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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84370951
· 쪽수 : 400쪽
· 출판일 : 2009-05-13
책 소개
목차
1. 오대산 타잔
2. 발병
3. 소록도 가는 길
4. 경련주사
5. 생체실험과 감금실
6.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7. 에필로그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나환자들은 친한 사람끼리 잡담에 여념이 없다가 우렁찬 구령소리에 차렷동작을 취하며 곁눈질을 했다. 각 과장을 대동한 채 걸어오고 있는 신임원장은 육척의 거구였다. 거무죽죽한 피부에 작은 눈, 끝이 휘어진 매부리코와 콧수염, 나환자들의 눈에는 생김새부터 완전 비호감인 사람이었다. 제복만 벗는다면 원장이 아니라 뚝바리(소도둑)가 훨씬 더 어울릴 것 같았다.
구병사(구북리)의 대열 중간쯤에 서있던 김용국이 옆자리의 박영호에게 속삭였다.
“영호야, 저 자식 떡시루 엎었지?”
“그러게, 이미 날 샌 것 같다.”
옆에서 듣고 있던 안창민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정말 생긴 걸 보니 싹수가 떡잎부터 벌레 먹었군. 구관이 명관이라고 갈수록 좆같은 놈만 오네.”- 99쪽 중에서
조선총독부의 협조 요청으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물론 모든 언론이 소록도의 장밋빛 미래에 대해 보도했다. 국민들은 보기에도 혐오스럽고 두려웠던 문둥이를 모두 소록도에 수용한다는 것에 고무되었고, 가여운 사람들이 그곳에서나마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니 조선총독부에서 모처럼 옳은 일을 한다며 대환영이었다. 기업인은 물론 어린아이도 소록도에 보내기 위해 저금통을 깼으며 남산과 종로의 기생, 형무소에 수감된 죄수들까지 나예방협회의 모금운동에 적극 동참했다. - 137쪽 중에서
수호는 관동군방역급수부에서 교육을 마치고 돌아올 오사카의 연구실, 시체해부실, 단종수술실도 치료본부 안에 배치했다. 감금실은 치료본부와 약간 거리를 둔 곳에 따로 설계했다.
점령군의 통치자(독재자)에게 가장 필요한 건 두말할 필요도 없이 경찰과 형무소다. 소록도는 하나의 작은 왕국이었다. 그 왕국의 최고 권력자로 등장한 수호가 확장공사 때 가장 먼저 계획하고 설계한 도면도 바로 형무소와 감금실이었다. - 149~150쪽 중에서
오사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만주에서 교육받을 때부터 소록도에 오면 해보고 싶은 게 참 많았다. 네 놈을 처음으로 실험할 수 있게 돼 마음이 흐뭇하구나. 넌 인류의 의학발전에 큰 공헌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당시만 해도 인간의 뇌에 대한 의학적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더구나 살아있는 인간의 뇌를 들여다보며 그 기능을 연구한다는 발상 자체가 악마적이어서 상상조차 못할 일이었다.
오사카에게 뇌 연구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이 명품 바이올린을 탐내고 풋내기 유도선수가 금메달을 꿈꾸는 것과 마찬가지로 침 넘어가는 유혹이었다. 오사카는 메스로 진수의 눈썹 바로 윗부분을 일직선으로 그은 다음 양쪽 귀 부분까지 깊게 잘라냈다. 가늘게 파고든 상처에서 이슬 같은 핏방울이 몽글몽글 솟아오르더니 핏방울끼리 모여 굵은 띠를 만들었다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미간의 상처에 손가락을 집어넣은 오사카가 가죽을 들어내며 지혈제 가루를 뿌렸다. 살갗을 정수리 뒤로 잡아당기자 머리가죽이 벗겨지며 허연 두개골이 모습을 드러냈다. - 240~241쪽 중에서
아직 세상에 괴저병이 드러나지 않았던 1930년대 중반 오사카의 괴저병 연구주제는 이런 것이었다. 모든 세균은 대개 신선한 육즙(肉汁)에서 왕성하게 번식한다. 이때 세균의 먹이를 독한 것으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 가령 지네를 수백 마리 먹인 닭은 여느 닭과는 다른 형질을 지닌다. 깃털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성장이 빠르다. 행동 역시 민첩하고 악독해진다. 여러 종류의 뱀을 토막내 약간 부패할 정도로 놔두었다가 닭에게 먹이면 깃털이 모두 빠졌다가 다시 나는데 역시 지네를 먹인 닭과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 지네와 뱀의 독이 닭의 형질을 변모시킨 것이다.
나병의 외부 증상은 괴저병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나균에 깊이 오염된 환자의 근육 깊숙한 곳에 강력하게 사육된 괴저균을 투입하면 형질이 변하지 않을까? 나환자들에게 각기 다른 양과 비율의 괴저균을 투입해 다양한 실험을 거쳐보면 과연 어떤 결과를 얻어낼 수 있을까? 발병 후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야 환자의 고통이 가장 심하게 나타날까? 피부색이 변해가는 과정, 사망 직전에는 어떤 모습을 하게 될까?
오사카는 환자에게 투입된 괴저균의 진행 상태를 면밀하게 기록해 최상의 결과를 얻어내는 게 목표였다. 또 괴저병이 진행되고 있는 도중에 파상풍, 탄저균, 비브리오 패혈증을 일으키는 균 등 치명적인 병균을 인체에 소량 투입하면 최종 승자인 괴저균은 어떤 형질을 지닌 세균이 될지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연구하는 중이었다. 보다 강력한 가스괴저균을 만들기 위해서는 긴 시간과 수많은 마루타가 필요했다. - 276~277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