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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일제치하/항일시대
· ISBN : 9788991071568
· 쪽수 : 340쪽
책 소개
목차
저자의 말
상권
머리말-인과 신, 두 어린 아들에게
우리 집과 내 어릴 적
기구한 젊은 때
방랑의 길
민족에 내놓은 몸
하권
머리말
삼일운동 후의 상해
기적장강만리풍
부록
나의 소원
삼천만 동포에 읍고함
연보
저자소개
책속에서
하루는 어떤 청년동지 한 사람이 거류민단으로 나를 찾아왔다. 그는 이봉창(李奉昌)이라 하였다(나는 그때에 상해거류민단 단장도 겸임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자기는 일본에서 노동을 하고 있었는데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싶어서 왔으니 자기와 같은 노동자도 노동을 해먹으면서 독립운동을 할 수 있는가 하고 물었다. 그는 우리말과 일본말을 섞어서 쓰는데다 임시정부를 가정부(假政府)라고 왜식으로 부르므로 나는 특별히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민단 사무원을 시켜 그에게 여관을 잡아주라 하고 그 청년더러는 이미 날이 저물었으니 내일 다시 만나자고 하였다. 며칠 후였다. 하루는 내가 민단 사무실에 있노라니 부엌에서 술 먹고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 청년이 이런 소리를 하였다. “당신네들은 독립운동을 한다면서 왜 일본 천황을 안 죽이오?” 이 말에 어떤 민단 사무원이 “일개 문관이나 무관 하나도 죽이기가 어려운데 천황을 어떻게 죽이오?”한즉 그 청년은 “내가 작년에 천황이 능행을 하는 것을 길가에 엎드려서 보았는데 그때에 나는 지금 내 손에 폭발탄 한 개만 있으면 천황을 죽이겠다고 생각하였소”하였다. 나는 그날 밤에 여관으로 이봉창을 찾아갔다. 그는 상해에 온 뜻을 이렇게 말하였다. “제 나이가 이제 서른한 살입니다. 앞으로 서른한 해를 더 산다 하여도 지금까지보다 더 나은 재미는 없을 것입니다. 늙을 것이니까요.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지난 삼십일 년 동안에 인생의 쾌락이란 것을 대강 맛보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영원한 쾌락을 위해서 독립사업에 몸을 바칠 목적으로 상해에 왔습니다.” 이 씨의 이 말에 내 눈에는 눈물이 찼다. 이봉창 선생은 공경하는 태도로 내게 국사에 헌신할 길을 지도하기를 청하였다. (255~256쪽)
이튿날 밤에 진과부 씨의 자동차를 타고 박찬익 군을 통역으로 데리고 중앙군 구내에 있는 장개석(蔣介石) 장군의 자택으로 갔다. 중국옷을 입은 장 씨는 온화한 낯빛으로 나를 접하여주었다. 장 주석은 간명한 어조로 “동방의 각 민족은 손중산(孫文) 선생의 삼민주의(三民主義)에 부합하는 민주정치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하기로 나는 그렇다고 대답하고 “대륙을 침략하려는 일본의 마수가 각일각으로 중국에 침입하고 있소. 벽좌우( 左右)하시면 필담으로 몇 마디 하겠소”하였더니 장 씨는 “하오하오(좋소)”하므로 진과부와 박찬익은 밖으로 나갔다. 나는 붓을 들어 “선생이 백만금을 허하시면 이태 안에 일본, 조선, 만주 세 방면에 폭동을 일으켜 일본이 대륙침략을 해올 다리를 끊을 터이니 어떻게 생각하오?”하고 써서 보였다. 그것을 보더니 이번에는 장 씨가 붓을 들어 “청이계획서상시(請以計劃書詳示)”라고 써서 내게 보였다. 이튿날 간단한 계획서를 만들어 장 주석에게 보내었더니 진과부 씨가 자기의 별장에 나를 초대하여 연회를 베풀고 장 주석의 뜻을 대신 내게 전한다. “특무공작으로는 천황을 죽이면 천황이 또 있고 대장을 죽이면 대장이 또 있을 터이니 장래의 독립전쟁을 위하여 무관을 양성함이 어떠한가”하기로 나는 이야말로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라 하였다. 이리하여 하남성 낙양(河南省 洛陽)의 군관학교 분교를 우리 동포의 무관양성소로 삼기로 작정되어 제일차로 북평, 천진, 상해, 남경 등지에서 백여 명의 청년을 모집하여 학적에 올리고 만주에 있는 이청천(李靑天)과 이범석(李範奭)을 청하여 교관(敎官)과 영관(領官)이 되게 하였다. (277~278쪽)
과거에 나는 크게 실망하였다. 아무리 글공부를 한댔자 그것으로 발천(發闡)하여 양반이 되기는 그른 세상인 줄을 깨달았다. 모처럼 글을 잘 해도 세도 있는 자제들의 대서인 되는 것이 상지상일 것이었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 과거에 실망한 뜻을 아뢰었더니 아버지도 내가 바로 깨달았다며 옳게 여기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 그러면 풍수공부나 관상공부를 하여보아라. 풍수를 잘 배우면 명당을 얻어서 조상님네 산수를 잘 써 자손이 복록을 누릴 것이요, 관상에 능하면 사람을 잘 알아보아서 선인군자(善人君子)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말씀을 매우 유리하게 여겨서 아버님께 청하여 《마의상서(麻衣相書)》를 빌려다가 독방에서 석 달 동안 꼼짝 아니하고 공부하였다. 그 방법은 면경을 앞에 놓고 내 얼굴을 보면서 일변 얼굴 여러 부분의 이름을 배우고 일변 내 상의 길흉을 연구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내 얼굴을 관찰해보아도 귀격이나 부격과 같은 좋은 상은 없고 천격, 빈격, 흉격뿐이었다. 과거에 실망하였던 것을 상서(相書)에서나 회복하려 하였더니 제 상을 보니 더욱 낙심이 되었다. 짐승 모양으로 그저 살기나 위해서 살다가 죽을까, 세상에 살아있을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이렇게 절망에 빠진 나에게 오직 한 가지 희망을 주는 것은 《마의상서》 중에 있는 이 구절이었다. “상호불여신호 신호불여심호(相好不如身好 身好不如心好, 얼굴 좋음이 몸 좋음만 못하고, 몸 좋음이 마음 좋음만 못하다).” 이것을 보고 나는 마음 좋은 사람이 되기로 굳게 결심하였다. (32~3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