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

홍주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이 없었다. 단지 고무줄로 된 나염 치마 앞자락에 손을 기대고 꼬고 있을 뿐이었다. 정들자 이별이라더니. 눈물이 왈칵 쏟아져 땅으로 떨어질까 봐 힘을 주어 입술을 깨물었다. 다듬지 않아 제멋대로 길다랗게 자라난 머리카락은 검정 고무줄로 한 줄 길게 묶어 내려왔고, 다 채워 들어가지 않은 긴 한 가닥이 내려와 시야를 거슬렸다.
"줄게 있어. 내일 밤 자정쯤에 나와줄 수 있어? 마을 입구 앞 정자 밑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난 오래 기다리지 않아. 만약 나오지 않는다면 그게 네 마음이라고 생각할 거야."
세영은 야릇한 뉘앙스를 풍기며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가 곧 떠날 거라는 말에 잔뜩 처져 있던 홍주의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그녀는 대답대신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