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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껄껄 선생이라오

나는 껄껄 선생이라오

박지원 (지은이), 홍기문 (옮긴이)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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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껄껄 선생이라오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나는 껄껄 선생이라오 
· 분류 : 국내도서 > 고전 > 우리나라 옛글 > 산문
· ISBN : 9788984281905
· 쪽수 : 546쪽
· 출판일 : 2004-11-15

책 소개

<연암집>에서 박지원 문학의 정수를 볼 수 있는 글 90여 편을 뽑아 엮은 것이다. '총석정 해돋이'를 비롯한 시 13수, '양반전'을 비롯한 단편 소설 10편, <북학의> 등 문집 서문, 서자들을 등용하자는 상소, 노비를 없애자는 논문, 벗들에게 쓴 편지글 따위가 두루 들어 있다.

목차

내 하는 이 말을 조용히 들으라
총석정 해돋이
좌소산인에게
비가 잠깐 걷을 대 길을 가다가
농가
해인사
새벽에 길을 가다가
극한
산길을 가다가
압록강을 건너서 용만성을 바라보고
구련성에서 노속하면서
통원보에서 비에 막혀 묵으면서
요동벌의 새벽길
연암에서 돌아간 형님을 생각하고

양반이 한 푼도 못 되는구려
방경각외전 머리말
말거간전
예덕 선생전
민 노인전
양반전
김 신선전
광문자전
우상전
허생전
범의 꾸중
열녀 함양 박씨전

옛것을 배우랴 새것을 만들랴
중국에서 마음 맞는 벗을 사귀다
옛것을 배우랴 새것을 만들랴
어떻게 영숙의 길을 만류하겠는가
생활이 유익해야 덕이 바로 선다
보름날 해인사에서 기다릴 것이니
글은 뜻을 나타내면 그만이다
의인과 소인배
역관 보기 부끄러워
멀리 보이는 산에는 나무가 보이지 않고
말똥구리의 말똥덩이
파란 앵무새에게 말하노니
선비의 작은 예절
뒷동산 까마귀는 무슨 빛깔인고
사흘 읽어도 지루하지 않은 북학의
책을 빌려 주지 않는 사람들아
무관의 시는 현재의 시다
아침 나절에 도를 듣는다면
옛 사람을 모방해서야
내 책으로 장항아리를 덮겠구나
먹던 장도 그릇을 바꾸면 새 맛
몇백 번 싸워 승리한 글
밤길의 등불 같은 채

나를 비워 남을 들이네
제 몸을 해치는 것은 제 몸속에 있으니
백척오동각을 지어놓고
연암의 제비가 중국에서 공작새를 보았다
아침 연꽃, 새벽 댓잎
제 몸 혼자 즐기기에도 오히려 부족하다
곽공을 제사 지내며
다섯 아전의 큰 의리
천년 전의 최치원을 기리며
홍학재를 지은 뜻
바위에 이름을 새긴들
여름밤에 벗을 찾아서 놀다
사흘째 끼니를 거르고
겨울 눈 속 대나무
나를 비워 남을 들이네
내가 하나 더 있어서
늘그막에 휴식하는 즐거움
자고 나니 내가 없구나
나무가 고요할 때야 바람이 어디 있느냐
말머리에서 무지개를 잡으니
벗들과 술에 취해서

나는 껄껄 선생이라오
이름을 걸고 칼날 위에 서다
부자들의 토지를 나누어 주어라
서자는 부끄러운 자식입니까
천하 사람의 근심을 앞질러 근심하시오
화폐가 흔한가 귀한가
김귀삼의 살인 사건
장수원의 강간 미수사건
굶주린 백성이 살 길
나는 껄껄 선생이라오
혼자 억측하지 마십시오
머무르고 떠나는 일

돼지 치는 이도 내 벗이라
나더러 오랑캐라 하니
<열하일기>에 아직도 시비라니
웃음의 말
아이가 나비를 잡으려 하나
약하게 단단할지언정
이름을 숨기지 말고
도로 네 눈을 감아라
개미와 코끼리
평생 객기를 못 다스리더니
돼지 치는 이도 내 벗이라
출세한 벗에게 이르노니
나의 벗 홍대용

