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92219778
· 쪽수 : 124쪽
· 출판일 : 2018-09-29
책 소개
목차
제1부
까막까치/ 저녁강/ 걸인의 식사/ 자정의 작용/ 점원, 우아하게/ 나는 하수다/ 지네가 툭/ 소낙비/ 무늬들/ 블랙홀/ 쿠바 리브레/ 헌화/ 공기인간
제2부
노을/ 유월은 하양/ 비행운/ 환승/ 역마/ 장미사원/ 그래 가자/ 악수/ 멀미/ 무위사 / 공원, 봄밤/ 공원 / 제비가 날아갔다/ 여름, 쌍계사 가는 길
제3부
정북토성/ 옥주/ 코르사코프의 검은 개/ 더 그린 라인/ 인디언식 이름은/ 고비/ 고비 3-목동/ 고비 5-에미/ 고비 6-전봇대/ 고비 7-수컷을 다루는 법/ 고비 8-푸른 늑대/ 고비 9
제4부
가을밤/ 명경/ 씨알/ 못/ 시인의 세금을 면제하라/ 강력반 형사에게 시집을 주다/ 고양이/ 도둑의 전모/ 따루 주막/ 꽃사기/ 사월/ 바람이 바람의 귀를 찢으며/ 봄인데 말이야
저자소개
책속에서
잘 익은 무화과를 다오
그물망을 치워 다오
너의 창문에 돌멩이 던지면서
까옥거리면서
맴도는
검은 그림자
나는 배회하는 골목이다
없는 구름을 끌어당겨 빨아 먹는
먼 곳, 멀어서 사무치는 문장으로
네 붉은 배꼽 아래 엎드려
너를 파먹겠다 어둠의 정신으로
한사코
너에게 가야겠다
나는 네 눈을 열어야겠다
-「까막까치」 전문
계단참에 하염없이
앉아 있는 저 사내
햇살 따가운 한낮 겹겹 옷을 껴입고 왜 맨발일까
커다랗고 거칠고 퉁퉁 부어오른 코끼리 발등
시끄러운 소음과 매연 그리고
표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저 사내
빵집 앞에서 주유소 앞에서 늘
어느 모퉁이 길바닥에서
거구를 이끌고 느릿느릿
걸어가거나 우멍하게 앉아 있는
그를 만날 때마다
나는 코끼리 한 마리가 도심에 출몰했다고 생각했다
아프리카 원시림을 떠났거나 동물원 울타리 부수고 탈출했거나
슬며시 이 도시에 나타난
그가 뭘 먹는 걸 보지 못했다
말하는 걸 듣지 못했다
눕거나 조는 것도
보지 못했다
도시는 그의 몸집보다 거대했고
그는 이 도시의 완벽한 그림자였다
누구에게도 그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그를 포획하러 오지 않았다
점점 불어나는 그의 몸이 언젠가는
이 도시를 꽉 채우는 집이 될 것이다
- 「걸인의 식사」 전문
웃는 별이 있다
우는 별이 있다
오래 걸어온 자들은 안다
광장에 주저앉아 신발을 벗고 부르튼 발 주무르며
언제까지 걸어야 하나 혼잣말은 앞으로도
첫 마음으로 걸어야 한다는 것
거대한 파도에 밀려 헤진 옷
훌훌 벗어놓고 등을 말고 잠든
순간에도 심장은 뛰고 있어서
그것이 슬퍼 웃고
그것이 아파 울지 못하는
별들이 참 뜨겁고도 서늘하게 반짝인다
도시의 우듬지가 별들의 박동을 들으며 출렁이는 시간
도시의 파도는 거세고 무거우니
어두운 손 뻗어 입을 틀어막는 짐승들아
개 같은 날들을 치워라
우리는 슬프고 아픈 기미 찾아
온 마음으로 꿈을 꾼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내일이면 또 별들이 나와
생의 스크럼을 짤 것이다
- 「자정의 작용」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