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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미안해

엄마 미안해

(유난히 아팠던 한 병사와 엄마가 나눈 이백스물한 통의 편지)

김명옥, 임종인 (지은이)
  |  
해피데이
2015-05-30
  |  
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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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미안해

책 정보

· 제목 : 엄마 미안해 (유난히 아팠던 한 병사와 엄마가 나눈 이백스물한 통의 편지)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91078352
· 쪽수 : 256쪽

책 소개

유난히 아팠던 한 병사와 엄마가 나눈 이백스물한 통의 편지를 엮은 책. 자유로운 민간인 나라와 군인 나라 국경 사이를 오간 220여 통의 편지에는 엄마와 아들이 21개월을 버텨 낸 비법이 담겨 있다.

목차

저자 서문
- “엄마, 미안해“라는 말
- 한 관심병사의 변론

제 1부 엄마의 이야기
바이올린을 부탁해 / 청개구리 엄마는 비 오는 날마다 웁니다 / 단장의 슬픔 / 군인의 엄마는 애국자 / 첫 면회 / 콩쥐 이병 / 엄마, 미안해 1 / 엄마, 미안해 2 / 카더라 통신 / 메디 플라자(중대 약국)
제 2부 임 일병의 쫄병백서
또 하나의 임 병장 / 위대한 인권선언 / 배신의 이유를 말하다 / 배신자가 되겠습니다 / 불가촉 천민 / 올챙이 시절을 기억하라 / 통과의례의 기술 / 대동여지도를 떠나보내며 / 하나님의 눈물 / 신의 선물 / 책상은 책상이다 / 운전이 서러워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국방부 시계는 간다
제 3부 Letters To 아들!(공감과 소통)
가장 긴 하루 / 학용품과 신병교육대 / 신병교육대도 살 만해요 / 체육학교 잘 다니고 있냐? / 훈련병 얘기 좀 들어봐요! / 굳뜨모닝 / 중대장 훈련병 / 잠 쫓는 방법 / 북한 소년병들이 눈에 어른거려요 / 힘 좀 내라 / 너만 힘든 게 아니다 / 엄마, 이제 훈련소 졸업해요 / 날이 차다. 밥은 먹었냐? / 진정한 이등병의 편지 / 오빠야 나 종로대학 다닌다 / 새해 첫날이 밝았습니다 / 넌 약하지 않다 / 이름 모를 새 / 엄마 첫사랑 / 유남히 추웠던 겨울_진술서 / 치킨이 보고 싶다구? / 진짜, 후임관리 / 영창 면피 / 자유 통행증 / 초고에 대하여 / 너 뭐라도 돼? / 여름캠프 / 비가 그친 오후입니다 / 환대 / 국화 한송이 / 그냥저냥 지내요 / 왜 웃었냐? 웃지 마라! / 어장관리 / 마음이 무거워요 엄마 / 아비의 소리 없는 흐느낌! / 인류애 선언 /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 국방부 시간을 잽니다! / 휴가를 다녀와서 / 병장 축하! /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고! / 컴퓨터로 편지를 써요 / 골목대장 / 끼인 세대를 위한 찬가 / 마지막 편지

에필로그
- 생일 선물(전역)
- 기억의 장독대

저자소개

김명옥 (지은이)    정보 더보기
엄마 김명옥은 낭만파입니다. 도시의 아스팔트보다 시골의 오솔길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낭만도 없이 휙휙 달라지는 요즘 세상이 영 어색합니다. 엄마는 건강하고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일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적 가치에서 삶의 뜻을 찾고, 그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길을 걷습니다. 엄마는 대학에서 문헌 정보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집 책꽂이는 하나도 정리를 안 합니다. 도서관도 아주아주 가끔 갑니다. 대학 졸업장이 진짜인지 약간 의심스럽습니다. 그래도 대학원 수료증은 진짜입니다. 만나는 분들을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고 싶어서 뒤늦게 상담학을 전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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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인 (지은이)    정보 더보기
아들 임종인은 안암골에서 우리말과 문학,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진로 고민만 햇수로 20년이 넘어갑니다. 다섯 살에는 세상을 깨끗하게 만들어주는 청소부가 되겠다고 했습니다. 초등학생 시절 어느 날엔 불쑥 음악가가 되고 싶다고 하더니, 고등학생 때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 인권 변호사가 되겠다고 했습니다. 바로 얼마 전에는 인도 오지의 의사가 되고 싶다고 어려운 생물책, 물리책, 화학책을 한아름 받아 오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 책들을 한 번도 안 펴본 채 몇 년이 지나갔습니다.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게 된 지금, 마지막 20대를 불태울 장래희망을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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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콩쥐 이병

