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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문학의 이해 > 비평론
· ISBN : 9788990944825
· 쪽수 : 640쪽
· 출판일 : 2023-11-20
책 소개
목차
머리말
0. 시의 미적 양상과 품격
1. 씩씩하고 거침없는 경지-웅혼(雄渾)
2. 양기(養氣)를 통한 회통의 미학-충담(沖淡)
3. 스밈과 드러냄의 미학-섬농(纖穠)
4. 순진무구한 부동(不動)의 미학-침착(沈著)
5. 높고 현묘한 덕-고고(高古)
6. 깊은 사유의 미학-전아(典雅)
7. 회통의 글쓰기-세련(洗鍊)
8. 굳세고 부드러운 힘-경건(勁健)
9. 화려한 아름다움의 궁극-기려(綺麗)
10. 천균(天鈞)의 조화로움-자연(自然)
11. 텅 빈 중심의 아름다움-함축(含蓄)
12. 거침없는 질주, 그 혼돈의 중심-호방(豪放)
13. 오묘한 창작에 이르는 길-정신(精神)
14. 빈틈없는 촘촘함-진밀(縝密)
15. 솔직한 천연스러움-소야(疏野)
16. 맑고 신비로운 기운-청기(淸奇)
17. 자유분방한 곡선의 미학-위곡(委曲)
18. 형상(形象)을 통한 회통(會通)-실경(實境)
19. 극한의 슬픔이 닿는 곳-비개(悲慨)
20. 바깥을 통해서 안을 엿보다-형용(形容)
21. 현실을 벗어난 영혼이 닿는 곳-초예(超詣)
22. 종횡무진(縱橫無盡)하는 상상의 세계-표일(飄逸)
23. 구속을 벗어난 대자유의 세계-광달(曠達)
24. 생동(生動)하는 우주의 원리-유동(流動)
저자소개
책속에서
[머리말 중]
시의 품격이 사라진 시대에 다시 시의 품격을 말하고 있는 것이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해가 되지 않는 시를 쓰는 시인들이 정말 시의 품격을 알고 시를 쓰고 있으며, 언어 기교만 있으면 좋은 시라고 생각하는 시인이 자신의 수양이 스며들어 있어야 비로소 좋은 시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시의 근본을 모르고 시를 쓰고 언어 기교만 있으면 좋은 시라고 생각하는 시인들이 많아지다 보니 시가 너무 쉽거나 너무 어려운 경계 속에서 좌초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시의 품격이 무엇인지를 알고 시를 쓴다면 근본으로부터 기교가 나오고, 그 기교는 숙련된 기능공이 눈을 감고도 정확하게 물건을 가공하는 것과 같은 놀라운 시가 될 것이다. 시의 정격(正格)을 알고 변격(變格)을 알아야 그 시의 변격이 더 좋은 시의 변격으로 나아갈 수 있다. 시의 변격만 알고 시의 정격을 모른다면, 그 시의 변격은 단순한 기교주의 시에 빠진 시가 되고 말 것이다.
모든 사물은 근본이 있고, 그 근본을 통해서 가지가 나아가고 있다. 시의 근본을 알고 그 근본을 통해서 다양한 언어의 기교를 보여줄 때, 그 시는 더 좋은 시가 될 수 있다. 시의 품격은 시의 근본이 무엇인지를 탐색하는 길에서 배워야 할 문예미학이다. 동양의 숱한 문예미학자들이 시의 미학을 말했으며, 그 중에서도 사공도는 시의 미학을 시로써 표현한 탁월한 문예미학자다. 그의 문예미학은 비록 과거의 것이지만, 그 문예미학은 현대시에서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시는 문예미학이며, 그 문예미학을 바라보는 시선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졌지만, 시가 언어로 표현되는 미학이라는 근본은 변하지 않았다. 이 책은 과거의 문예미학이 현대시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살펴본 글들을 모은 것이다.
