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 비밀노트

네 샷 넣은 무지방 카페라테, 라지사이즈 :
싸가지가 없으며 섹시함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얼간이 같은 녀석이 마시는 음료. 입만 열면 멍청한 소리만 함. 몸도 별로라서 운동을 좀 해야 할 것 같음. 패션센스 꽝. 가슴 큰 여자가 눈에 띄면 노골적으로 쳐다봄. 속이 배배 꼬여 있어서 스스로 화를 자초함.

내가 하고 있는 게 뭔지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도저히 설명불가다. 한 석 달쯤 전에 심심해서 노트에 낙서를 하던 중이었다. 그때 여자 손님 하나가 와서 라지사이즈의 캐러멜프라피캡을 주문했는데, 그 순간 ‘이 여잔 라지사이즈의 캐러멜프라피캡 타입 같다.’는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와이어드 조 카페가 아닌 다른 데서 마주치더라도 이런 타입이라면 이런 음료를 마실 것 같은 거다. ‘당신이 마시는 음료가 당신을 설명한다.’는 이론이라고나 할까?

“내게도 커피를 가지고 사랑의 결실을 맺어줄 수 있는 능력이 있지.”
“아아, 그러세요?”
나를 놀리려는 건가보다.
“정말이라니까!”
“그럼 저한테 상담할 필요도 없겠네요? 토피넛라테와 가장 잘 어울리는 음료가 뭔지도 잘 알 테니까.”
“잘 알지.”
“그래요?”
그러자 그가 더할 나위 없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토피넛라테와 완벽하게 잘 어울리는 음료는 휘핑크림을 뺀 라지사이즈의 무지방 아이스 모카랍니다.”
“뭐?”
순간 어리둥절해진다. 얼른 노트를 넘겨보다가, 그제야 갑자기 깨닫는다. 그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료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