연평도 도발에 이어 북핵 6자회담 정보를 알리는 기사들이 신문에 많이 등장했다. 그 사이사이에 고참들의 괴롭힘으로 백혈병을 앓다가 사망한 의경 사건이 보도됐다. 때맞춰 가혹행위를 못 견딘 6명의 전경들이 자대를 탈출하는 사건이 연이어 터졌다. 아이들이 수험생일 때는 신문의 교육과 문화 지면만 보였는데, 아들을 군에 보내 놓으니 나라 안팎의 정세와 군 관련 소식만 눈에 크게 띈다.
나쁜 나라다. 나라를 위해 정부를 믿고 군에 입대했는데, 어떻게 선임들의 가혹행위로 스트레스를 받아 몹쓸 병에 걸려 죽게 했을꼬?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까? 북과 대치하는 이 나라의 정치 현실, 가혹행위를 당해도 명쾌한 해결이 어려운 군의 행정과 시스템, 선임들의 폭력적인 인격장애와 이상심리가 주범이었다. 시대의 아픔과 겹치고 꼬인 악연으로 한 젊은이가 입대 9개월 만에 불치병을 얻었다. 제대로 치료도 못 받고 죽음을 맞았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간간이 부대에 복귀했을 때, 취사병에게 죽 한 그릇 청한 것도 거절당했다는 안타까운 사연도 알려졌다.
아들을 잃은 엄마는 나라와 선임병들에게 책임을 물었고, 군은 그제야 허둥지둥 재조사를 지시하며 사건 수습에 나섰다. ‘백혈병 사망 의경’의 가혹행위와 관련된 17명은 사법처리됐고, 그를 상습적으로 폭행한 2명에겐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아직은 살 만한 나라다. 새벽에 탈영하여 가혹행위를 고발한 6명의 전경들은 자대 배치 직후부터 선임들로부터 수차례 구타 당했다고 했다. 군기라는 명목으로 수면과 휴식을 박탈 당했다. 탈영자들은 군가와 선임 이름 외우기를 강요당했다고 호소했다.
군은 과감하게 일처리를 했다. 탈영한 대원들을 내부고발자로 대우해 피해가 없도록 했다. 가혹행위에 관련된 선임 병사들을 형사 입건했다. 고질적으로 구타와 가혹행위가 잔존해 온 해당 부대를 해체시켰다.
신문에 군 관련 기사만 나오면 오려서 읽고 또 읽었다. 사법적인 처리와 해결들로 표면에 떠오른 문제들을 해결했지만, 생명을 잃은 젊음은 어찌할까? 아들을 잃은 엄마에게 그 무엇이 위로가 될까? 전경과 의경으로 자식을 보낸 부모들은 또 얼마나 불안할까? 또 우리 아들은 구타와 가혹행위에서 얼마나 안전할 것인가?
가끔 걸려오는 전화 외엔 군에 있는 아들의 상황을 알 길이 없었다. 그저 잘 지낸다고, 걱정하지 말라는 말이 전부였다. 그래도 엄마는 그 목소리에서 자식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정말 평안한 것인지 모든 감각을 세워 상황을 가늠해두어야 했다.
그러던 한겨울 깊은 밤에 느닷없는 전화가 걸려 왔다.
“엄마! 나 숨이 막혀요…….”
“왜? 무슨 일인데? ”
“······.”
“너, 똑바로 말해봐! 너 구타당하는 거 맞지?”
“······끄억. 끄으윽······”
수화기 너머로 목울음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피가 머리끝까지 솟구쳤고, 손가락 마디 끝까지 전율이 일었다.
“…… 잘 견딜게요. 읍! 으음! 엄마 목소리라도 들으면 힘이 날 것 같아서요.”
주변이 의식되는지, 전화도 다 검열을 받는지, 아들은 짧게만 작은 조약돌을 흘렸다. 작은 단서만으로도 아들에게 닥친 버거운 상황이 감지됐다.
아들은 입대한 지 3개월 된 콩쥐 이병이었다. 영하 16도에도 맨손으로 얼음물 세차를 했고, 청소와 내무반 잡무를 도맡아 했다. 밥 먹다가도 불려가서 면박 당하고 폭언을 듣는 일은 일상인 것 같았다. 업무와 관련된 암기사항들을 수첩에 들고 다니며 외워도 늘상 탈탈 털리는 듯했다. 책도 못 읽게 통제하고, 편지조차도 새벽에 화장실에 가서 읽는다고 했다. 개인 관물대도 무시로 침범 당하고. 무슨 빽으로 1호차 운전병 후보로 뽑혀왔느냐며 협박도 당했다. 이런 일들 외에 어떤 상황이 겹쳐진 것일까? 얼마나 위협적인 분위기였으면 숨이 막힌다고 할까?