동양 문예미학에서 말하는 시의 품격은 말 그대로 시의 자리[詩格]를 말하는데, 그것은 하나하나의 시들이 갖는 고귀한 기품을 미적 형식으로 규정한 것을 말한다. 문학은 작가의 정신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작가의 정신과 필연적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 정신과 결부되어서 그 기법이 문장으로 체현되어 나타나는 것이 품격이다. 시의 품격은 작가의 수양 정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고, 시대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이 때문에 특정 시대의 품격만으로 시를 규정해서 그 틀에 맞으면 좋은 시이고, 그 틀에 맞지 않으면 좋지 않은 시라고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의 품격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그것을 품격으로 규격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의 품격을 논의할 수밖에 없는 것은 좋은 시는 시대와 환경을 초월하여 존재하기 때문이다. 좋은 시라고 규정할 수 있는 시들을 모아서 그것을 나누어 보면 하나의 미학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시의 품격은 이러한 객관적 미학을 바탕으로 규정한 것을 말한다. 유협은 여덟 가지 문체를 제시하면서 이들은 서로 뿌리와 잎이 되어서 문학의 정원을 이룬다고 말한다. 시의 품격은 변할 수 있고, 변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시가 변하고 발전하면서 정형의 형식에서 비정형의 형식으로 변하게 되었고, 현대시는 이미 지난 시대의 시의 품격과는 맞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좋은 문예작품은 고금의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어서 존재하고 그것은 변하지 않은 시의 품격이기도 할 것이다.
시의 품격이 시의 미적 차원을 규격화하고 정형화해서 그 틀에 맞추어서 창작하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시들은 특정한 품격이 흐르고 있는데, 그 품격을 미학적으로 접근해 볼 때, 몇 가지 특징을 보인다는 것이다. 시의 품격은 시인의 정신이 흐르는 기운을 설명하는 미적 접근이지, 시의 형식과 기율(紀律)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한시는 정형의 틀 속에 있었지만, 시인의 정신은 그 틀을 벗어나 미적으로 다양한 품격을 보였던 것이다. 시대는 변하고, 시의 형식도 변했지만, 인간의 근본정신은 변하지 않는다. 어떤 것이 고귀한 삶이며, 어떤 것이 사물과 인간을 살리는 길인지는 변하지 않는다. 유한한 인간 존재는 끝없이 고귀한 가치를 추구해왔고, 그것은 고금을 통해서 변하지 않는 고갱이로 남아있다. 시의 품격은 그 변하지 않은 시인의 정신을 말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시의 품격은 시대의 변화를 통해서 끝없이 생성되기 때문에 그 미적 차원은 현대시에서도 그 의미를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당나라 말기의 시인인 사공도(司空圖)는 『이십사시품』에서 시의 품격을 스물 네 편의 시 작품으로 표현했다. 그가 제시한 시의 품격은 시의 의미이기도 하지만 시의 품격 자체를 시로써 표현했기 때문에 시 안에는 시인의 정신을 의미하는 품격이 함축되어 있다. 따라서 그의 시를 하나하나 분석해보면, 어떤 품격이 어떻게 시로 드러날 수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그의 시품은 시의 미적 접근뿐만 아니라, 시인으로서 어떤 인격과 품성을 가져야 하는지, 또한 품격을 드러내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안대회는 사공도의 『이십사시품』을 한시와 그림을 통해서 설명하면서 시의 품격이 어떤 것인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정작『이십사시품』의 시를 통해서 시의 품격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이십사시품』은 시의 품격을 시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시의 행간을 하나하나 음미해보면 그 함축의 의미를 새롭게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사공도는 모두 스물 네 편의 시로써 시의 품격을 설명하고 있는데, 그 중에 마지막 스물네 번째는 유동(流動)의 품격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유동은 시의 품격을 설명하기보다는 우주의 근본 원리를 중심으로 순환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시의 품격은 처음이 마지막이고, 마지막이 다시 처음이라는 순환의 고리로 설명하고 있다. 시의 품격은 하나하나가 따로 각각의 품격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것은 서로 어울려서 돌아가는 수차와 같이 서로 뒤섞여 있다고 말한다. 시의 품격은 하나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우주의 기운과 같이 흐르면서 서로 순환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스물 네 개의 시의 품격에 나타난 시적 의미를 통해서 미적 양상과 그 품격의 의미를 곱씹어보기 위한 의도로 쓴 것이다.
- 본문 「시의 미적 양상과 품격」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