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의 꽃 1

'한혜연한테 연락할까?'
사실 시후는 한참 전부터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전화를 하고 싶은데 목소리를 들으면 보고 싶을 것 같고, 지금은 움직일 수 없는 상탠데 침대 옆 협탁 위에 올려놓은 휴대폰에 자꾸만 시선이 갔다. 대체 이 여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하던 자신이 며칠째 연락이 없는데 궁금하지도 않은 걸까. 이렇게 무심할 줄이야. 자존심도 상하고 또 섭섭한 마음까지 들었다. 오는 여자 막지 않고 가는 여자에게 손까지 흔들어 주던 류시후가 여자 하나 때문에 이렇게 소심해지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긴 시간 알아온 것은 아니지만 혜연에게 자신이 이렇게까지 존재감이 없다는 것에 허탈했다. 아직도 갈 길이 먼데 이렇게 병원에 처박혀 있을 수 없었다. 틈을 주면 겨우 조금씩이지만 녹고 있는 것이 분명한 그녀의 마음이 또 단단하게 얼어 버릴 것이다. 여자들과의 관계는 느긋함과 여유를 잃으면 삽시간에 무너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이지만 이 얼음공주에게만은 이것저것 복잡하게 따지지 않고 한 발짝이라도 더 가까이 가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 1권 본문 214~215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