엄마, 미안해!

울릉도에서 며칠 동안 쉬고 있는 중이었다. 멀미약을 하도 먹어 비몽사몽 하루 일정을 마치고 난 저녁이었다. 숙소에 돌아와 뉴스를 보니 해병대 병사가 기수열외에 원한을 품고 내무반 동료들을 네 명이나 사살했다는 내용이었다. 사고를 낸 병사는 수류탄으로 자폭하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해 국군병원에서 치료 중이라고 했다. 가슴이 철렁했다. 잘은 모르지만, 2005년 연천 사건 연천 군부대 총기난사사건. 8명이 죽고, 2명이 부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로 가장 심각한 총기 사건이라고 했다.
기수열외란 해병대 내에서 왕따를 만드는 방법이었다. 투명인간처럼 아예 인간 취급을 안 해주는 경우라고 했다. 후임병들까지 무시하고 자존심을 극도로 무너뜨리는 악습이었다. 기수열외와 가혹행위가 사라져야 한다고 사건을 일으킨 사병은 병원에서 필답했다. 하루가 다르게 그 병사는 문제아로 취급되고,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비춰졌다. 해병대뿐 아니라 전군의 가혹행위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대책이 필요한 시점에서 언론은 오히려 모든 원인을 개인의 정신적 문제로 몰아갔다. 공범이 있다고 떠벌리면서.
공범으로 체포된 정 이병이 받은 가혹행위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선임을 하나님으로 믿으라고도 했고, 사타구니 부분에 모기약을 뿌리고 라이터로 불을 붙이기도 했다. 자극적인 성분의 연고를 얼굴에 바르고 씻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선임들은 전쟁터에 나가 싸우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고 괴롭게 두 병사의 인격을 짓밟았다. 총기로 동료들을 사살한 것은 변명할 수 없는 명백한 죄이다. 하지만, 선임들의 가혹행위가 분노로 쌓이고 쌓여 극단적인 결말을 가져왔다는 것에는 왜 초점을 두지 않는 것일까? 군기라는 명목 하에 암묵적으로 허락되었던 가혹행위가 살인을 불러올 만큼의 분노와 적의를 만든 것이다. 피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상황이 절망스러웠던 것이다. 결국 자신의 인생도 포기하려고 했던 것이다.
충격으로 말을 할 수 없게 된 사고병사는 모든 것을 끝내고 싶다는 글만 끄적였다.
낙서처럼 쓴 글 끝에 눈에 확 들어온 네 글자.
“엄마, 미안해!”
해병대의 군기와 고된 훈련 가운데도, 살의를 주체할 수 없는 피폐함 가운데도 작은 햇살처럼 남아있는 따뜻하고 선량한 마지막 양심.
“엄마, 미안해!”
