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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79735185
· 쪽수 : 272쪽
· 출판일 : 2019-11-25
책 소개
목차
ㆍ작가의 말
시간을 흐르는 강 / 정문숙
Morning
깡깡 / 민경
봄, 「이부탐춘」을 다시 읽다 / 문숙
산머루 익을 때까지 / 광훈
안젤리나 / 문숙
모노레일 / 영금
엄마의 치마폭처럼 / 영금
까치 소리 / 명남
천사가 머무는 시간 / 문숙
나무 한 그루 / 문숙
만남을 위한 약속 / 흥재
누비옷 / 정수
하얀 미사포 / 문자
Afternoon
미안해요, 엄마 / 연숙
아버지의 봄 / 문숙
자귀나무 꽃 / 문숙
실크로드 / 상순
플랫폼 / 연숙
까치발/ 문숙
한 소식 / 민경
강에서 하늘로, 하늘에서 강으로/ 문숙
목소리 / 옥자
만추 / 영옥
Evening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 / 상순
꽃잎 날리다/ 흥재
뜨개질 / 문숙
뒷모습 / 남렬
나에게로 가는 여행 / 옥봉
꿈 이야기 / 금봉
까치발을 내려놓고 / 문숙
사랑 화수분 / 옥봉
참맛 / 문숙
동백꽃 / 동연
선물 같은 시간 / 옥자
저자소개
책속에서
완연한 봄이다. 봄은 우리 집에도 들었는지 나도 모르게 거실에 걸린 풍속도에 자꾸만 눈길이 머문다. 혜원 신윤복의 「이부탐춘」이다. 혜원의 그림 중에서 봄기운에 만물이 동하는 자태를 세밀히 그려내어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으로는 「이부탐춘」만 한 게 없을 것이다.
그림 속의 배경은 지체 높은 양반가의 뜨락인 듯하다. 봄은 담장을 넘어 마당으로 끈질기게 뻗어 오는 나뭇가지와 개와 새들의 짝짓기를 통해 두 여인을 희롱하고 있다. 뜨락에서 동물들이 짝짓기하는 장면을 보고 야릇한 미소를 짓는 여인의 달뜬 모습을 통해서 무르익은 봄은 화폭에 펼쳐져 있다.
혜원은 가지가 부러진 노송에 걸터앉은 다리의 품새로 춘정에 잠긴 여인의 감정을 표현했다. 소복을 입은 여인의 농염한 웃음과 자태로, 머리를 길게 땋아 내려 미혼으로 짐작되는 그녀의 동생인 듯, 여인의 수줍은 미소를 타고 봄은 는실난실 그림 속으로 흐른다.
그 풍속도 아래 어항이 놓여 있다. 바람 한 점 일지 않는 어항 속, 구피의 경쾌한 몸짓이 만들어내는 물살에 잔잔한 물결이 일다가 보글거리며 구르고 굽이친다. 조그만 어항 속에 기포 알갱이들이 즐겁다. 봄은 봄인가 보다. 소리마저 발랄하다.
아침 일찍 따사로운 봄볕에 꾸덕꾸덕했던 마음도 풀고 몸도 말리고자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베란다에 어항을 내어놓았다. 창을 타고 넘는 봄바람에 춘심이 동하는 듯하다. 아침부터 고양이가 물끄러미 어항을 들여다보더니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가 다시 어항을 쳐다보며 내내 베란다를 떠나지 못하고 서성인다.
얼마 전에 구피를 선물 받았다. 구피는 갓난아기의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물고기다. 빨강, 노랑, 파랑, 검정 여러 빛깔의 무늬가 화려하다. 구피는 밥 잘 주고 물만 잘 갈아줘도 잘 자라서 키우기가 쉬운 인기 있는 애완용 물고기다. 번식력도 놀라울 정도이다. 활동력이 좋아서 어항이 좁거나 물을 많이 넣어주면 튀어 오르기도 한다.
어항을 꾸밀 때 횟집에서 얻어 온 소라껍데기를 넣고 물배추도 넣어주었다. 처음에는 두 마리였다. 암수 한 쌍이었는데 금세 새끼를 낳고 또 낳고 식구가 불어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항이 꽉 찰 정도였다.
