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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철학 일반 > 교양 철학
· ISBN : 9788976822581
· 쪽수 : 528쪽
· 출판일 : 2017-05-30
책 소개
목차
서문・다시 돌아올 ‘사건의 책’을 위하여
1장 _ 변경의 삶과 사유
혁명의 세기와 ‘현실 너머’
바흐친 서클, 혹은 우정의 정원
첫 저작과 체포, 유형의 시절
문학의 사유, 또는 사유로서의 문학
만년의 영광, 끝나지 않은 대화
2장 _ 응답으로서의 삶
전환기의 감성과 위기의식
현대, 분열된 세계상
칸트 : 초월적 도덕이 삶을 구원할 것인가?
신칸트주의: 문화의 이념은 윤리를 대신할 것인가?
개성과 책임, 또는 일상 행위의 구조
3장 _ 행위의 철학, 관여의 존재론
체험의 유일성과 세계에 대한 응답
삶, 또는 체험과 사건
행위와 사건, 제1철학의 새로운 지평
사건화, 함께-있음의 크로노토프
행위와 사건, 그리고 삶의 윤리학
청년 바흐친의 윤리학과 건축학
4장 _ 타자성의 미학과 윤리학
외부, 타자를 사유하기 위한 고리
타자, 나의 바깥에 있는 자의 존재론과 미학
작가와 주인공, 혹은 타자성의 안과 밖
타자화와 주체화의 존재론적 역동
경계이월, 타자를 향한 이행의 힘
대화주의, 타자를 향한 사건
관계와 생성을 향하여
5장 _ 무의식의 사회학
무의식의 문제 설정
러시아와 정신분석, 무의식 담론의 논쟁사
『프로이트주의』의 안과 밖
일상의 이데올로기, 또는 무의식의 귀환
사회적 무의식과 정치적 차원으로의 개방
6장 _ 외부성의 언어학과 문학
바흐친 소설론의 기원
발화와 사건, 명령-어로서의 말
언어학의 외부, 이데올로기와 사회적인 것
일상적 이데올로기와 문화 -삶의 생산
장르와 스타일, 헤테로글로시아의 동력학
문학, 대화화와 소설화의 역사
유물론적 문학사와 사유의 운동
7장 _ 민중과 시뮬라크르
『라블레론』의 역사
이미지, 시뮬라크르와 스타일
근대의 포획장치들
민중, 변형과 이행의 존재론
경계 없는 탈주와 위반의 정치학
민중이라는 신화, 그 매혹과 위험을 넘어서
8장 _ 인간 너머의 민중
민중의 미스터리
민중성의 세 요소
인간 없는 민중, 생성의 사건을 위하여
9장 _ 그로테스크 리얼리즘
생성의 프리즘으로
그로테스크의 문제 설정
카니발, 생성하는 힘의 세계
생성, 문화와 반문화를 넘어서
유쾌한 상대성, 혹은 절멸 없는 삶의 기쁨
비근대와 탈근대의 동력학
10장 _ 카오스모스, 또는 시간의 카니발
바흐친 사유의 정치철학적 전회
힘의 일원론과 존재의 통일성
진리와 생산, 지형학적 하부의 논리
문화와 반문화, 또는 강도의 유형학
소수성의 정치학과 반(反)문화의 동력학
민중의 타자성, 혹은 반정치의 정치학을 위하여
11장 _ ‘거대한 시간’, 그날은 언제 오는가?
생성력, 사유의 거미집
바흐친에 저항하는 바흐친
문화와 반문화, 어떻게 좋은 만남을 만들 것인가?
보론 _ 안티-바흐친, 사유의 성좌를 넘어서
제도와 반제도의 길항, 바흐친 연구의 성립사
사유의 위기와 그 결과들
제도화, 혹은 박제가 된 사유
정전화, 마침내 사유의 위기가!
생성하는 힘, 문화란 무엇인가?
