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어린이 > 초등 한국사
· ISBN : 9788983895851
· 쪽수 : 256쪽
· 출판일 : 2014-10-30
책 소개
목차
고대 사회
윷놀이에서 ‘윷’은 무슨 뜻일까?
구들 깔린 온돌에서 윗목, 아랫목은?
선비들이 거문고를 좋아한 까닭은?
연날리기에서 유래된 ‘꼬드기다’의 어원은?
빗살무늬 토기의 모양이 특이한 까닭은?
다뉴세문경은 어떤 용도로 쓰였을까?
영토 확장 기념비가 아닌 것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석탑은?
고인돌을 왜 만들었을까?
고조선 8조법에 해당되지 않는 조문은?
고대 사회에서 행해졌던 ‘순장’ 풍속이란?
고구려의 도읍지를 옮기게 만든 동물은?
신라 화랑은 어떤 인물을 우두머리로 뽑았을까?
고구려를 세운 동명 성왕의 이름과 뜻은?
고구려의 명재상 을파소가 펼친 정책은?
원효 대사가 깨달은 ‘일체유심조’란?
계백 장군이 결전 장소로 황산벌을 택한 이유는?
고려 시대
신숭겸이 위기에 빠진 왕건의 목숨을 구한 곳은?
신라 마지막 태자는?
바닷바람에 말린 조기 ‘굴비’의 어원은?
두문불출과 관련된 두문동이 있는 산은?
고려인이 발명한 부채는 어떤 형태일까?
고려 활[弓]의 특징은 무엇일까?
청와대의 유래가 된 기와 색깔은?
고려인이 세계 최초로 발명한 인쇄 기술은?
신라 말과 고려 초에 활발히 활동한 ‘호족’의 정체는?
고려 시대의 ‘기인’은 어떤 존재였을까?
고려 태조가 후손에게 남긴 유훈은?
고려 시대에는 어떤 방법으로 관리를 뽑았을까?
몽골에서 고려로 전해진 풍속은?
궁예가 말한 ‘관심법’이란 무엇일까?
강감찬이 호랑이를 물리친 묘안은?
원나라에 반기를 들고 개혁 정책을 펼친 국왕은?
최영 장군 집 음식이 맛났던 까닭은?
시조 「단심가」를 남기고, 절개를 지킨 고려 충신은?
조선 시대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의 갈등이 낳은 사자성어는?
‘눈 하나 깜짝 안 한다’는 말의 유래는?
흥청망청의 어원은 무엇일까?
‘영문을 모르다’는 말의 유래는?
측우기의 용도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 서원’을 세운 사람은?
국보 1호 ‘남대문’의 현판에 적힌 명칭은?
고을 관아를 왜 ‘동헌’이라 부를까?
조선 시대 ‘공주’와 ‘옹주’의 호칭 차이는?
백일장은 언제 왜 생겼을까?
수양 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난’이란 무엇일까?
임금이 암행어사에게 준 마패와 유척은 무슨 뜻일까?
세종이 황희를 오래도록 정승에 임명한 이유는?
증손자가 위기에 빠졌을 때, 이황의 선택은?
임꺽정의 신분은 무엇이었을까?
이순신 장군의 학익진 전술이란 무엇인가?
왜 ‘암행어사’ 하면 박문수가 유명할까?
한국 근현대
신작로의 어원은?
‘전화 걸다’라는 말의 어원은?
구한말 일진회와 학생 폭력 조직 일진회의 유래는?
‘을씨년스럽다’는 ‘을사늑약’과 관계있을까?
대한 제국의 옥새는 어떻게 생겼을까?
한강에 설치된 최초의 다리는?
망명 정부와 임시 정부는 어떻게 다를까?
이봉창과 윤봉길 의거가 대단한 까닭은?
미국 군정이 민족 반역자 처벌을 반대한 까닭은?
광복 이후 최초의 세계 마라톤 대회 우승자는 누구?
제헌 국회에서 선출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은?
‘민비’와 ‘명성 황후’의 호칭 차이는 무엇일까?
자전거를 처음 탄 우리나라 사람은 누구?
애국가 작곡 유래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와 한인 애국단을 이끈 인물은?
리뷰
책속에서
‘을씨년스럽다’는 ‘을사늑약’과 관계있을까?
1905년 일제는 이른바 ‘제2차 한일 협약’을 체결했다면서 대한 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아갔습니다. 고종이 반대했음에도, 일제가 일방적으로 작성하고 날조한 엉터리 협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제2차 한일 협약은 ‘을사조약’이 아닌 ‘을사늑약’입니다. 여기서 ‘늑약’이란 무슨 뜻일까요?
1. 억지로 맺은 조약
2. 늑대가 짖을 정도로 한심한 약속
3. 갈비뼈가 아플 정도로 억울한 약속
‘을씨년스럽다’는 예전부터 사용한 말입니다. 1855년 발간된 《송남잡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입니다. “세상에서 을사년(乙巳年)은 흉하다고 두려워하는 까닭에 지금 생전 낙이 없는 것을 ‘을씨년스럽다’고 한다.”
그런데 1905년 일제가 국제법상으로 적법하지 않은 불공정한 조약을 맺어 일방적으로 발표하자, 곳곳에서 일본을 물리쳐야 한다며 반발했습니다. 나라를 팔아먹은 데 앞장선 을사오적을 처단하자는 여론이 일었고, 상인들은 가게 문을 닫고 항의했으며, 학생들은 자진 휴학하여 매국노의 망국적 행위를 규탄했습니다. 전국은 그야말로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연출했습니다. 이 때문에 ‘을씨년스럽다’는 말이 을사늑약에서 비롯됐다는 오해가 생겼습니다. 을사년에서 ‘을씨년’이란 말이 생겼다고 착각한 것이지요.
그렇지만 외교권을 빼앗기고 실질적으로 일본 식민지로 전락한 을사년의 충격이 워낙 컸기에 ‘을씨년스럽다’의 어원이 잘못 알려지면서 널리 퍼지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