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나비

그 해 가을
붉은 털
봉숭아 꽃물
사월 봄비
몽당치마
그해 봄의 나비
검정 운동화
아버지의 등
청해관
어머니의 브로우치
어머니와 나비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내 기다림의 가운데 자리에 들어와 있는 사람은 불행하게도 그대까지 단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아버지였습니다. 나와 어머니, 그리고 누나와 할아버지의 울타리 안에 왜 아버지가 여태 다 한 번도 들어와 있지 않은지 나는 그때까지도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어머니와 할아버지 앞에서 입 밖으로 내서는 안 될, 금기사항이 되었던 아버지에 대한 모든 것.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그 어떠한 것도 아는 게 없었지만 나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가을날 아침부터 담벼락에 기대어 서서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 속에서 무작정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