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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인문 비평
· ISBN : 9788976821560
· 쪽수 : 368쪽
책 소개
목차
1장 _ 다섯 가지의 유형론 : 서론을 대신하여
위신을 위한 투쟁 | 경성제대 아카데미시즘에 맞선 도남과 무애 | 『창작과 비평』의 취약점과 강점 | 하버드 대학과 백낙청의 자기모순의 지속성 | 말꼬리잡기 식 논쟁의 대중성 | 문학사의 라이벌 의식에 가장 접근한 박상륭·이문구 | 문학사란 추상인가 주체성인가
2장 _ 정신과학의 유연성과 실증주의의 시적 직관 : 경성제대의 아카데미시즘에 도전한 무애와 도남
제국 일본이 세운 6번째 대학 | 경성제대 아카데미시즘에 대한 무애의 도전 | 몰방향성의 실증주의와 시적 자질의 빛남 | 조선어문학 전공에 혼자 입학, 혼자 졸업한 도남 | 넘어야 할 세 가지 관문 | 정신과학으로서의 해석학에 이른 길 | 국민국가라는 절대기준 | 경성제대 아카데미시즘에 대한 도남과 무애의 도전의 의의
3장 _ 불온시 논쟁에서 얻은 것과 잃은 것 : 김수영과 이어령의 경우
그림자 없는 적 | 사르트르를 오해한 시적 비유법의 빛남 | 시적 비유법으로서의 저항의 문학 | 전전세대, 전후세대 그리고 4·19세대의 4·19관 | 불온시 논쟁 전말 | 사상계와 조선일보 틈에 낀 자유인의 초상 | 시인·비평가의 얻은 것, 비평가의 잃은 것
4장 _ ‘실증주의 정신’과 ‘실존적 정신분석’의 어떤 궤적 : 책읽기의 괴로움과 책쓰기의 행복론
『문학과 지성』의 창간사 | 영문학도 백낙청의 『창작과 비평』의 창간사 | 프랑스 문학도가 아는 한국문학사의 한계 | 한국문학사는 실체일까 | 『산문시대』·『68문학』·『문학과 지성』 | 4K의 『현대 한국 문학의 이론』의 위상 | 맞서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한국문학사 | 선험적 문학 선험적 가난 : 이청준이라는 벽 | ‘실증주의적 정신’과 ‘실존적 정신분석’의 만남 : 『한국문학사』 | ‘문학사’는 하나의 작품이어야 한다 : 『한국문학의 위상』 | 『책읽기의 괴로움』이 실존적 정신분석인 곡절 | ‘책읽기의 괴로움’과 ‘행복한 책읽기’ 사이 | 어떤 때늦은 변명
5장 _ ‘논리’로서의 문학, ‘해석’으로서의 문학 : 『창작과비평』의 초기 위상론
‘초근목피’에 대한 죄의식·사명감 | 사르트르의 『현대』지 창간사의 사정권 속에서 | 비대한 비평, 빈곤한 창작 | 4K의 『현대 한국 문학의 이론』과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의 맞섬 | 인간적인 것, 인류적인 것 : 양지(良知)와 양심(良心) | 두 계간지 문학사의 라이벌 의식 | 독백으로서의 고백체 | 대담으로서의 고백체 | 이론과 실천 : 두 거울의 왜곡화의 경사면 | 두 개의 기적 : 논리 탐구와 해석학
6장 _ 밴쿠버 어떤 동굴에 비친 물빛 무늬 : 이문구와 박상륭
제2회 김동리문학상 시상식 장면 | 교주 김동리의 문하에 들기 | 끝장을 보고야 만다는 두 독종 | 형이상에 대한 지향성 | ‘연구와 공부’의 독각(獨覺) | 키 큰 비평가의 개입과 『칠조어론』 | 전(傳)의 형식과 ‘모란꽃 무늬’의 발견 | 망명객의 공허한 수사학 | ‘모란꽃 무늬’의 ‘물빛 무늬’화 과정 | 밴쿠버 책장수 파크 씨의 화려한 귀향 | 차라투스트라의 목소리를 빌린 자이나교도의 설법 | 카인과 아담의 장엄한 상봉 | 동굴에 비친 ‘물빛 무늬’
7장 _ 인간성의 두 유형, ‘논리’와 ‘해석’ : 결론을 대신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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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경성제대 조선어문학과에 단독으로 입학하고 졸업한 제1회 졸업생 도남의 포부는 보다시피 참으로 비장한 것이 아닐 수 없었다. “민족독립운동의 일환”이 그것이다. 그러나 막상 대학에 들어와 공부를 해보니 사정은 판이했다. 독립운동이란 만주벌판에서나 하는 것, 대학은 학문하는 곳이었다. 이 객관적 사실이야말로 대학생 도남이 봉착한 첫번째 관문이자 시련이었다. 물을 것도 없이 경성제대는 근대적 학문의 연구와 전수를 전문으로 하는 교육제도이며 당연히도 어느 국가나 민족에 토대를 두면서도 이를 넘어선 곳에 닿아 있었다. 보편성이 그것인 만큼 어떤 대학도 이를 비껴갈 수 없었다. 학문, 곧 과학인 만큼 어느 특정지역이나 국가에만 적용되는 것일 수 없는 것이다. 도남은 이 사실을 제일 잘, 그리고 바로 몸 가까이에서 체험할 수 있었는데 바로 은사 오구라 신페이 교수를 통해서였다.
