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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꿀 수 없는

바꿀 수 없는

(‘비전향장기수 19인의 초상’)

정지윤 (지은이)
  |  
h2(에이치투)
2018-10-24
  |  
2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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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꿀 수 없는

책 정보

· 제목 : 바꿀 수 없는 (‘비전향장기수 19인의 초상’)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정치학/외교학/행정학 > 정치사상사
· ISBN : 9788989884927
· 쪽수 : 224쪽

책 소개

현직 사진기자인 저자의 기획기사 ‘빨갱이 나를 소환하라’ 그리고 사진전 ‘비전향장기수 19인의 초상-귀향’과 함께 ‘비전향장기수’ 2차 송환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출간되었다. 책에는 북으로 돌아가야 할 ‘비전향장기수’ 19인의 초상과 일상을 담은 사진들과 그들의 육성 인터뷰가 담겨 있다.

목차

추천사 | 한시도 미룰 수 없는 송환 / 한홍구 ? 004
추천사 | 돌아가야 할 방문객들 / 김혜순 ? 010
작업노트 018

70년간 전역하지 못한 인민군 소위 / 류기진 선생
73세, 가장 나이어린 장기수 / 이광근 선생
병상에 누운 ‘백두산 호랑이’ / 김동섭 선생
내 마음은 이미 통일이 되어 있다오 / 문일승 선생
잡지 속에 담은 어머니 / 김교영 선생
전장에 나선 김일성대학 여학생 / 이두화 선생
쌍무기수의 부치지 못한 편지 / 서옥렬 선생
아쉬움은 있지만 후회는 없다 / 허찬형 선생
한반도 배지에 담긴 통일의 염원 / 양원진 선생
지팡이 늦은 걸음으로라도 / 최일헌 선생
꽃잎은 바람에 지지 않고 / 박정덕 선생
좁은 감방에서 27년, 넓은 감방에서 20년 / 박희성 선생
잊혀진 여전사 / 박순자 선생
막내 이름도 모르는 아버지 / 오기태 선생
60년의 기다림 ‘송환’ / 박종린 선생
다큐 속 아련한 그의 눈빛 / 김영식 선생
진통제 맞으며 꾸는 꿈 / 강 담 선생
10분과 맞바꾼 37년 / 양희철 선생
이제는 돌아갈 수 없다 / 故김동수 선생

저자소개

정지윤 (지은이)    정보 더보기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에콰도르 수도 키토 남부의 ‘키토 문화의 첫 열매’ 학교 텃밭에서 채소를 기르는 학생들의 얼굴에는 순박함이 묻어났다. 학교 담장 너머로 쏟아지는 그들의 어린 웃음에서 집처럼 편안한 학교의 모습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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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선생은 나직한 목소리로 그동안 살아온 얘기를 담담히 말했다. 말을 할 때마다 온 힘을 쓰는 듯했다.
“간략하게 말하겠습니다. 부모님의 고향은 함경남도 안변군입니다. 독립운동을 하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아버지, 어머니가 소련으로 가셨답니다. 나는 다섯 살까지 소련 땅에서 살았습니다. 1930년도에 독립운동을 하던 아버지의 등에 업혀 만주로 나왔습니다. 하지만 만주사변이 나서 이리저리 피란 다니느라 학교에 못 가고 서당에만 좀 다녔습니다. 해방 후에는 중국지원군에 입대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군복이란 게 따로 없었습니다. 광목천에 까만 물을 들여서 옷을 해 입고 보따리를 들고 다녔습니다. 일제 38식 총을 메고 일제 수류탄을 가지고 다니면서 장개석 군대와 싸웠습니다. 큰 전투에도 여러 번 참가하며 죽을 고비도 많이 넘겼습니다. 중국을 떠나 조국으로 가는 열차를 탄 것은 1950년 3월의 일입니다. 새 옷으로 갈아입고 손에는 종군해방작전 메달, 모택동 수첩, 조선인민해방군 기념사진을 들고 갔습니다. 대엿새 동안 기차를 타고 그립던 고국 땅 원산에 도착했습니다. 원산 땅에 도착하자마자 디스토마에 걸려 휴양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한국전쟁이 일어났습니다. 피를 토하는 상태라 의사가 말렸지만 끝내 인민군에 지원해 전선으로 향했습니다. 그해 9월에 경남 함안에서 부대와 합류했지만 곧 후퇴를 하고 말았습니다. 화개장터와 남원을 거쳐서 전북 장수군 산서면 어느 골짜기에 갔는데 당 일꾼 등 여럿이 있었습니다. 의용군에 나갔다 온 동무들도 여러 명이 있었고요. 나는 거짓으로 중국에서 온 간부라고, 후퇴는 때가 늦었으니까 함께 남에서 유격전을 하자고 설득했습니다. 노획한 무기로 유격대를 조직했습니다. 몇 번의 전투에서 성과를 올려 우리 부대는 ‘백두산 호랑이 부대’라는 칭호까지 받았습니다. 일 년 반 동안 전북 장수 일대에서 크고 작은 전투에 참가했습니다. 하지만 1952년 2월에 지리산으로 들어가다 포위망에 걸려들어 결국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수감 생활 동안 받은 고문은 차마 입으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가혹했습니다. 사형 선고를 받았지만 감형되어 감옥에서 21년을 살고 나왔습니다. 이상으로 아주 간략하게 말씀드렸네요.”
선생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김동섭 선생


“내가 일생을 살아오면서 가장 가슴 아픈 일이 감옥에서 전향서를 쓴 것입니다. 절개를 지키고 내 사업을 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전향서를 쓴 것을 이제 와서 변명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목숨 다하는 날까지 계속 반성하고 노력하는 것이 내가 마지막으로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1차 송환 때 나도 거기에 끼어서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습니다. 하지만 주제넘게 내가 선뜻 가겠다고는 못하겠고 다만 가든지 못 가든지 간에 통일운동 열심히 해서 덜 부끄럽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원이 있다면 통일 이전이라도 남북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 이제 나에게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 양원진 선생


일제강점기 말기 일제는 조선 처녀들을 위안부로 많이 끌고 갔다. 그래서 선생의 아버지는 딸의 결혼을 서둘렀다. 17살에 아버지가 정해준 사람과 결혼했다. 당시 좌익운동가였던 남편은 결혼식 날을 빼고는 경찰을 피해 입산해 생활했다. 선생은 더 이상 공부를 계속할 수 없었다. 1948년 여순사건이 일어나자 좌익운동을 하던 시숙과 오빠까지 산으로 피신했다. 그 이후부터 선생은 ‘빨치산의 아내’라는 이유로 경찰의 모진 고문을 당해야 했다. “추운 겨울 지서 뜰 안에 움막을 쳐놓고 입산자 가족들을 수용했는데 그곳에 끌려가서 날마다 얻어맞았습니다. 한 번은 주전자 물에 고춧가루를 풀어서 머리채를 뒤로 제치고 코에 들이부었습니다. 손목을 천장에 매달아놓고 몽둥이로 치고, 손가락 사이에 연필을 끼워놓고 비틀었습니다. 또한 손가락 끝에 전선을 감고 전기고문을 했는데 몇 번이나 기절했는지 모릅니다. 먹지도 못하고 거의 죽어가는 나를, 아버지가 전답을 팔아서 마련한 돈을 놈들에게 주고 꺼냈습니다.”
-박정덕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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