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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프랑스소설
· ISBN : 9788984375253
· 쪽수 : 384쪽
· 출판일 : 2026-06-24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8:15. 가벼운 두통이 느껴져 눈을 뜬 나는 덧창을 뚫고 들어온 싱그러운 아침 햇살을 보며 하루 종일 화창한 날씨가 되길 기대한다. 마르소가 누워 있어야 할 옆자리는 흐트러진 자국이 전혀 없다. 나는 에르미온과 방자맹을 깨우지 않도록 조심하며 뒤꿈치를 들고 복도를 가로지른다. 서재 문을 노크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문을 열어보니 마르소는 자리에 없다. 나는 서재에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다. 서재는 마르소의 구역이고, 그 말고는 아무도 발을 들여놓아서는 안 된다. 심지어 아내인 나조차도.
뿌연 안개에 휩싸인 내 머리는 어떻게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잠시 갈팡질팡한다. 마르소는 집 안 어딘가에 있어야 마땅한데 그 어디에도 없다. 나는 지난밤 파티의 잔재가 남아있는 정원을 살피다가 맨발로 테라스로 나가 레만호를 바라본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씨라 호수는 거울처럼 잔잔하다. 내가 자주 이용하는 모터보트가 계류장에 묶여있다. 바깥 날씨는 집 안과 별 차이 없을 정도로 온화하다. 창고 맞은편에 세워져 있어야 할 픽업이 눈에 띄지 않는다. 어젯밤에도 분명 그 자리에 있었는데.
나는 샬레를 한 바퀴 돈다. 매끈하게 깎아놓은 잔디가 내 발소리를 빨아들인다. 비행기를 보관해두는 창고 문은 언제나 그랬듯이 활짝 열려 있다. 새비지 바버도 늘 있던 자리에 그대로 있다. 하긴 마르소가 새비지 바버를 타고 이륙했다면 요란한 엔진 소리를 들었어야 마땅하다. 아직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마르소를 불러보았지만 괜한 헛수고일 뿐이다. 가까이 있던 새 한 마리가 내 목소리에 놀라 날개를 퍼덕이며 하늘로 날아오른다. 그 순간 나는 세상을 멀리까지 내려다볼 수 있는 새의 시야가 부럽다.
새의 눈에는 마르소가 어디 있는지 보이려나?
나는 엉뚱한 곳에 떨어져 있는 물건을 집어 든다. 분명 마르소의 가방이다. 그가 즐겨 사용하지는 않아도 가끔 들고 다니던 스포츠 가방이다. 마치 산짐승의 공격이라도 받은 듯 가방이 갈가리 찢어져 있다. 가방 안에 든 물건이라고는 비상식량 몇 점이 전부다. 사냥에 나선 늑대처럼 나는 가방의 냄새를 맡아본다. 마르소의 체취가 묻어있다. 나는 가방이 떨어져 있던 곳 주변을 샅샅이 둘러본다. 석양을 받아 반짝이는 빛이 내 시선을 끈다. 마르소가 타고 나간 픽업의 보닛이다. 거대한 바위 아래에 픽업을 주차해 둔 바람에 보닛만 보일 뿐 차체는 보이지 않는다.
마르소는 어떻게 차를 끌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레노가 숨을 헐떡이며 말한다. “마르소가 픽업을 운전해 여기까지 온 걸 보면 스위스를 통해 산속으로 들어온 게 분명해.”
마르소가 대단히 먼 거리를 우회했다는 뜻이지만 내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다. 나는 마르소의 이름을 소리쳐 부르며 수색을 계속한다. 아주 작은 공간이라도 샅샅이 살펴 가며 이 장소 전체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지점을 찾아내려고 애쓴다.
그때 몇 미터 떨어진 바닥에 쓰러져있는 시커먼 형체가 눈에 들어온다. 나는 화들짝 놀라며 가까이 다가간다. 내 남편 마르소가 바위로 된 바닥에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 내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마르소를 끌어안으려고 할 때 레노가 다가와 나를 끌어당긴다. 나는 마음이 답답한 나머지 애꿎은 레노의 가슴팍을 때린다.
마르소가 절벽에서 추락했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다. 나는 한시바삐 이 악몽에서 벗어나고 싶다. 견디기 힘든 고통이 내 몸 여기저기에서 폭발한다.
마르소, 대체 왜 당신은 나에게 이리 몹쓸 짓을 한 거야?
나는 계속 주먹으로 레노의 가슴을 때리면서 눈물을 펑펑 쏟는다.
_본문 43~44쪽
나는 한동안 편지를 손에서 놓지 못한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있다. 위스키 향이 머리를 지끈거리게 한다. 마르소, 당신은 왜 이제 와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는 거야? 원고는 또 뭐야? 그럼 나는 여태껏 아무것도 모르면서 당신과 한 이불을 덮고 살아온 거야? 제이드는 숲에서 실종되었다는 게 내가 아는 사실이야. 다른 가능성은 생각하기 힘들어. 스무 살이 된 기념으로 숲으로 트레킹을 가자고 제안한 사람이 바로 나야. 내가 트레킹을 가자고 하지 않았더라면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봐. 만약 그랬더라면 당신은 아직 내 곁에 있었겠지. 어찌나 혼란스러운지 머릿속은 뒤죽박죽이고, 손이 덜덜 떨려. 나는 이제 곧 내가 발견하게 될 그 무엇, 우리 세 사람이 찾아내게 될 그것이 너무 두려워. 그러니까 당신의 수수께끼 같았던 행적 모두가 앞으로 거침없이 몰아치게 될 폭풍의 예고편이었단말이지? 앞으로 내가 찾아낼 진실이 뭔지 몰라도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생각만 해도 두려워. 나는 당신이 몇 시간 동안 서재에 틀어박혀 있다가 예고도 없이 거실로 돌아오고, 아이들은 방에서 나와 아빠의 귀여움을 받으려고 재롱을 부릴 때 이미 뭔가 이상한 느낌을 감지하긴 했어. 이제 와 생각해보면 몹시 서글퍼. 나랑 아이들은 당신으로부터 주목받는 존재가 아니라는 의구심이 들었으니까.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마르소의 편지를 던져버린다. 너울거리며 날아가던 편지가 바닥으로 천천히 떨어져 내린다.
알렉시가 내 어깨에 거침없이 한 손을 올려놓는다. 나는 그의 동작에서 절제되지 않은 공격성을 감지한다. 알렉시는 나를 정신 나간 여자 취급하고 있다. 그가 그런다고 주눅들 내가 아니다.
“선을 넘어도 너무 크게 넘는 말이야. 마르소는 추락사했고, 우린 오래전부터 그런 일이 생길까봐 늘 노심초사해왔어. 당신도 마르소가 언제나 위험을 감수하고 등반한 사실을 잘 알면서 왜 그래? 마르소가 우리에게 남긴 편지에도 그렇게 적혀 있고.”
“아니, 난 추락사가 아니라고 확신해. 누군가 마르소를 살해했어.”
“현장을 조사한 경찰도 추락사로 판단했어. 그들이 보기에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다면 벌써 수사에 착수했겠지.”
나는 알렉시의 손에 잡혀있는 어깨를 슬며시 빼낸다.
나는 다짐을 받듯이 말한다. “당신들이 마르소의 친구라면 내 말을 믿어야 해! 내 말을 믿지 않는다면 친구 자격이 없어.”
“당신은 충격이 커서 내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겠지만 마르소는 추락사한 거야. 내가 보기에 다른 결론이 나올 것 같지는 않아.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제발 정신 차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