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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82181016
· 쪽수 : 216쪽
책 소개
목차
구두끈은, 왜?
옮긴이의 말
책속에서
점심시간 직전에 왼쪽 구두끈이 끊어졌다. 그전에 책상에 앉아서 간단한 서류를 작성하고 있는데 왼쪽 구두끈이 풀렸다. 내 발은 자유를 좀 맛볼까 하고 검은 코르도바 가죽 사우나에서 미끄러져 나왔다. 카펫 위에서 발을 가볍게 움직여주면 피로가 좀 풀릴 테니까. 카펫은 사무실 전체에 깔려 있는데, 통로 쪽은 사람들이 많이 다녀서 단단하게 다져졌지만 책상 아래에는 처음 깔았을 때와 다름없이 섬유의 부드러운 느낌이 남아 있다. 책상 아래나 잘 쓰지 않는 회의실처럼 카펫의 털이 서 잇는 곳엔, 야간 작업조가 진공청소기를 밀고 다닌 흔적을 따라 M자와 V자가 줄지어 나타난다. 말끔한 술이 한 줄은 빛을 흡수하고 또 한 줄은 빛을 반사해 생기는 모양이다.
흑백영화나 호퍼의 그림을 보건대, 지금처럼 사무실마다 카펫을 깐 것은 분명 내가 태어난 이후의 일이다. 카펫을 고집함으로써, 이제 누가 지나가더라도 발소리는 들리지 않고 그 사람이 내는 다른 소리가 들리게 되었다. 레인코트 펄럭이는 소리, 잔돈 짤랑거리는 소리, 신발 찍찍거리는 소리, 그리고 코로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 그러니까 자기가 바쁘다는 걸, 뭔가 아주 중요한 일로 어딜 가는 중이라는 걸 사람들이나 자기 자신에게 알리는 소리. 그뿐 아니다. 접수계원의 어질어질하고 촌스러운 향수 냄새마저 훅 하며 들릴 듯하고, 좀더 고상한 향수를 쓰는 비서들이 바로 뒤에서 은밀하게 숨을 참으며 혀를 내두르고 팔찌 낀 손목을 목에 갖다 대는 소리까지 들린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