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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운동 > 사회운동가/혁명가
· ISBN : 9788992008471
· 쪽수 : 292쪽
· 출판일 : 2011-08-16
책 소개
목차
옮긴이의 글
간디에 대한 E. M. S. 남부디리파드의 입장 ? 프라카시 카라트(CPIM 총서기)
재판 서론(1959년)
재판 서문(1981년)
서론
초창기
비협력운동
첫 번째 불화
푸르나 스와라지
소금 사티아그라하 국면
은퇴
통일 전선
공직 수락과 그 이후
운영위원회와의 충돌
Quit India와 그 이후
8월 15일 : 승리인가 패배인가?
간디주의의 의미
간디 이후의 간디주의
제도화(1981년)
간디 암살의 정치학(1998년)
[부록] - 정호영(옮긴이)
간디 중심의 국민회의 역사에서 벗어나기
현재 인도에서의 부단운동
이 책을 위한 짧은 연표
지은이 소개
리뷰
책속에서
물론 이때가 간디가 처음으로 단식에 의지하던 시기는 아니다. 그러나 투쟁하는 민중의 전투성을 점검하기 위해서 단식에 의지한 것으로는 처음이었다. 여기서 그들에게 보여준 것은 단번에 대중을 모을 수도 있고 그들이 전투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막을 수도 있는 투쟁의 기술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 <비협력운동> 중에서
간디는 구자라트의 케다 지역 민중들 사이에서 ‘모든 촌락마다 20명씩 모병하기’란 슬로건을 내걸고 운동을 전개하면서 이 기술을 사용했다. 우리가 상기해야 되는 것은 이 시기에 영국은 성공적인 전쟁 수행을 위해서는 수천 명의 인도인들을 모병해야 하는 절박한 요구가 있었다는 것이다. 총독은 델리에서 전시회의를 열고 누구보다도 먼저 간디를 초청하였다. 간디는 모병 결의에 대해서 지지한다고 말했고, 단 하나의 조건은 힌두-우르두어로 말하는 것을 허락해달라는 것이었다. 총독은 기꺼이 이에 동의했다.
― <비협력운동> 중에서
폭력에 대한 혐오를 아주 많이 거론하였지만 이것은 단지 노동자계급이 자신이 가진 투쟁의 무기 - 정치적 총파업 - 로 정치적 행동으로 들어가게 되면 운동은 설정한 한계를 넘어서게 된다는 사실에 대한 부르주아지로서의 본능적인 공포일 뿐이다. 이것이 제국주의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에 총알받이로 ‘모든 촌락마다 20명씩 모병하기’를 요구하면서 어떤 망설임도 없었던 그가 민중, 노동자, 농민들이 조직된 정치 세력으로 행동의 영역으로 들어갈 때 발생되는 사소한 폭력 사건들에 몸서리를 쳤던 이유이다. 이것이 일관되게 자신의 강령에 중농, 빈농, 토지 없는 가난한 이들의 요구인 고리대금업자의 빚 청산, 지대의 획기적인 경감, 토지분배 등을 포함시키지 않은 이유이다.
― <비협력운동>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