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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80695164
· 쪽수 : 256쪽
· 출판일 : 2024-12-13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4
1부 가족
까막눈 11
단골 17
똥 꿈 꾸기 23
빚 28
신의 설계 34
아무래도 40
알고는 못 자는 자리 46
이혼 연습 51
지금 그거 해서 뭐할 건데? 56
풀지 못할 매듭 63
2부 근심. 이웃. 일
가슴앓이 71
그 여자 쥑이기 75
뜻밖의 레이스 80
명의 87
비빌 언덕 93
아픈 손가락 99
옹이 105
인생의 셈 111
잘산 사람 117
3부 세상살이
눈물 값 125
아물지 않는 상처 130
웃고 살아도 될까 136
이름 바꾸기 143
이웃사촌 149
인연인 줄 알았던 인연은 인연이 아니었다 155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더니 163
천성 169
하고재비 176
홀림[詐欺] 183
4부 바다. 낚시. 여행 그리고 나눔
갈치 낚시의 재미 191
갈치 꿈 200
그날 밤 그 섬 207
맛을 기다린다 213
메아리 217
상사어相思魚 222
우리 집 냉장고엔 복어가 있다 228
융프라우 기행 233
정情 240
발문
의미에다 재미의 옷을 입힌 예술적 미감의 당의정糖衣錠 / 곽흥렬 244
저자소개
책속에서
왜 이렇게 하고 싶은 게 많을까. 호기심이었을 수도 있고 그림 그리는 걸 막은 할아버지를 향한 반항심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채울 수 없는 자기 위안일지도 모르겠다.
경상도에서는 호기심이 많아 무엇이든 하고 싶어하는 사람을 부르는 말이 있다. 표준말이 아니고 방언이라 하기도 뭣하지만 ‘하고재비’ 또는 ‘하고지비’라고 부른다. 수없이 시작하고 또 다른 것에 눈을 돌리며 부산하게 사는 나 같은 사람을 일컫는 말이 아니겠는가.
아직도 세상에는 하고 싶은 것이 널렸다. 칠십을 눈앞에 두고서도 멈출 기미가 없는 나는 뭐든 하고 싶어 좀이 쑤시는 사람이다. 아귀처럼 입 벌리고 먹을 게 들어오길 기다리는 신세가 될지라도 끝까지 하고재비이고 싶다.
---「하고재비」
서른두 해 전이었다. 빌려 간 수억 원의 수표를 부도낸 후 막냇삼촌이 연락을 끊었다. 내 발로 찾아간 경찰서 유치장에서 뜬눈으로 이틀을 보냈다. 평생 그렇게 깊고 많은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사람을 좋아하고 어려운 친구들은 어떻게든 챙기며 살아온 여태까지의 신념이 무너져 내리는 걸 느꼈다. 세상에 대한 불신과 원망으로 삶의 의욕마저 꺾으려던 차에 친동생 같은 대학 후배가 찾아왔다. 수표를 모두 회수할 정도의 금액이 든 통장과 도장을 건네면서 여유 있는 돈이라며 천천히 갚아도 된다는 얘기만 하고 갔다. 진심으로 후배 보기가 부끄러웠다. 그 바람에 마음을 고쳐먹은 계기가 되었다.
그 돈을 다 갚을 때까지 옆도 돌아보지 않고 살았다. 물론 어머니의 도움도 컸다. 빚을 다 갚은 날, 홀가분한 마음으로 퇴근하니 어머니가 와 계셨다. 아내로부터 무슨 얘길 들으셨는지 조곤조곤 당부하고 가셨다.
“넌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탈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여백餘白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제발 뭐든 적당히 하고 네 가족이 제일 우선이라는 생각으로 살아라.”
---「천성」
조카들이 생겼어도 동생은 그 버릇을 고치지 않았다. 납품하고 받은 돈은 주머니째 술집에 탈탈 털어주고 오기 바빴다. 집 한 칸 장만하지 못하고 이승을 뜬 지 벌써 강산이 두 번이나 옷을 갈아입었다. 내가 아들과 딸을 다 미국으로 유학 보내 놓고 부쩍 외로움을 타던 때였다. 아내와 의논해 제수씨와 조카 둘을 우리 집으로 불러들였다. 가족이 다섯 명으로 불어나자 시끌시끌하고 사람 사는 맛이 났다. 퇴근하면 조카딸과 앞산을 걷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두 해를 그렇게 살다가 살림을 내보냈다.
---「아픈 손가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