안티-바흐친, 사유의 전화를 위한 조건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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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책속에서
실제로 1980년대 이래 한국의 문학과 문화 담론에서 바흐친은 가장 각광받는 이론가 중 한 사람이었다. 독일 고전철학과 고전주의 문학비평으로 중무장한 게오르크 루카치와 나란히, 혹은 그의 ‘대항마’로 내세워져 다방면에 걸쳐 호출되었던 까닭이다. 루카치가 장대하고 강인한 남성적 스타일로 사변적 우주를 펼쳤다면, 바흐친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하지만 끈질기게 형이상학의 고도를 끌어내리는 말투로 자신의 글을 써갔다. 지금도 널리 읽히는 바흐친의 첫번째 한국어 번역서는 『장편소설과 민중언어』라는 ‘가슴 벅찬’ 제목을 달고 있는데, 1980년대의 정서적 분위기와 바흐친 수용의 시대적 맥락을 보여 주는 듯하여 제목을 읽을 때마다 늘 신기한 감상에 잠기곤 했다. 더구나 루카치와 대비되는 바흐친 삶의 궤적은 그 자체로 감동스러운 데가 있었다. 나름의 간난신고에도 불구하고 루카치가 ‘미학의 맑스’라는 영예로운 호칭을 누렸던 데 반해, 청년 시절 ‘때 아닌’ 정치적 죄과를 짊어졌던 바흐친은 티 내지 않고 조용히 연명하는 삶을 택했던 것이다. 사뭇 대조되는 일생을 보냈던 두 사람이 1980년대 한국의 문화 공간에서 나란히 이름을 떨쳤던 사실은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지나치게 반듯한 모범생의 이미지로 바흐친 형제를 포장할 필요는 없다. ‘90년대의 아이들’이 철들 무렵, 그러니까 20세기 초엽의 유럽은 이미 혁명의 거센 바람에 이리저리 휩쓸리던 와중에 있었다. 특히 1905년에 터진 제1차 러시아 혁명은 철통 같은 차르의 제국에 생긴 거대한 균열을 온 세계에 폭로하였고, 청년들은 문턱까지 차오른 ‘미래의 혁명’에 대한 기대로 쉽게 들떠 올랐다. 김나지움에서 수학하던 소년 바흐친 역시 친구들과 맑스에 관해 읽고 토론하면서 시간을 보냈으며, 어설프게나마 비밀 회합 따위를 가지며 몰래 인터내셔널가를 합창했다고 한다. 물론, 아직 치기를 벗어나지 못했던 어린 형제가 정치 운동으로서 맑스주의에 본격적으로 몰두했다고 보긴 어렵다. 소년들이 벌인 정치적 논쟁은 자주 니체와 보들레르, 레오나르드 다빈치에 대한 토론과 뒤섞였고, 혁명에 대한 관심은 대개 예술의 본질과 철학적 사변의 현실성, 혹은 미학과 정치의 결합 가능성에 대한 질문들로 옮겨 갔다. 그러나 이런 경향을 ‘소년기의 낭만’이나 ‘지식인의 한계’쯤으로 치부하는 것도 공정하진 않을 듯하다. 왜냐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러시아의 지적 풍토에서 정치적 혁명만큼이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던 것이 바로 예술과 미학의 혁명이었기 때문이다.
청년 바흐친이 고민하던 주된 문제는 칸트에서 출발한 위기의식, 곧 삶과 윤리의 분열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에 있었다. 현대성의 근본 문제로서 분열은 윤리의 상실로 표징되었으며, 이때 칸트는 문제의 원천이었고 신칸트주의는 그 해법을 모색하던 중 마주친 협력자이자 경쟁자였다. 그것은 윤리가 초월적 도덕에 속한 것인지 혹은 역사문화적 가치 판단에 속한 것인지에 관한 첨예한 논쟁점을 구성했다. 마침 서클의 일원이던 마트베이 카간이 마르부르크에서 돌아와 유럽 ‘최신’ 철학의 교사가 되어 주었고, 바흐친은 이 문제를 둘러싼 다양한 입장들, 곧 정신과학(딜타이), 문화과학(신칸트주의), 현상학(후설) 등에 관해 면밀하게 검토할 기회를 가졌다. 비록 몸은 러시아의 벽촌에 머물고 있었으나 그의 정신은 당대 지성사적 논쟁의 한가운데로 이미 뛰어들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