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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미술 > 미술사
· ISBN : 9788991847361
· 쪽수 : 128쪽
· 출판일 : 2007-09-10
책 소개
목차
들어가는 말
시대구분과 전개 | 바로크 양식개념 | 정치적·사회적 전제조건
건축
반종교개혁의 핵심 건축:‘일 제수 Il Ges?’예수회교회 | 바로크의 도시계획 : 로마의 예 | 성 베드로 성당 대 건축 | 교황의 총애를 받은 젊은 만능천재 | 베르니니의 맞수: 프란체스코 보로미니 | 바로크식 도시광장의 전형적인 예: 베르니니의 베드로 광장 | 베르사이유 : 바로크식 궁전의 전형 | 빈의 황제 또한 바로크식 궁전을 가지다 | 빈의 새로운 성 베드로 성당과 카를 성당의 제국양식
회화
카라바조와 안니발레 카라치: 로마의 바로크 회화 창시자 | 예술적 방법에 의한 공정한 그림 경쟁 | 로마에서 세상의 주목을 받은 루벤스 | 루벤스의 귀향 | 스페인의 세계패권 | 새로운 세계패권국으로서의 영국 | 통일된 네덜란드 공화국과 그 수도 암스테르담 | 할렘을 향한 시선 | 델프트를 향한 시선 | 네덜란드 풍경화 | 로마의 풍경화 | 정물화
조각
베르니니의 초기 걸작 | 베르니니의 코르나로 성당 : 바로크식 총체예술작품 | 교황의 총애를 받은 베르니니의 경쟁자 | 플랑드르 출신의 세 번째 경쟁자 | 베르사이유의 조각 프로그램 | 크로톤의 밀론: 로코코를 예고하다
용어해설 | 바로크 미술 여행안내 | 색인
리뷰
책속에서
17세기 후반에 와서야 바로크식 건축양식은 우리가 오늘날 독일과 오스트리아라고 부르는 지역에 점차 세워질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무엇보다도 독일 신성로마제국의 영토 위에서 벌어졌고 유럽의 모든 대권 국가들이 관계되었던 30년 전쟁(1618~48)에 기인했다. 이 싸움은 무엇보다도 독일에서 예술적인 면에서의 발전이 정체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왜냐하면 돈이 전쟁과 군비확장에 흘러 들어가서 예술을 후원하는 데 쓰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1648년 10월 24일 뮌스터와 오스나부르크에서 열린 베스트팔렌 평화조약 이후에야 독일제국은 점차 회복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합스부르크가를 위해서도 대표적인 바로크 궁전이 세워지기까지는 1683년 빈이 터키인들의 포위공격을 이겨내며 승리한 뒤인 근 50년의 세월이 흘러야 했다. 황제 레오폴트 1세는 이 궁전을 빈 가까이에 있는 쇤브룬 앞의 구릉지대에 세우도록 했다. 그곳은 수도의 성문 앞이 되는데, 그것은 마치 프랑스의 국왕 루이 14세가 베르사이유에 성을 세운 것과 같은 위치로써, 그 성은 17세기 말엽 두 군주의 권력을 보여주는 전시물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많은 바로크 성 중에서 베르사이유는 의심의 여지없이 그러한 권력을 대표하는 기능을 했으며 베르사이유와 경쟁하면서 쇤브룬 성은 되찾은 황제의 힘의 징표가 되어야 했다.
그 성의 설계는 모든 시대의 건축양식을 섭렵했던 요한 베른하르트 피셔 폰 에를라흐에게 위임되었다. 그는 여러 해 동안 이탈리아에 체류하면서 로마의 베르니니의 영향하에서 수련을 쌓은 후 빈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전에 전유럽을 위협하던 터키의 공격을 물리친 빈에서 건축의 열기가 강해졌음을 발견하였다.
- 본문 43~45쪽, '빈의 황제도 바로크식 궁전을 가지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