 음악들이 잘못하면 울먹거리게 할 번했습니다. 왠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그 홀에, 그러니까 그 현장에 자리잡지 않은 것이 참 잘했다고 생각되었어요. 그 분위기에 놓이면 거의 틀림없이 울먹거렸을 테니 말입니다. 아이고 이 나이에 말입니다. 그것도 친구 앞에서요. 우리 年齒가 되면 감정에 너무 흔들리게 될 때는 이를 악물어야 되겠기에 입니다.
서울에 돌아왔더니, 어느 고마운 분이 보내준 좋은 음악회의 티켓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와그나의 ‘니벨룽의 반지’ 4부작 공연의 앞 뒤 날짜에 같은 오케스트라 같은 지휘자의, 정경화와의 협연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가 지휘하는 것은 매 번 역사가 된다’ 할 정도로 세계음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며 지켜보고 있는 최전성기의 지휘자라고 발레리 게르기예프를 소개하고 있었어요. 내가 간 날의 연주곡들은 브루흐 바이올린협주곡 1번과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 등이었는데, 시작되기 전부터 자꾸 순서가 바뀐다는 안내 모니터에서의 알림이 있더니, 먼저 오케스트라의 몇 소곡 연주에 이어 5번의 연주가 있었습니다. 집에서 CD로 들을 때는 그리 나를 사로잡지 못했는데, 역시 유명한 교향악단의 연주, 그 현장음악은 참 취하게 하더군요. 악장마다 되풀이되는 주제곡의 변주에서는 많이 나를 흔들리게 했습니다. 그런데 참 묘한 일이 그만 생겨버렸습니다. 마지막 남은 이날의 하이라이트, 브루흐 1번의, 바이올린협연 차례였는데, 정경화가 바이올린을 들지 않고 무대에 오른 것입니다. 열광하는 박수 끝에 그녀는 오늘 연주할 수 없게 된 사연을 말하면서 양해를 구했습니다. 연습 도중에 검지손가락에 이상이 생겨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연주를 해도 완벽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을 앞세운 듯했습니다. 청중의 모두가 박수로 ‘이 시대 최고의 비루투오조로 군림하고 있는’ 이 바이올리니스트를 위로했습니다. 나는 이때에 아쉬운 듯하면서도 안도의 숨을 쉰 듯했으니, 내가 생각해도 참 묘한 느낌입니다. 주최자 쪽의 아나운서먼트에서는 오늘 못 들은 연주는 며칠 뒤의 두 번째 날 연주 때에 초대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 뒤 그 좋은 연주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그 날에 있을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 ‘비창’이 미리 나를 숨죽이게 했던 것 같네요.

S형,
그날 세종문화회관 로비에서 구입한, 그날의 지휘자가 비엔나 필하모닉과 연주한 차이코프스키의 그 5번의 실황녹음 CD를 요새 자주 듣고 있습니다. 때로는 감동적이나 어떤 때는 이상하게도 별로입니다. 조금씩 멀어가는 내 귀 탓인지, 너무 오래 된 우리 집 오디오 탓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님, 이제는 가을이 문턱을 어느새 넘어섰기에서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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