박지원 연보
박지원 작품에 대하여 - 김하명

원문 차례

저자소개

박지원 (원작)    정보 더보기
조선 후기의 탁월한 문장가이자 실학자다. 박사유(朴師愈)와 함평(咸平) 이씨(李氏) 사이에서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6세에 처사 이보천(李輔天)의 딸과 결혼했다. 장인에게는 《맹자》를, 처삼촌 이양천(李亮天)에게는 《사기(史記)》를 배워 본격적인 학문을 시작했다. 처남인 이재성(李在誠)과는 평생의 문우(文友) 관계를 이어 갔다. 청년 시절엔 세상의 염량세태에 실망해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고생했으며 이러한 성장 배경을 바탕으로 진실한 인간형에 대해 모색한 전(傳) 아홉 편을 지어 《방경각외전(放?閣外傳)》이라는 이름으로 편찬했다. 영조 47년(1771) 마침내 과거를 보지 않기로 결심하고 서울 전의감동(典醫監洞)에 은거하면서 홍대용,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을 비롯한 많은 젊은 지식인들과 더불어 학문과 우정의 세계를 펼쳐 갔다. 정조 2년(1778) 홍국영이 세도를 잡고 벽파를 박해하자 생명에 위협을 느끼고 황해도 금천군(金川郡)에 있는 연암협(燕巖峽)으로 피신해 은둔 생활을 했다. 연암이라는 호는 이 골짝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정조 4년(1780)에 삼종형(三從兄)인 박명원(朴明源)의 연행(燕行) 권유를 받고 정사의 반당 자격으로 북경에 가게 되었다. 이때 건륭 황제가 열하에서 고희연을 치르는 바람에 조선 사신 역사상 처음으로 열하에 가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연행을 통해 깨달음을 확대한 연암은 여행의 경험을 수년간 정리해 《열하일기》를 저술했다. 정조 10년(1786) 유언호의 천거로 음사(蔭仕)인 선공감(繕工監) 감역(監役)에 임명되었다. 정조 13년(1789)에는 평시서주부(平市署主簿)와 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를 역임했고, 정조 15년(1791)에는 한성부 판관을 지냈다. 그해 12월 안의현감에 임명되어 다음 해부터 임지에서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때 정조 임금이 문체를 타락시킨 장본인으로 《열하일기》를 쓴 연암을 지목하고는 남공철을 통해 순정한 글을 지어 바치라 명령했으나 실제로 응하지는 않았다. 정조 21년(1797) 61세에 면천군수로 임명되었다. 이 시절에 정조 임금에게 《과농소초(課農小抄)》를 지어 바쳐 칭송을 들었다. 1800년 양양부사로 승진했으며 이듬해 벼슬에서 물러났다. 순조 5년(1805) 10월 20일 서울 가회방(嘉會坊)의 재동(齋洞) 자택에서 깨끗하게 목욕시켜 달라는 유언만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선영이 있는 장단(長湍)의 대세현(大世峴)에 장사 지냈다. 박지원의 문학 정신은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옛것을 본받되 변화를 알고 새롭게 지어내되 법도를 지키라”는 의미다. 그는 문학의 참된 정신은 변화의 정신을 바탕으로 창조적인 글을 쓰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 비슷하게 되려는 것은 참이 아니며, ‘닮았다’고 하는 말 속엔 이미 가짜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연암은 억지로 점잖은 척 고상한 글을 써서는 안 되며 오직 진실한 마음으로 대상을 참되게 그려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그는 틀에 박힌 표현이나 관습적인 문체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문체를 지향했다. 나아가 옛날 저곳이 아닌 지금 여기를 이야기하고자 했다. 중국이 아닌 조선을, 과거가 아닌 현재를 이야기할 때 진정한 문학 정신을 구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연암의 학문적 성취와 사상은 《열하일기》에 집대성되어 있다. 《열하일기》에서 연암은 이용후생의 정신을 기반으로 청나라의 선진적 문물을 받아들여 낙후된 조선의 현실을 타개하자는 주장을 펼침으로써 북학파를 대표하는 학자로 우뚝 서게 되었다. 연암은 《열하일기》 외에도 《방경각외전》, 《과농소초》, 《한민명전의(限民名田議)》 등을 직접 편찬했다. 연암의 유고는 그의 아들 박종채에 의해서 정리되었는데 아들이 쓴 〈과정록추기〉에 의하면 연암의 유고는 문고 16권, 《열하일기》 24권, 《과농소초》 15권 등 총 55권으로 정리되었다. 《열하일기》는 오늘날 완질은 26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암의 작품은 대부분이 문(文)이며 시(詩)는 50여 편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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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문 (옮긴이)    정보 더보기
1903년에 나서 1992년까지 살았다. 벽초 홍명희의 아들이다. 중국과 일본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신간회 운동에 참여했다. 국어학 연구가 깊어 《정음발달사》, 《조선문법연구》를 냈으며, ‘조선학의 본질과 현상’이라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1947년에 북으로 가 국어학 연구를 계속하면서 조선왕조실록 번역사업을 총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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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무섭다, 무섭다 해도 제 자신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네. 제 바른눈은 용이 되고 왼눈은 호랑이가 되고 혓바닥 밑에는 도끼를 감춰 두었고 팔목을 굽혀서는 활이 되네. 처음 생각은 천진스러운 젖먹이 같다가도 조금만 비뚤어지면 오랑캐로 되고 마는 것일세.

만약 경계하지 않으면 제가 저를 씹어먹고 긁어 먹고 찔러 죽이고 쳐죽일 것일세. 그래서 성인이 제 욕심을 절제해서 예절을 따르게 하고, 간사한 생각을 막아서 진실한 마음으로 일관하게끔 하는 등 제 자신을 제일 무서워한 것일세.

-'민 노인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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