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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문학의 이해 > 한국문학론 > 한국비평론
· ISBN : 9788990944955
· 쪽수 : 462쪽
· 출판일 : 2012-12-22
목차
책머리에 · 002
제1부 생태담론과 유토피아
생태적 감수성의 회복과 시의 길 · 011
생태시의 무늬와 신생의 자리 · 022
사회생태학적 상상력을 위하여 · 035
서정과 환상, 그리고 유토피아 · 052
제2부 혼의 울림과 존재론적 도약
천지를 울리는 남도 가락, 그 희망의 변증법 · 067
―김선태 시의 의미
벼랑의 정신과 존재론적 도약 · 089
―김완하 시의 의미
마음의 심층, 그 역설의 소용돌이 · 106
―이재무 시에 대한 한 사색
생의 엄정과 혼의 울림 · 116
―강희근 시의 의미
신명과 응결 · 134
―성선경 시의 의미
혼의 울림과 순명(順命)의 시학 · 144
―배한봉 시의 의미
제3부 여성성과 존재의 성화
허공의 집, 혹은 혼의 궁륭(穹?) · 157
―권정일 시의 의미
혼의 노래 · 178
―송진 시의 의미
우화(羽化)를 꿈꾸는 한 달팽이의 몸부림 · 199
―정진경 시의 의미
물 속의 달, 그 이데아를 향한 그리움 · 223
―황구하 시의 의미
바람의 시혼(詩魂) · 247
―김시월의 시 세계
푸른 피, 그 존재의 시원(始原) · 263
―박옥위 시조의 의미
제4부 시인의 길, 혹은 견자의 길
시간을 넘어서려는 존재의 갈망 · 281
―이해웅 시의 의미
견자(見者)의 노래 · 300
―이종암 시의 의미
소외의 사회학 · 320
―최금진론
순명(順命)의 노래 · 344
―변종환 시의 의미
시인의 길, 혹은 존재론적 도약 · 360
―이정모 시의 의미
물의 활성에서 벽의 경직으로 · 380
―강영환 시조의 의미
제5부 본질 규명과 비평의 촉기
본질의 규명과 체계시학 · 391
―김준오의 비평세계
실존주의와 본질시학 · 410
―고석규의 시와 비평
부정과 저항으로서 한국 아나키즘시 · 426
저항과 전복 · 448
―부산 시의 상상력과 그 특징
저자소개
책속에서
책머리에
비평도 시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를 쓰지 못하는 마음이 시를 만지고 마시고 곱씹으면서 시의 향취를 우려내기 위해 애쓴다. 나의 비평은 시의 심장에 가닿기 위해 자못 애절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렇다, 비평의 애절. 비평을 이렇게 감성적으로 써도 될까 늘 되물으면서 나의 비평은 시를 재료로 삼아 나의 상상력을 가동시킨다. 상상력이 작동하면 그때 비평은 자연스럽게 감성의 세계로 나아가면서 하나의 새로운 창조물이 되어간다. 그 창조적 상상의 세계는 물론 시와 그 시를 감상하는 나의 감식안이 결합되어 직조된 또 하나의 성채. 나는 내 나름의 의미를 만들기 위해 시를 들이키고 되새김질해 애틋한 구조물을 가설한다. 그 구조물이 나의 생의 구축물인양 바라보고 쓰다듬으며 문양과 감촉에 더욱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흔히 창조적 비평이라 부르는 방법론에 나는 이제 꽤 깊숙이 발을 들여놓은 것 같다. 나의 비평은 더욱 탐미적으로 흘러 단순히 그 시인의 시적 특성을 해명하는 데서 멈추지 못하고, 나의 관점으로 끌어들여 의미의 풍성함을 최대한으로 펼쳐내고 있다. 어떻게 보면 지나친 해석 같아 보이는데, 일면 해석의 풍요로움으로 인한 아름다움도 있어 전혀 의미 없다고 말할 수는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이러한 방향이 비평의 정도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게 고집스럽게 밀고 나아가야 할 이유가 있느냐고 물어볼 수는 있을 것이다. 정말 무엇 때문에 나는 그 방법을 고집하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나는 그렇게 논리적인 비평가는 못 되었던 것 같다. 시에 대한 막연한 갈망이 비평으로 이어졌고, 비평을 통해 시적 충동을 무의식적으로 해소했던 것은 아닌지. 시적 갈증이 해석의 갈증으로 번졌다고 말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갈증은 해소하면 그만이지만 어떤 갈증은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옛 사람은 그것을 ‘기양(技?)’에 빗대어 말한 바 있다. 기양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임을 알면서도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표현 욕구를 말한다. 여기서 ‘양’이란 가려움증을 말하는데, 아무리 긁어도 가셔지지 않는 가려움을 가리키는 것으로 앞의 해소될 수 없는 갈증과 같은 뜻을 지닌다. 나는 기양과 같은 가려움 내지 갈증에 붙잡혀 최근 몇 년간 해석의 목마름에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무엇인가 해석해 내지 않으면 나의 존재성은 그만 무의미하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망상에 잡혔던 것은 아닐까.
