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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사진/그림 에세이
· ISBN : 9788990840097
· 쪽수 : 226쪽
책 소개
목차
머리말 | 산청 가는 길
꽃피고 물레방아 돌고 - 매향 속의 남사마을
언제나 새날처럼 - 대성산 정취암
백성을 위한 의류혁명 - 문익점 선생 유적지에서
어머니 산을 오르며 - 지리산 천왕봉과 법계사
영원한 선비의 표상 - 조식 선생의 산천재, 덕천서원에서
내가 매화인가 매화가 나인가 - 역사 속의 매화를 찾아서
축제의 밤, 축제의 꽃 - 산청 한방약초축제와 황매산 철쭉제
흐르는 물이 진리의 길 - 지리산 계곡이 품은 내원사
수행과 일이 하나되어 - 지리산 금강송 계곡의 대원사
가야의 일과 바람 속에서 - 구형왕릉과 덕양전
낮추고 이야기하는 교육 - 와송리 간디학교
다랑논의 황금 물결 - 차황면의 가을과 메뚜기잡기 대회
일체 중생의 행복을 위하여 - 성철스님 생가와 겁외사
인연의 글 | 산청의 산수가 알아주는 이를 만나다 _최석기(남명학연구소 소장·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스님이 돌아가신 뒤 문득 천년 가람의 별빛이 그리워 뜰에 나서자 밤하늘은 이미 불꽃으로 수를 놓았습니다. 암벽에서 내려다보니 첩첩 산 아래 마을 불빛은 별과 별똥이 떨어져 빛을 내며 박혀 있는 것만 같습니다. 스님은 이 광경을 ‘밤바다에서 지리산을 본다’고 하며, 이를 마치 ‘바다를 유영하는 주낙배의 집어등’으로 표현합니다.
모처럼 별빛에 취한 길손은 잠이 오지 않습니다. 강파른 벼랑 위 소나무로 쏟아지는 별빛을 우러르니 별은 나를 품고, 나는 은하의 물결에 잠깁니다.(42쪽-대성산 정취암에서)
마을 담장엔 실핏줄 같은 마른 덩굴이 봄 햇살로 더욱 선명하고 돌담 아래는 금낭화가 살랑입니다. 그 길을 따라 정씨鄭氏고가古家의 매화를 사생하고 마침내 ‘매화집’을 찾습니다. 고려말 원정공元正公 하즙河楫 선생이 심었다는 원정매元正梅와의 해후입니다. 3년 전 원정공의 14대손 하철 선생의 중병으로 외부인 출입이 허용되지 않아 담장에서 까치발로 매화를 그린 추억이 스칩니다. 그런데 이후 그 매화가 주인과 함께 고사枯死했다는 소식에 얼마나 서운했었던지.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죽었다는 나무 사이에서 연분홍 겹홍매가 눈부시게 피어나 있으니 말입니다. 뜨거운 감회에 싸여 붓을 드는데, 고인의 부인께서 차와 과일을 건네줍니다.(111쪽-남사리 원정매화 앞에서)
어느새 거대한 장터는 대만원을 이루었고, 차량 소통이 멈춘 어둠 속에 축포가 터집니다. 불꽃이 찬연하게 밤하늘을 수놓자 사람들은 지축을 울리듯 모두 환호성을 지릅니다. 이 광경을 경호강 벼랑 너머 산청초등학교 옥상, 옥탑에 올라 바라봅니다. 그 전경은 오롯한 ‘축제의 밤’으로 강산과 대지가 어울린 한바탕 큰 잔치요, 대동놀이 같습니다. 천·지·인의 소통이자 조화입니다. 필봉산과 왕산이 우뚝하니 솟고, 강쪽 너머로 지리산 천왕봉이 손짓하는 어둠 속, 그 대지 위에 불을 밝힌 수많은 천막들이 장관을 이룹니다. 그리고 그 앞으로 경호강이 휘돌아가는 장엄한 광경입니다.(125쪽-산청 한방약초축제에서)
하룻밤이라도 꼭 제 집에서 묵어가라는 김 선생, 그 성의에 못 이겨 집으로 향하니 장위리입니다. 용궁인龍宮人 김보金寶가 진주에서 입향한 후 용궁 김씨 집성촌이 되었는데, 김 선생은 그 17대 손입니다. 그런데 눈을 들어보니 뒷산 궁서마을 산에 우뚝 솟은 왕소나무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그 길로 산에 오르자 한 몸통에서 두 줄기로 갈라진 반송은 명송의 자태를보여줍니다. 그곳에 사방천지로 터진 풍광이 거침없습니다. 해 뜨는 마을 산 위로 황매산 자락이 흘러가고 돌아서 보면 지리산 천왕봉 아래 왕산과 필봉이 펼쳐집니다.(197쪽-차황면 메뚜기잡기 대회에서)
그러나 무엇보다 스님을 통해 우리가 깨닫는 것은 ‘자비의 실천’이 가장 우선이라는 것. 즉 “일체 중생 속에 내가 있으니 늘 일체 중생의 행복을 위해 기도하고 참회하라.”는 말씀입니다. 저는 오늘도 전시장 유리장에 코를 박고 스님의 행적을 살피며 화첩을 펼쳐 유품을 그립니다. 걸레 같은 승복, 깁고 기운 생전에 입으셨던 누더기 두루마기, 그리고 검정 고무신과 낡은 양말을 그리는데, 숨이 가쁘고 가슴이 떨립니다. 그 어떤 장쾌한 풍경을 그릴 때보다 더 숨결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이유는 무엇인지요.(211쪽-성철스님 생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