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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사진/그림 에세이
· ISBN : 9788991177376
· 쪽수 : 309쪽
책 소개
목차
머리말
1 꿈꾸는 오줌싸개
갈치 한 토막
꿈꾸는 오줌싸개
나룻배
재봉틀
출산
파리유희
2 달챙이 숟가락
꿈꾸던 시절
개보름날
고봉밥
달챙이 숟가락
우렁이 새끼
저금통과 세뱃돈
3 야옹이와 멍멍이
방개유희
야옹이와 멍멍이
천년세월의 하루살이
송충이 설움
개구리 만세
분노의 지렁이
누에
제비
참새와 초가
서캐야 놀자
4 몽당연필
책보를 메고
몽당연필
용의검사
애인구함
컨닝
우리 선생님
조개탄 난로와 고추장 비빔밥
도비
5 검정고무신
털실로 짠 장갑과 양말
아랫목
펌프
서리
연탄
검정고무신
빨간약
풀빵
누룽지
튀밥
양식
띠기
깔끔한 코흘리개
6 등잔불
둠벙
들밥
등잔불
타래박과 물지게
무서운 이야기
이름말
주전부리
개구쟁이
솔향기
똥수깐
7 마음의 향기
춘하추동
내 사랑 그대
마음의 향기
저자소개
책속에서
나 어릴 적, 밥상 위에 올려지는 식기는 사기와 놋쇠로 된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놋쇠로 만들어진 그릇은 보온성이 좋아서 주로 어른들께서 사용을 하셨습니다. 숟가락과 젓가락도 어른들이 사용하는 것은 놋쇠로 된 것이었는데, 놋쇠로 된 숟가락은 얇아서 사용하기 편리했지만 아주 빨리 닳아버렸습니다. 어른들께서는 그 놋쇠숟가락 중에 유독 많이 달아서 반쪽만 남은 수저를 달챙이 숟가락이라 불렀습니다.
보통의 숟가락이 보름달이라면, 이 달챙이 숟가락은 반달이었습니다. 항상 반달로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점점 작아져 초승달이 되었다가 그 운명을 다하는 달챙이 숟가락이었습니다. 쓰면 쓸수록 숟가락의 날이 날카로워지던 이 달챙이 숟가락은 집집마다 없는 집이 없었습니다. 최소한 한 개의 달챙이 숟가락이 있었으니, 그만큼 이것이 꼭 필요했던 것입니다.
돌아가신 할머니께서는 이 달챙이 숟가락으로 과일을 긁어 잡수셨습니다. ... 이빨이 다 빠져 합죽이가 되었던 할머니께서는 달챙이 숟가락으로 과일을 사각사각 긁은 다음에, 과즙이 흥건하게 담긴 숟가락을 입에 넣어 오물오물 입을 움직이셨습니다. 연신 맛있게 잡수시는 모습을 보면 침이 저절로 넘어갔습니다.
밖의 날씨가 몹시 춥던 어느 겨울날, 할머니께서 커다란 무를 하나 들고 방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따스한 아랫목으로 앉으시더니 달챙이 숟가락으로 그 무를 사락사락 긁으셨습니다. 파란하늘의 뭉게구름이 녹아내리듯 달챙이 숟가락 속으로 무즙이 모아졌고, 할머니는 그것을 맛있게 잡수셨습니다. 옆에 앉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던 내 마음을 아셨는지, 할머니께서는 무즙이 담긴 달챙이 숟가락을 나에게 내밀었습니다.
넙죽 그것을 받아 입에 넣자, 가슴까지 시원한 기운이 퍼지면서 달착지근한 무즙이 입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무가 이리 맛있었다니, 평상시에 입으로 잘라먹던 그런 무의 맛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동안 할머니께서 왜 달챙이 숟가락을 찾으셨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