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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81405458
· 쪽수 : 304쪽
· 출판일 : 2015-03-30
책 소개
저자소개
책속에서
상촌은 학덕이 높은 선비여서 그 댁에 드나들며 글 읽는 젊은이가 많았다. 딸이 차츰 자라나자 여러 문하생들이 너도나도 스승의 눈에 들어 사위가 되고 싶어 했다. 몇몇 제자를 저울질하던 그는 어느 날 김유탁을 불러 놓고 뜬금없이 물었다.
“아내가 병이 났다면 남편이 어떻게 처신해야겠나?”
“외도하지 말아야 합니다.”
너무나 직설적인 뜻밖의 대답이었다.
“외도하지 말아야 한다고? 무슨 까닭인가?”
“비록 반듯한 부덕을 갖춘 아녀자라 할지라도 병이 들면 마음이 허약해져 남편의 외도를 참아내기 어려워집니다. 혹시 원망하는 마음이라도 생기면 부부간의 신의가 깨어질 수 있습니다. 자제함이 옳지 않겠습니까?”
그 순간 뒤통수에서 쫓아오던 소리가 멎고 ‘아 아 앗!’ 하는 나지막한 괴성이 들렸다. 멈칫하며 고개를 돌려 보니 녀석의 발이 돌부리에 걸린 듯 기우뚱하면서 중심을 잃고 벼랑 끝에서 뭘 잡아 보려고 한동안 두 팔을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더니 몸을 가누지 못하고 절벽 아래로 곤두박질해 버렸다. 눈 깜짝할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마현댁은 아찔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가 다시 목을 쑥 빼서 사내가 떨어진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새벽안개가 자욱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스님 말씀에 따라 이승의 미련을 끊고 저승으로 가려고 생각해 보았으나 자꾸만 마음이 흔들립니다. 스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오어사는 저를 이승에 있게 했습니다. 일각스님께서 앞일을 훤히 내다보시고 어머니를 불공드리러 오시게 해서 아버지를 만나게 마련하고 저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자비로우신 부처님! 나의 태어남의 축복은 바로 부처님이 내리신 자비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옛날에 혜공대사와 원효대사께서 구름사다리를 타고 저 산봉우리를 오르내리시며 잡수신 고기를 다시 살려내었다면 그런 이적(異蹟)이 부처님께서 마련해 주신 오늘의 저에게도 없을 수 없을 것입니다. 비록 일천수백 년 세월에 여러 대를 거쳤지만 원효대사의 신묘한 법을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물려받아 단박에 깨우침을 얻은 분이 일각스님이요, 일각스님을 모시고 날마다 닦고 닦아 법을 받든 분이 또한 스님이 아니십니까? 스님께서는 능히 옛 이적을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저의 혼령을 환생시켜 남들처럼 천수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도록 해 주십시오.”
“가당찮은 소망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