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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84374485
· 쪽수 : 472쪽
· 출판일 : 2022-07-18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제리의 주차장 전체를 계약했어요. 저녁 시간, 주말, 휴일에.”
그레이스는 어찌나 기쁜지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녀가 제리의 주차장을 재임대하자고 했을 때 프랭크는 시간 낭비라며 난색을 표했다. 그가 이미 몇 번 말을 꺼내 보았지만 제리는 전혀 관심이 없더라고. 그레이스는 계약이 성사될 경우 제법 짭짤한 수입이 발생하는 만큼 다시 한번 시도해 보자며 고집을 부렸다. 프랭크는 그녀에게 알아서 협상해 보라며 계약이 성사만 되면 수입의 10퍼센트를 떼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레이스는 일에 착수한 지 석 달 만에 계약서를 손에 쥐었다. 그녀는 앞으로 발생하게 될 수입이 어떤 축복을 가져다줄지 따져보느라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첫째, 지미의 도박 빚을 갚을 수 있어 앞으로는 뒤를 살피며 다닐 필요가 없었다. 둘째, 자동차 타이어를 새것으로 교체할 수 있었다. 셋째, 마일스를 형편없는 주간 보시설에서 데리고 나올 수 있었다. 몇 달 후 시급한 문제들을 모두 해결하고 나면 지금보다 훨씬 좋은 아파트로 이사할 수도 있었다. 마일스를 편안하게 씻기려면 욕조가 구비된 아파트가 필요했다. 생후 4개월이 된 마일스는 혼자 자리에서 일어나 앉기 시작했다.
프랭크의 시선이 계약서의 마지막 페이지에 고정되었다. 그의 눈이 위아래로 부지런히 오가는 걸 지켜보는 동안 흥분해 설레던 마음은 이내 초조함으로 바뀌었다. 프랭크는 능구렁이 같은 사람이었다. 번지르르한 말을 앞세워 손바닥 뒤집듯 약속을 저버릴 수 있는 사람. 할머니가 프랭크를 봤다면 못마땅하게 여기고, 그의 사무실에서 비서로 일하는 것에 대해 극구 반대했을 게 뻔했다. 할머니가 하늘나라에서 내려다볼 때 그녀가 살아가는 모습 가운데 과연 마음에 드는 부분이 하나라도 있을지 의문이었다.
프랭크가 계약서에서 고개를 들더니 그레이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처음 보았을 때부터 독특했다. 상대를 꿰뚫을 듯 쏘아보는 갈색 눈, 살짝 초점이 맞지 않아 다른 곳을 보는 것 같은 눈.
그레이스는 조리대 위에 붙어있는 사진을 바라보았다. 할머니가 숨을 거두기 여섯 달 전에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할머니는 일흔 살, 그녀는 열네 살. 두 사람이 어찌나 닮았는지 마치 쌍둥이 같았다. 할머니의 곱슬곱슬한 갈색 머리와 갈색빛이 도는 초록색 눈동자를 쏙 빼닮았다.
할머니는 생전에 말했다.
“사람은 절대로 변하지 않아. 오직 바보들만 변할 거라고 기대하지.”
그레이스의 눈에서 애써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할머니의 말을 명심했어야 했는데 사람을 철석같이 믿었다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 능구렁이처럼 교활한 프랭크, 말만 번지르르한 지미를 믿은 게 실수였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고, 그레이스는 마일스를, 그리고 먹을 것 하나 없는 찬장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전율이 등골을 스쳤다.
화요일이 되면 직장에서도 해고당할 게 뻔했다. 그레이스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프랭크 토렐리 같은 남자들을 수없이 보았다. 그런 부류들은 그녀 같은 여자를 곁에 두려 하지 않는다. 프랭크는 해고 이유로 제리와의 계약 건이 아니라 다른 일을 내세우겠지만 결론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프랭크가 소리쳤다.
“매티, 얼굴에 칠한 거 당장 지우지 못해! 귀에 매달고 다니는 그 쇠붙이는 또 뭐야!”
하들리의 모든 신경이 팽팽하게 곤두섰다. 매티의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하들리 쪽으로 돌아섰다. 엄마가 나서달라는 의미였다. 하들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매티는 홱 돌아서서 주방에서 나갔다.
“당신은 눈이 없어? 매티가 그 꼴을 하고 싸돌아다니는 걸 왜 그냥 내버려 둬?”
하들리는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기분이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들리는 매티에게 아빠가 보면 곤란하니 집에서는 화장을 지우고 피어싱을 빼라고 늘 일렀다. 오늘 밤에는 주의를 준다는 걸 깜박 잊었다. 매티가 처음에는 노크도 하지 않고 방에 들어왔다며 화를 냈고, 그다음에는 거미 때문에 난리를 피웠고, 스키퍼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하들리는 가족들이 저녁 식사 자리에 모이기 전에 늘 말했다. “매티, 아빠가 왔으니까 화장 지우고, 액세서리 빼.”
매티가 처음 머리를 염색하고 왔을 때 프랭크는 마치 큰일이라도 난 듯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날뛰었다. 단단히 화가 난 그는 가위로 매티의 머리카락을 잘라 버리겠다고 위협했다. 하들리는 문을 가로막고 무릎을 꿇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