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마라집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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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국(龜玆國)의 삼장법사로서 인도학 및 베다학에 관하여 달통했다. 산스크리트 불교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한 4대 역경가(譯經家) 가운데 가장 정평이 난 스님으로서, 불교의 종교ㆍ철학사상이 중국에 전파된 것은 대부분 그의 노력과 영향력에 크게 힘입었다.
구마라집의 부모는 불교를 믿어 모두 출가했으며, 그도 어머니를 따라 7세에 출가했다. 중국 카슈가르에서 소승불교를 공부하다가 수리아사마라고 하는 대승 불교도에 의하여 불교의 중관학파(中觀學派)로 개종했다. 인도에 유학하면서 두루 여러 선지식을 참례했고, 특히 기억력이 뛰어나 인도 전역에 명성이 자자했다. 그후 고국에 돌아와 왕으로부터 스승의 예우를 받았다. 전진(前秦)의 부견(符堅)이 그의 덕이 뛰어나다는 소식을 듣고 장수 여광(呂光)과 군사를 보내 맞아들이게 했다. 여광이 서쪽으로 가서 구자국을 정벌하여 구마라집을 체포했으나, 돌아오는 도중에 부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여광 자신이 하서(河西)에서 자립하여 왕이 되어 7년간 통치했다. 후진(後秦)의 요흥(姚興)이 다시 일어나 여광을 멸망시킨 뒤, 구마라집은 401년 장안(長安)에 도착했다. 요흥이 예를 갖추어 그를 국사로 봉하고 소요원(逍遙園)에 머물게 하여 승조(僧肇), 승엄(僧嚴) 등과 함께 역경에 전념하게 했다. 그리하여 그는 403년 4월부터 《중론》《백론》《십이문론》《반야경》《대지도론》《아미타경》《유마경》《십송률》등 35부 348권에 달하는 방대한 경전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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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야다라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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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는 공덕화(功德華)라고 번역되며 계빈국(?賓國) 사람이다. 어려서 출가하여 삼장(三藏)에 통달하였으며, 특히 『십송율(十誦律)』에 정통하였다. 위진(僞秦)의 홍시(弘始) 연간(399~416)에 관중(關中)에 들어왔고, 『십송율』의 번역은 홍시 6년(404) 10월 17일에 장안(長安)의 중사(中寺)에서 불야다라가 범본을 외웠고, 구마라집은 이것을 한문으로 번역하였다. 3분의 2를 마쳤을 때에 병으로 입적하였으나, 남은 부분은 이후에 구마라집이 담마류지(曇摩流支)와 함께 번역하여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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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보운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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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 용주사에서 출가하였고, 문학박사이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아사리(계율)이며, 지방의 율원 등에도 출강하고 있다.
논저|논문으로 「율장을 통해 본 주불전의 장엄과 기능에 대한 재해석」 등 다수.
번역서로 『십송율』(상‧중‧하), 『보살계본소』,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약사』,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파승사』,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잡사』(상‧하),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 『근본설일체유부필추니비나야』, 『근본설일체유부백일갈마 외』, 『안락집』(상‧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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