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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프랑스소설
· ISBN : 9788984374768
· 쪽수 : 592쪽
책 소개
목차
1975년 8월 30일 토요일_8
프롤로그
2008년 10월, 실종 33년 후_10
1부
작가들의 고질
책 출간 8개월 전_13
리뷰
책속에서
모두 내 책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맨해튼에서 더는 조용한 산책을 즐길 수 없게 되었다. 산책할 때면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고 “어머! 저 사람이 바로 마커스 골드먼이야”하면서 반가워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내게로 가까이 다가와 “작가님이 책에서 다룬 내용 말인데요. 해리 쿼버트가 정말 그런 짓을 저질렀습니까?” 같은 당혹스러운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내가 자주 들르는 웨스트 빌리지의 단골 카페에서는 일부 손님들이 사전 양해도 구하지 않고 내가 앉은 테이블로 다가와 평소 궁금했던 문제들을 털어놓았다. “요즘 작가님이 쓴 책을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책을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을 만큼 푹 빠져 있죠. 작가님이 쓴 첫 번째 책을 읽어봤는데 그야말로 최고더군요. 이번에 책을 써주기로 하고 출판사에서 1백만 달러를 받았다고 들었는데 사실입니까? 실례지만 작가님의 나이는 어떻게 되십니까? 아직 서른 남짓인데 그렇게 큰돈을 벌었다고요?” 내가 사는 건물의 경비원도 내 책을 읽는 모습을 몇 번 보았는데 다 읽고 나더니 나를 엘리베이터 앞에 오래도록 붙잡아 세워두고 마음속에 품고 있던 생각들을 모두 털어놓았다. “그러니까 놀라 켈러건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말입니까? 어쩌다가 세상이 이 지경이 되었을까요?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뉴욕이 온통 내 책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겨우 2주 전 세상에 첫선을 보인 내 책이 이미 전미 대륙에서 올해 최고의 베스트셀러 자리를 예약해놓았다. 사람들은 1975년에 오로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 했다. 텔레비전과 라디오는 물론 일간지까지 온통 그 이야기뿐이었다.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나이지만 나는 내 두 번째 책 덕분에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다.
2008년 여름, 미국 전역을 뜨겁게 달군 그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 오로라라는 지명을 들어본 사람은 흔치 않았다. 오로라는 매사추세츠주 경계에서 차로 15분쯤 달리면 나오는 작은 도시이다. 중심가에 극장 하나 –미국 다른 지역에 비해 개봉작 상영 시기가 많이 늦다–상점 몇 개, 우체국, 경찰서, 유서 깊은 <클락스 식당>을 포함한 식당 서너 개가 있다. 그 주변으로는 색색의 차양과 흠잡을 데 없이 관리된 잔디 정원, 지붕에 점판암 기와를 얹은 목조 건물들이 줄지어 들어선 조용한 주택가가 이어진다. 오로라는 주민들이 열쇠로 현관문을 잠그지 않아도 될 만큼 범죄 발생률이 낮고, 뉴잉글랜드에서만 존재 가능하고, 너무나 평온해 세상의 온갖 풍파에서 벗어난 안전지대로 여겨지는 곳이었다.
나는 학창 시절에 해리를 만나러 자주 오로라를 방문한 적이 있어 익히 잘 아는 곳이다. 해리의 집은 시내를 벗어나 1번 도로를 따라 달리다가 메인주 방향으로 틀어지는 길에 있다. 석재와 소나무 원목을 사용해 지은 저택으로 지도상에 구즈코브라고 표시된 내포를 끼고 있다. 바다를 굽어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해 날씨가 화창한 날이면 맘껏 일광욕을 즐길 수 있는 테라스, 바다로 곧장 이어지는 계단이 있어 작가들이 글을 쓰는 틈틈이 산책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2008년 3월 6일 목요일 오후, 나는 보게 된 즉시 잊기로 한 사실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1970년대 중반에 서른네 살의 해리가 열다섯 살 소녀와 사귀었다는 사실이었고, 이는 내게 큰 충격을 주었다.
나는 미친 듯이 해리의 서재를 뒤진 끝에 책 뒤에 숨겨둔 제법 큰 자개 상자 하나를 발견했고, 비로소 그가 은밀하게 숨겨둔 비밀을 염탐할 수 있게 되었다. 경첩이 달린 자개 상자 안에 어쩌면 《악의 기원》 초고가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뚜껑을 열었다. 내 기대와 달리 자개 상자 안에는 그저 사진 몇 장과 신문 기사들이 들어있을 뿐이었다. 사진 속에는 우아하고 자신감 넘치는 삼십 대의 젊은 해리가 있었고, 그의 곁에 낯모르는 소녀가 있었다. 사진은 모두 합해 다섯 장인데 그 소녀는 빠짐없이 등장했다. 구릿빛으로 그을린 탄탄한 근육을 자랑하듯 웃통을 벗은 해리가 선글라스를 긴 금발에 얹고 환하게 미소 짓는 소녀를 품에 안고 입을 맞추는 사진도 있었다. 사진 뒷면에 ‘놀라와 나, 마서즈 빈야드에서, 1975년 7월 말’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