「‘에비’가 지배하는 문화」에서 이어령의 문제 삼은 곳은 4·19 이후 문학의 무력 및 무능이었다. 그 무력, 무능의 이유를 이어령은 문인의 창조력의 부족, ‘탓으로 돌리는 것’, 곧 문인의 태만으로 돌렸다. 5·16 군사쿠데타 이래, 문인들은 “가상적인 어떤 금제의 힘”에 질려 창작에 무능, 무력한 꼴을 보이고 말았다는 것이다. ‘에비’란 없는 것인데도 아이들은 이 에비라는 괴물이 무서워 울음을 그치는 꼴에다 이어령은 비유했다. 있지도 않은 ‘공포의 대상’을 미리 내세워 놓고, 창작을 못하는 유아기적인 사고에 빠져 있는 이 나라 문인을 독려하고 용기를 주기 위해 이어령이 그 글을 썼겠지만, 이를 읽는 『사상계』측 독자 김수영의 처지에서 보면 어불성설이다. 이어령의 논법은 자칫하면 일제 시대의 그 탄압 속에서도 명작이 나왔다는 식으로 들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5·16 이후 아무리 언론탄압이 심해도 작가들은 능히 이를 극복, 명작을 낳아야 한다는 논법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었다. 탄압이 심해도 창작이 가능하다는 것은 군부독재의 탄압을 옹호하는 것으로 오해될 소지조차 아주 없다고는 하기 어려웠다. _
위에서 본 김현의 저러한 견해가 여기에서 왔지 않았을까. ‘짐승스러움’, ‘자연’을 ‘정신’으로 착각한 것. 김윤식의 그 내면 속엔 까마귀와 메뚜기에로 되돌아가기 위한 지향성이 숨어 있어 틈만 나면 분출해 오르고자 했다. 이것은 굳이 말해 김윤식의 실존적 위기감이 아니었던가. ‘문체의 서정성’이 그것이며 ‘열정=재능’의 도식이 그것이다. 김현은 죽음의 시기에 와서야 김윤식의 내면을 분석해 냈다. 그 방법은 ‘실존적 정신분석’이 아니라 김윤식에 대한 ‘사랑’이었다. 사랑하지 않고는 저토록 지속적으로 ‘실증주의적 정신’의 궤적을 추적해 왔을 이치가 없다. 외국 문학자인 김현의 아킬레스건이 ‘실증주의’였던 증거치고 이보다 솔직한 것은 따로 찾기 어렵다. 실상 김현이 한동안 라이벌인 『창작과 비평』에 우위를 잡고자 한 한국문학사에의 도전에 절대적으로 실증주의가 요망되었는데, 자신은 그것을 갖고 있지 않았다. 김윤식의 『한국근대문예비평사 연구』까지의 겉모습만 보았고 김윤식의 내면에 꿈틀거리는 ‘자연’, 곧 짐승스런 까마귀와 붕어를 못 보았던 것이다. 아무 이론도 공부한 바 없는 김윤식이 할 수 있는 것이란 열정뿐이었다. 유년기의 서정적 외로움뿐이었다. ‘열정=재능’이라 우길 수밖에 무슨 방도가 있었으랴. ‘서정적 문체’ 이외에 무슨 방도가 있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