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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89456995
· 쪽수 : 356쪽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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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책속에서
방 안의 유리문에 드리워진 레이스 커튼이 오후의 강렬한 햇살을 분산시켰다. 그 사이를 뚫고 들어온 한 줄기 빛은 먼지 입자들로 반짝거렸다. 그는 가방에서 헌틀리&파머스 비스킷 통을 꺼내 방 안에서 유일하게 말끔한 커다란 마호가니 탁자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그리고 뚜껑을 열어 안에 든 굵은 모래 같은 질감의 연한 회색 가루를 살펴봤다. 그도 수년 전에 이와 비슷한 것을 집 뒤뜰의 장미 정원에 뿌린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게 정말 사람의 유골일 리 있겠는가? 그런 걸 비스킷 통에 담아 열차에 놔뒀다고?
앤서니는 그날 하루 종일 텅 빈 집을 절망적으로 돌아다니면서 그녀의 흔적을 하나하나 찾았다. 베개에 난 그녀의 머리 자국, 그녀의 빗에 남아 있는 금갈색 머리카락과 유리에 있는 빨간색 립스틱 얼룩. 이제는 사라진 생명의 보잘것없지만 귀중한 증거. 이후 비참한 몇 달 동안 파두아는 집 안에 그녀의 존재의 메아리를 보존하려고 애를 썼다. 앤서니는 방으로 들어갈 때마다 그녀가 조금 전까지 거기 있다 나갔다는 느낌을 받았다. 매일같이 그는 그녀의 그림자와 숨바꼭질을 반복했다. 정원이 보이는 방에서는 그녀의 음악이 들리고, 정원에서는 그녀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밤이면 그녀의 키스가 입술에 느껴졌다. 하지만 점차, 아주 미세하게, 아주 조금씩 그녀는 그를 놓아줬다. 그녀 없이 그가 인생을 살아가게 해줬다. 아직까지도 여전히 남아 있는 흔적은 장미 향이 날 리 없는 곳에서 느껴지는 향기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