가혹행위를 했다지만 너무 큰 대가를 지불한 사망 병사들의 엄마. 더 이상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닌 살인자 아들의 엄마. 모든 언론과 군 책임자들의 단편적인 손가락질로, 사건을 일으킨 병사는 아무에게도 변호받지 못하고 있었다. ‘공공의 적’이 된 아들을, 남은 세월 내내 죄수로 매장되어 생을 마감해야 하는 아들을 바라봐야하는 엄마에게, 이미 죽은 목숨일 엄마에게, 아들은 정말 미안하다고 한다.
가혹행위의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바뀐 값이, 부화뇌동하는 군중심리에 휩쓸려 분별없이 가혹행위에 합세한 값이, 결국 다섯 아이들과 다섯 엄마들의 죽음이었다. 그렇게 아들을 잃은 엄마들에게나 자신의 엄마에게나, 김 상병은 모든 엄마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아들이 알 수 없는 분노와 답답함으로 저항할 수 없는 약자에게 가혹행위를 하고 있는지, 혹은 반대로 폐쇄된 공간에서 가혹행위를 당하고 있는지 엄마들이 헤아려볼 삶의 여유들은 없었을까? 아들이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할 것이 아니라, 엄마가 미안하다고 해야 할 것 아닌가?
불화와 애정 결핍으로 얼룩진 가정이, 폭력적인 경쟁을 조장하고 권하는 사회가, 괴벽스러운 성격 장애자를 걸러내지 못하고 무조건 군 입대를 강행한 병무청이, 여하한 사건 사고에 노출된 군대의 부조리와 모순을 정치적으로 제도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정치가들과 군 책임자들이, 미안하다고 해야 할 것 아닌가?
아니다. 아니다. 다 엄마가 잘못했다. 다 엉터리고 다 뒤죽박죽이었어도, 제 몸으로 낳은 아들을 목숨처럼 지켜내지 못한 엄마가 다 미안하다. 내 아들만 지켜내는 것이 아니라, 남의 아들들이라도 함께 지켜내지 못한 이 땅의 모든 엄마들이 잘못한 거다. 미안한 거다. 우리의 아들들이 숨 막히는 갈등과 위기 가운데 치열하게 고민할 때, 아무 것도 모르고 일상을 살아간 엄마들이 미련하고 어리석었다.
구조적인 제도나 정치적인 문제에도 목소리를 높여 바르게 세워지도록 국민의 의무를 다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단절되고 고립된 군대에서 다스려지지 않은 분노와 원망을 약자에게 가혹행위를 하면서 풀고 있지는 않는지 아들들을 세심히 살펴야 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분노와 원망을 다스리고 정화시킬 수 있도록, 아들들과 공감하고 소통했어야 했다.
아침에 신문을 펴는 것이 두려울 정도로 군대 내 자살 소식이 연이어 전해진다.
“나는 이제 삶을 마감하려 한다. 엄마도 되게 슬퍼하시겠지.”
생을 마감하려는 순간 엄마가 가장 눈에 걸렸겠지. 차마 힘내서 극복하고 견디지 못하고 슬픈 삶을 마감하려는 마지막 순간의 진실.