새끼 낳는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시시때때로 관찰하는데도 번번이 그 순간을 놓치다가 겨우 한 번 제대로 보았다. 배 밑으로 새끼가 나올 때는 새 생명이 탄생하는 신비로운 광경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해산한 구피를 어항 밖으로 꺼내어 안아주고 미역국도 끓여주고 싶을 만큼 대견했다.
보통 새끼를 낳을 때 한 번에 스무 마리에서 서른 마리를 낳는다. 치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고 또 새끼를 낳고 자라니 점점 식구가 불어나게 되어 어항이 비좁았다. 그래서 새 집을 선물하자 싶어 마음먹고 질그릇으로 된 큰 어항을 사왔다.
평수 너른 집에 세간을 들이자 하고 물목을 적어놓으니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시냇가에서 가져온 크고 작은 돌들로 산과 집을 만들었다. 행운목 두 그루를 사서 돌 위에 얹으니 파라다이스가 따로 없다. 신혼여행을 위한 티켓을 애써 끊을 필요도 없이 사랑을 나누기에 안성맞춤이다. 부레옥잠도 넣고 물동전도 사서 넣었다. 무드를 잡는 데는 조명만큼이나 중요한 물목이다.
잔뿌리가 하늘거리는 부초도 넣었다. 구피들이 몸을 숨기고 사랑도 나눌 수 있는 은밀한 방도 만들었다. 치렁치렁 늘어진 부초의 잔뿌리만큼 사랑에 빠진 자들의 마음을 흔드는 것이 또 있을까. 자갈도 한 줌 넣어서 치어들이 태어나면 놀 수 있는 공간도 만들어주었다.
작은 어항이 아기자기한 맛이 느껴지는 사량도라면 큰 어항은 그보다 웅장하고 스케일이 큰 하와이 섬을 연상케 한다. 반쯤 채운 물 위로 포근하고 나른한 봄이 찰랑거린다. 봄을 탐하기에 더없는 장소가 되었다. 고양이와 나는 그림 속 봄의 뜨락과 어항 속의 풍경을 보며 봄에 취한 듯 졸음에 겨워하며 볕을 즐기고 있다.
정오가 되니 봄기운이 충만한 탓일까. 갑자기 빨간 수컷 구피의 몸짓이 현란해진다. 암컷들 주위를 무심한 듯 살랑살랑 꼬리치며 유영하다가 휙 돌더니 물 위로 튀어 오르다 다시 잠수한다. 그러기를 몇 번 더 하더니 기어이 부레옥잠 뿌리로 쏘옥 들어간다. 암컷 구피들이 떼 지어 그곳으로 오르르 몰려간다.
수컷의 꼬리는 제 몸통보다 크다. 깃털 같은 꼬리와 지느러미가 사치스러울 만치 화려하다. 저 현란한 꼬리로 교태를 부리면 넘어가지 않을 암컷 구피가 몇 있을까. 어항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나조차도 어항의 담장을 넘어가는 상상을 한다. 물속으로 풍덩 뛰어들고 싶어진다.
햇살이 한가롭게 어항 주위를 맴돌고 구피들의 짝짓기가 한창인 듯 물 구르는 소리가 요란하다. 구르는 물에서 구피가 일으키는 파문은 끊임없이 일고 있다. 가만히 지켜보던 내 마음에도 물결이 이는 듯하다. 베란다를 타고 흐르는 봄기운에 미소가 절로 인다.
고양이도 창가에서 후다닥 내려와 물 위로 손을 집어넣어 봄을 잡으려다 그 광경을 보고 손을 내려놓고 물끄러미 바라본다. 고양이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가는 저 미소가 예사롭지 않다. 나른한 오후, 혜원의 풍속도를 은근히 감상하듯이 봄을 즐기는 눈이 있었으니.
눈이 마주쳤다. 고양이는 웃는 듯 고개를 돌린다. 고양이도 무얼 알긴 아는 걸까. 이 순간만큼은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저도 아는 모양이다. 봄, 한가로운 아파트 거실에서 혜원의 「이부탐춘」을 다시 읽는다.
-문숙, 「봄, 「이부탐춘」을 다시 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