그렇지만 다시 숙고해보면 이렇게 된 근저에는 시와 존재에 대한 최근 나의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최근 나는 죽음과 투명하게 잇닿아져 있다는 느낌이 많이 들어 그러한 상념을 시적 해석의 프리즘으로 많이 썼다. 그에 따라 시 해석의 내용과 강도도 조금 절박한 상태를 띠게 되었고, 의미의 창조적 행위 자체가 거기에 대응하고 있는 듯 보였다. 이는 존재의 소멸에 대한 두려움이 나의 정신을 옥죄면서 그 두려움에 벗어나기 위해 여러 방어기제를 가설하는 가운데 하나로 이 비평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미다. 죽음과 무의미를 이겨내기 위해 의미를 찾고, 의미를 부여하고, 의미로 집을 삼아, 의미 그 자체가 되고자 하는 것. 그것은 상당히 본능적이고 감상적일 수 있는 존재의 몸부림이다. 나의 비평은 존재의 몸부림과 같은 형상을 지니고 있다고 내 스스로 고백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한 고백이 자연스럽게 생각될 수 있는 근거는 최근 나의 비평이 죽음과 관련된 것에 중요 의미를 두고 있다는 데서 알 수 있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최근 나의 글은 이렇다.
시의 본질은 혼을 부르고 혼에 공명하는 데에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시는 제 존재성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현일 것이기 때문이다. 무한한 이 우주의 시간과 공간 속에 의식의 불꽃을 잠깐 피워냈다가 곧 섬광처럼 사라지고 말 존재이기에 이 유한성에 대해 가지는 무상감은 피할 수가 없다. 시간과 공간 속에 던져져 처단된 존재라는 인식은 자신의 생과 존재에 대해 처연한 마음을 노래할 수밖에 없게 하는 것이다. 그때 시는 그 비통한 마음의 가락을 가장 잘 살려내는 형식이 된다. 삶과 죽음의 문제를 아우르는 것으로 혼의 형식이 되는 것이다.
시를 혼의 형식으로 생각하게 되면서 시를 쓰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 모두 슬픈 존재로 여겨지게 되었다는 하나의 감성적 표현이다. 그래서 나 자신 혼의 형식에 민감한 시가 좋은 시라고 제 나름의 기준을 정하고 시적 성취를 평하고 있다. 어찌 보면 그럴 듯한 말일 수 있고 달리 보면 상당히 모호하고 관념적일 수 있다. 그러나 존재의 특성이라는 이름으로 그 절실함과 아름다움을 논하고 있어 비평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뭣하다.
이쯤 되면 비평은 무엇인가 하는 원론적 질문이 나올 법도 하다. 그렇지만 비평의 원론을 논하기에 앞서, 고백하건대 나는 이 비평집 서문에 와서야 ‘나’를, ‘나의 이야기’를 진정으로 하는 것 같다. 문득 비평도 제 자신에게 투명하게 보여야 진실이지 않겠는가 하는 뜬금없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도 그 동안 쓸데없는 비평적 포즈를 많이 취했구나. 이 말은 앞으로 나의 비평이 내 내면에서 우러나는 상상력을 발휘하되, 보다 진실된 모습으로 의미의 성채를 구축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반성적 다짐일 것이다.
좀 더 담백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기를 기원한다. 비평은 아직 거기에 무엇인가 답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싶다. 이러한 비평을 계속 할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사람들이 있다. 생활과 학문공동체로서 위안이 되고 있는 경남대 국어교육과 교수님과 계간 시전문지 ≪신생≫ 식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무료한 일상을 버텨나갈 수 있게 해주는 가족, 이제 우주과학의 꿈을 품고 대학 1학년이 된 딸 주연이와 사춘기의 질풍노도의 시기로 접어든 아들 준현에게, 그리고 이 모든 가족의 배경으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는 아내 김영희에게 새삼 눈물어린 고마움을 전한다. 모두 또렷이 깨어 살아가자. 나를 지지해주고 응원해주시는 모든 분들, 그리고 내가 믿고 따르는 모든 분들이 행복한 삶을 꾸려가길 빈다.
2012년 겨울 초입
무학산 자락에서 김경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