“엄마 미안해!”

하나님의 눈물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했다. 내게 군대에 딱 맞는 신체 조건이 하나 있었다. 바로 코끼리 가죽만큼 튼튼한 발바닥이었다. 나는 행군의 신에게 축복이라도 받고 태어난 모양이다. 입대 전에 군인 사진을 찾아봤을 때, 행군을 마친 군인의 발 사진을 보고 덜컥 겁을 먹었지만, 내게 그런 영광의 상처는 한 번도 없었다. 기껏 훈련소에 챙겨간 물집 방지용 스티커나 스타킹을 쓸 일도 없었다. 결국 발바닥 패드 스티커는 별 모양으로 오려서 전투모에 붙여가며 장군 놀이에 써먹었고, 스타킹은 야한 농담 소품으로 써먹었다. 자대에서도 40Km 야간 행군 한 번 다녀오면, 분대 후임은 발바닥에 피물집이 터져 며칠 동안 벽을 짚고 걸어 다녔지만, 나는 슬쩍 발바닥이 뜨끈뜨끈하다가 말았다. 뭐든 잘 하면 좋아하는 법이라고, 믿기지 않겠지만, 나는 행군을 좋아했다. 상병이 된 이후에 뒤늦게 들어간 수송부 행정반의 잉여자원이어서 행군 인원으로 발탁되기도 했지만, 짬이 차서 눈치껏 행군을 빼먹을 수 있는 상황에도 자원해서 ‘야간 산책’을 다녀오곤 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걷는 시간이 좋았다.
산 속의 밤은 도시의 밤보다 짙다. 휴전선과 채 20Km도 떨어지지 않은 산자락에 이백여 명의 어린 군인들이 뜨거운 숨을 토해내며 걷는다. 10분짜리 휴식 시간이면, 모두들 군장을 맨 상태로 벌러덩 나자빠져 누워 말없이 밤하늘을 응시하곤 한다. 부산스러운 소리 너머에선 밤의 소리가 들린다. 햄버거 빵에 뿌려 놓은 깨알 같은 별 아래 소쩍새가 울고 저 멀리 동네에선 잠에서 깬 개들이 짖는데, 바스락대는 밤벌레들이 여기저기 귀를 간지럽힌다. 소변을 보네 담배를 피우네 북적이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느끼는 묘한 적막감과 고독은 운치가 있다. 나홀로 거대한 밤을 마주하는 느낌이었다. 온갖 공상과 상상으로 수놓는 밤은 꽤 중독성이 있었다. 저잣거리에서 은거하는 도인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쉬는 시간 초코파이 한 입 베어 물고, 멍하니 어둠을 바라볼 때, 한 마리 반딧불이라도 반짝이며 날아가면, 감성으로 넘치는 완벽한 밤이 완성되는 것이다.
문제는 감동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지치고 피곤하고, 고통스러운 훈련 중에 나 정도 수준의 ‘변태 감성’을 공유하기는 불가능했다. 오히려 쥐어 박히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모두 죽을상을 쓰고 있는데 홀로 실실거리면서 좋아라 하고 있으니, 가끔 이상한 놈 취급 받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나는 그마저도 즐거웠다. 날 보고 어이없어 하는 선임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꽤 즐길 만했다. 점점 ‘돌아이’가 됐기 때문일까, 아니면 원래부터 돌아이였던 녀석이 제 본모습을 깨달은 것일까.
때는 바야흐로 유격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행군 길이었다. 산길을 뱅글뱅글 돌다가 비로소 평지에 내려와 저수지 옆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날따라 컨디션도 좋았다. 힘겨웠던 유격 훈련을 끝낸 성취감도 가득했다. 가능하다면, 며칠이고 이 밤길을 걷고픈 마음이었다. 실낱같은 바람이 방탄모 위를 훑고 지나갔다. 청개구리도 잠든 깊은 밤, 적막한 저수지에서 아주 작게 물거품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비라도 한 줄기 그을 것 같은 하늘을 보니 글 한 토막이 생각났다. 비를 ‘하나님의 눈물’로 그려 낸 권정생 선생님의 동화였다. 옆에 발라당 누워버린 선임한테 기운이라도 북돋울 겸 말을 건넸다.

“비가 내리면, 마른 땅에 딱 닿는 첫 방울이 있지 않겠습니까?”
“어.”
“다른 물방울보다 앞서서 맨 처음으로 땅을 적시는 1등 물방울 말입니다.”
“어, 그게 왜.”
“그거 신의 눈물방울일지도 모릅니다.”
“.......”
“땅이 그동안 지치고 고생했다고 위로하고 적셔 주는 그 첫 빗방울은, 연민 섞인 하나님의 눈물일지도 모릅니다.”
“...... 하아...... 미친 씨발.”

미친놈은 약도 없다는 표정으로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는 그때 정말 머리가 어떻게 됐었는지, 그 진저리치는 반응조차도 내심 즐거웠다.
오지랖 넓은 내 혓바닥이 천기를 누설한 까닭일까. 나 때문에 하나님이 쌍욕을 먹어서 그랬을까. 그때부터 행군의 막바지 한 시간 반 동안 죽어라 비가 내렸다. 완벽했던 밤은 ‘고난의 행군’이 됐다. 여기저기 구멍 나고 썩은 우비를 뒤집어쓰고 앞이 보이지 않는 비를 맞으며 걸었다. 곰팡내 풀풀 풍기며 쫄딱 젖은 모양이 하나님의 눈물보다는 오줌을 맞은 것에 가까웠다. 그때 내 옆에 앉았던 모 상병아, 내가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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