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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문학의 이해 > 비평론
· ISBN : 9788984988347
· 쪽수 : 279쪽
· 출판일 : 2008-04-07
책 소개
목차
1부 이론에서 이론-기계로
들뢰즈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유목주의와 자율주의의 비판적 검토
근대와 근대문학의 자명성을 의심하기
-가라타니 고진 읽기
세속의 지성과 망명자의 시선
-에드워드 사이드의 사유와 정치론을 중심으로
재현미학에서 존재미학으로
-진중권의 미학서 두 권 읽기
2부 텍스트,해석,그리고 비평
예술의 과학의 가능성
-부르디외의 『예술의 규칙』을 중심으로
텍스트의 세속성과 정치성
-제임슨,이글턴,사이드를 중심으로
텍스트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제임슨의 『정치적 무의식』의 해체론적 읽기
3부 이론과 현실의 거리
심미적 이성의 경계
-『사유의 공간』의 김우창론 읽기
더 깊은 개인주의로
-김훈의 에세이 읽기
루카치,철 지난 유행가인가?
-김경식 지음,『게오르크 루카치』읽기
탈식민주의,저항인가?유희인가?
-탈식민주의의 몇 가지 문제
성적 차이의 윤리와 언어
-정해경 지음,『섹시즘』읽기
눈의 독재와 새로운 윤리
-임철규 지음,『눈의역사,눈의 미학』읽기
근대의 산문성과 개인주의의 신화
-이언 와트 지음,『근대 개인주의 신화』읽기
원문 출처
저자소개
책속에서
철학-기계 혹은 이론-기계의 존재이유는, 들뢰즈가 표현했듯이, 우리가 경험적으로 느끼고 있되 분명한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는 대상에 명료한 표현을 주는 데 있다. 철학은 개념의 발명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개념의 내재적인 의미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개념들이 새롭게 놓여지는 상황의 배치와 효과가 더욱 중요하다.
철학은 닫힌 고정된 체계로 물신화되어서는 안된다. 언제나 지금, 이곳에서의 새로운 배치를 통해 철학-기계로 활용되어야 한다. 자신을 "성경"으로 받들지 말고 하나의 유용한 이론-기계로 최대한 활용하라는 들뢰즈의 조언. <노마디즘>은 반대의 방향을 취한다. 들뢰즈의 현란하나 난삽한 개념들을 설명하기 위해 현실의 익숙한 예들이 동원된다. 그때 드는 질문. 철학이 현실을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현실이 철학을 위해 존재하는가?
예컨대 이런 대목을 보자. "몰적 선분성 안에서 정의된 바에 따라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는 사람들에겐 안정과 출세를 위한 규범이나 척도로 보이겠지만, 그러한 방식의 성공과 실패에 무관심하거나 반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겐 자신의 삶을 절단하여 바치게 되는 파괴의 과정"(이진경 2004, 1권 621쪽). 이것이 유목주의자들이 주장하는 탈주의 삶이다.
근대적 삶의 억압에서 탈주하여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자율적인 삶. 그러나 이런 '상식적' 주장을 위해 "몰적 선분성"이니 "자신의 삶을 절단"이니 하는 개념이 동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요하다면 새로운 개념의 발명과 이용이 필요하다. 유목주의자들은 이런 쉽지 않은 개념들이 현실의 명료한 설명을 위한 고민의 결과라고 주장하리라.
그러나 개념의 배치를 고민하지 않으면 개념이 현실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개념의 유효성을 입증하기 위해 동원되는 역설이 나타난다. 자본주의 현실에서 자신의 삶을 억압하지 않고 자율적인 삶을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대중도 온몸으로 느낀다. ('들뢰즈를 어떻게 이요할 것인가' 중에서)
김훈은 회의주의자이다. 그는 세계의 객관적, 혹은 보편적 인식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세계는 무수한 측면을 갖는다. 그 측면마다 하나의 독립적 시각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힘들여서 겨우 어떤 진술을 시도할 때 그 진술과 반대되는 또 다른 진술이 성립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회의가 나이 든 사람을 말더듬이로 만든다"(<아들아>, 52쪽).
민주주의의 참된 가치는 깊이 있는 회의주의에서만 가능하다. 나는 김훈이 동인문학상을 거부하지 않은 것이 그래서 아쉽다. 그의 수상은 그가 표명하는 개인주의적 가치의 훼손이기 때문이다. 동인문학상을 주는 신문사가 어떻게 그가 평소에 피력해온 깊은 개인주의와 회의주의와 어울릴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수상소감에서 임화를 추억한다. "그는 민족의 이름으로 단죄되었고 계급의 이름으로 처형되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무너지면서 그 시대를 통과해 나간 그의 파탄과 죽음은 언어와 현실의 간극을 긍정할 수 없었던 한 청춘의 비극으로 보였습니다.
그는 정치범으로 처형되었지만, 시인으로서 죽었을 것입니다. 삶은 견딜 수 없이 절망적이고 무의미하다는 현실의 운명과, 이 무의미한 삶을 무의미한 채로 방치할 수는 없다는 생명의 운명이 원고지 위에서 마주 부딪치고 있습니다"(<아들아>, 164쪽).
김훈이 지적했듯이 "삶은 견딜 수 없이 절망적이고 무의미하다는 현실의 운명과, 이 무의미한 삶을 무의미한 채로 방치할 수는 없다는 생명의 운명"을 고민하는 작가, "언어와 현실의 간극"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작가라면 삶의 구체적 '정치성'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김훈의 회의주의가 "언어와 현실의 간극"을 좁히려는 힘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삶을 둘러싼 복잡다단한 삶의 맥락에 스며 있는 추하고 교활한 현실을 통찰하는 논리를 더욱 갖춰야 한다. ('더 깊은 개인주의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