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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아메리카사 > 미국/캐나다사
· ISBN : 9788984353350
· 쪽수 : 368쪽
· 출판일 : 2014-11-07
책 소개
목차
머리말
제1장 미리 와 있던 사람들
캐나다 땅을 처음 밟은 사람들
북서해안 지방 원주민
고원 지방 원주민
평원 지방 원주민
북극 지방 원주민
아북극 지방 원주민
동부 삼림 지방 원주민
삶의 터전을 잃은 원주민
제2장 신대륙 발견
캐나다 땅의 첫 유럽인
캐나다에 들른 첫 탐험가들
카르티에의 도전과 실패
북서통로를 찾아서
다시 찾아온 프랑스인들
제3장 동부 정착
첫 식민지
프랑스 식민지 아카디아
영국 식민지와 아카디아
아카디아와 영·불 간의 갈등
영국의 통치와 추방령
샹플랭과 뉴프랑스
프랑스 탐험가들과 모피상
뉴프랑스의 성장
뉴프랑스의 영주제도
뉴프랑스와 가톨릭교
이로쿼이 족의 공격
퀘벡의 서민사회
퀘벡의 상류사회
뉴프랑스의 농촌생활
허드슨 베이 컴퍼니
초기 영국 식민지
대서양 연안의 영국 식민지들
18세기 후반의 노바 스코샤와 그 주변
18세기 뉴펀들랜드
제4장 대륙 쟁탈
북미대륙의 두 앙숙
다시 시작된 싸움
뉴프랑스의 쇠망
영국의 재공격
퀘벡의 함락과 뉴프랑스의 멸망
아메리카 혁명의 태동
영국에 대한 저항
독립전쟁
제5장 낯선 땅에서의 생활
충절파가 택한 땅
연안 지방의 충절파
내륙으로 이주한 충절파
영국 점령하의 퀘벡 시
달라진 로어 캐나다
로어 캐나다의 경제
개척 초기
개척사회
개척민들의 보람
제6장 전쟁과 반란
1812(십팔십이) 전쟁
캐나다의 승리
전쟁 중 핼리팩스
로어 캐나다의 불만
로어 캐나다의 반란
어퍼 캐나다의 불만
어퍼 캐나다의 반란
더럼 보고서
1840년대의 킹스턴
제7장 이민과 팽창
대거 이주
아일랜드인들의 이주
모피 교역과 탐험
레드 강 식민지
태평양 연안 탐사
빅토리아 요새
골드러쉬
제8장 연방
캐나다의 태동
샬럿타운과 퀘벡 협의회
페니언 159
신생국 연방
수도 오타와
제9장 바다에서 바다까지
루퍼트 랜드
리엘의 첫 번째 반란
매니토바 주의 탄생
브리티시 컬럼비아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1870년대 토론토
북서 기마경찰
인디언 조약
철도
통신
메티스와 인디언의 불만
북서부 반란
루이 리엘의 죽음
리엘의 죽음과 몬트리올
클론다이크 골드러시
제10장 20세기의 문턱에서
맥도널드와 국가정책 202
산업발전 204
노동운동
아동교육과 미성년자 고용
19세기 말의 캐나다 여성
여성의 사회참여와 투표권
로리에 시대
1895년 위니펙
이민
대평원의 정착민들
세기의 문턱에 선 대평원
연안 지방과 중부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브리티시 컬럼비아 이민
19세기 말의 밴쿠버
국제사회와 캐나다의 위상
보어 전쟁
1912년 캘거리
20세기를 향한 캐나다
제11장 제1차 세계대전
전쟁의 발단
서부전선
이프르 전투와 비미릿지 전투
공중과 해상작전
전시경제와 여성
징병제도
종전
제12장 분노의 계절
위니펙 총파업
대공황
대평원의 기근
구호 캠프
경제정책의 변화
캐나다의 변신
제13장 제2차 세계대전
선전포고
영국전투
디에프 기습작전
전시 캐나다 국민
홍콩 전투와 일본계의 수모
후방의 또 다른 전쟁
다시 불거진 징집문제
이탈리아 전투
디데이에서 종전까지
제14장 20세기 중반
다시 찾은 평화와 킹 수상
뉴펀들랜드 합병
지하자원의 개발
유엔과 한국전쟁
세인트 로렌스 수로
전후 인구 증가
디펀베이커 시대
외교관 출신, 피어슨
신민주당
제15장 트뤼도에서 크레티앵까지
스타 트뤼도
새로운 이민정책과 다중문화
트뤼도의 경제정책
트뤼도의 재집권
에너지 정책과 트뤼도의 퇴진
멀로니의 등장
국방 외교정책
자유무역
원주민들의 목소리
엘리자베스 여왕과 캐나다
세기를 넘는 크레티앵
제16장 퀘벡과 분리주의
뉴프랑스의 후예들
조용한 혁명
10월 위기
레베크와 퀘벡당
주민투표
부라샤의 복귀와 언어분쟁
꺼지지 않는 불씨
부록
역대 캐나다 수상
찾아보기
저자소개
책속에서
몬트리올은 1800년대에도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두 개의 문화를 공유하는 도시였다. 당시 인구는 20만으로, 도시의 서쪽에는 영국인들과 스코틀랜드인들이 살았고, 동쪽에는 프랑스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또 영국계와 프랑스계를 불문하고 가난하고 가톨릭교를 믿는 아일랜드 태생의 노동자들은 도시의 동쪽에 있는 불어권에서 살았고, 프랑스계 사람들 중에서도 돈 많은 부자들은 도시의 서쪽에 있는 영어권에서 살았다.
이와 같이 몬트리올은 대체적으로 도시가 종교·언어·지역적인 면에서 양분되어 있었으며, 도시 전체를 볼 때는 부자와 빈자, 영어와 불어, 신교와 구교가 공존하는 도시였다.
몬트리올은 또 사시사철 계절에 따라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스포츠와 놀이 외에도 축제와 공연 등 볼거리가 많은 도시였다. 그러나 이러한 즐거운 분위기를 온 시민이 공유한다고 해도 두 지역 간에 파여 있던 갈등의 깊은 골은 숨길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1885년 루이 리엘의 처형은 영국계와 프랑스계 시민들 사이에 벌어져 있던 틈을 더욱 넓혀놓는 계기가 되었다.
1970년 10월 5일 아침, 영국 외교관 크로스(James Cross)가 몬트리올에 있는 그의 집에서 갑자기 총구를 들이대는 괴한들에 의해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납치범들은 곧 자신들을 퀘벡해방전선(FLQ)의 행동대원이라고 밝혔고, 50만 달러의 몸값과 그들의 뜻을 퀘벡 주민들에게 전할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시간을 할애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들은 또 테러 활동을 하다 붙잡혀 교도소에서 수감 중인 퀘벡해방전선의 전사 23명을 석방하여 자기들과 함께 국외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길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했다. 만일 그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크로스를 처단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들은 이번 납치가 폭력을 촉발하여 결과적으로 퀘벡이 캐나다로부터 분리되기를 희망했다.
캐나다 국민들은 다른 나라에서나 있을 법한 테러 사건이 평화롭고 안전한 캐나다에서 발생했다는 데 경악을 금치 못했다. 경찰은 납치범들에 대해 아무런 단서도 잡지 못했다. 5일 후에는 또 다른 납치사건이 터졌다.
10월 10일 토요일, 당시 퀘벡 주의 노동장관이었던 라포르테(Pierre Laporte)가 교외에 있는 그의 집 밖에서 아들과 함께 축구를 하던 중 무장괴한들에게 납치되었다. 두 번째 납치사건은 퀘벡 주민들을 더욱 경악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