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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전 한국소설
· ISBN : 9791194706212
· 쪽수 : 104쪽
· 출판일 : 2025-10-20
책 소개
니케북스 ‘불멸의 연애’ 시리즈 첫 권 출간!
니케북스 문학선 《불멸의 연애》 시리즈의 첫 번째 책 현진건의 〈희생화〉와 〈그립은 흘긴 눈〉은 한국 근대문학 속에서 ‘연애소설’이 어떤 의미로 자리 잡았는지를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두 작품은 모두 사랑을 중심에 두고 있지만, 하나는 제도와 사회 앞에서 좌절된 사랑을, 다른 하나는 내면의 갈등과 언어로 남겨진 사랑을 다루며, 한국 문학이 근대적 전환기에 맞닥뜨린 두 가지 길을 상징한다.
〈희생화〉는 1920년 11월 발표된 현진건의 데뷔작이다. 신식 교육을 받은 청년과 그가 사랑하는 여인은 자유연애를 꿈꾸지만, 봉건적 가문의 권위와 질서에 가로막혀 결국 이루어지지 못한다. 청년은 사랑을 개인의 권리이자 인간 본질의 감정으로 이해했지만, 결국 여인이 관습에 의해 희생되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작품의 사실적 완성도는 미흡하다는 평가도 있지만, 자유연애라는 주제를 본격적으로 문학의 장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희생화〉는 분명한 의미를 지닌다. 이 작품은 근대 청년 세대가 이상으로 삼았던 자유연애가 현실의 장벽 앞에서 어떻게 꺾이는지를 보여주며, 한국 문학사에서 본격 연애소설의 출발점으로 기록된다.
〈희생화〉의 인물들은 모두 사랑을 중심으로 성격이 드러난다. 청년은 신식 가치관의 대변자이며, 여인은 봉건 질서에 의해 희생되는 존재, 부모 세대는 낡은 권위의 상징이다. 결국 사랑을 지키려는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고, 개인의 감정은 사회 제도의 강압 속에서 좌절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희생화〉는 단순한 연애소설이 아니라, 사랑을 통해 근대적 가치와 전통 질서의 충돌을 드러낸 사회소설로 읽힌다.
반면, 〈그립은 흘긴 눈〉은 전혀 다른 성격을 띤다. 오랫동안 단순한 수필로 여겨져 문학적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최근에는 시적 리듬과 언어의 음악성을 구현한 산문으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이 작품은 사건이나 갈등 중심의 서사가 아니라, 놓쳐버린 사랑을 회상하며 남은 감정을 언어로 붙잡는 데 초점을 맞춘다. 화자는 사회적 제약보다 감정의 진정성에 몰두하며, 그리움의 대상은 실체적 인물이 아니라 부재의 이미지로만 나타난다. 작품 전체를 흐르는 것은 사랑에서 비롯된 추억, 상실, 그리고 되돌릴 수 없는 비극의 정서다.
〈그립은 흘긴 눈〉은 사랑을 제도와 현실 속에서 좌절된 사건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사라진 사랑의 흔적을 내면의 서정으로 남기는 방식을 택한다. 이로써 현진건은 사랑의 감정을 단순히 사회 현실의 반영으로 머물게 하지 않고, 언어적·미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끌어올린다. 이는 한국 문학이 사회 비판적 리얼리즘에서 벗어나 감정과 언어의 가능성을 실험한 이정표로 평가할 수 있다.
〈희생화〉와 〈그립은 흘긴 눈〉은 서로 다른 방향에서 한국 근대문학의 연애소설 지형을 확장했다. 하나는 사회와 제도의 벽 앞에서 무너진 사랑을, 다른 하나는 기억과 언어 속에서 되살아난 사랑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사랑은 단순히 개인의 사적인 감정이 아니라, 시대와 제도, 사회와 개인, 현실과 내면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문학적 화두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왜 지금 현진건인가?
현진건은 한국 근대문학이 사실주의로 나아가는 데 이정표를 세운 작가다. 그는 낭만적 감상주의에서 출발해 점차 사회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보며 이를 작품 속에 비판적으로 담았다.
현진건의 작품은 절제된 감정이 특징이다. 인물의 침묵, 말끝을 흐리는 대사, 내면의 독백 같은 장치는 과장된 감정을 경계하면서도, 독자에게 깊은 울림과 윤리적 성찰을 남긴다. 그는 또한 사랑, 책임, 죽음 같은 문제를 도덕의 잣대가 아니라 인간 감정의 진실성 속에서 탐구했다. 이처럼 현진건의 작품은 시대의 현실을 보여주는 동시에, 개인이 감정과 윤리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초월적인 질문을 던진다.
■ 시리즈 소개
니케북스의 ‘불멸의 연애’ 시리즈
이룰 수 없었기에 시공을 초월해 살아남은 얻은 100년 전 사랑 이야기
연애는 시대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나타나지만, 인간의 가장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경험으로서 문학 속에서 늘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니케북스 ‘불멸의 연애 시리즈’는 고전과 근대문학에 담긴 사랑의 모습들을 현대의 독자와 다시 마주하게 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이 시리즈는 연애를 단순한 낭만이나 감정의 발현으로 한정하지 않고, 사회적 제약, 개인의 욕망, 자유와 억압, 행복과 상처가 교차하는 장으로서 조명한다. 19~20세기의 작가들이 남긴 사랑의 서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그 속에서 사랑의 빛과 그림자, 그리고 연애를 둘러싼 인간 존재의 복합성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특히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문학 속 불멸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의 감정과 관계를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목차
작가 소개
희생화
데뷔작 발표 당시의 감상
그립은 흘긴 눈
현진건에 대한 김동인의 단평
작품 해설
저자소개
책속에서
분결 같은 두 손 사이로 보이는 얼골은 발그레하였다. 나는 웬일인가 하고 얼골 가린 두 손을 힘써 떼었다. 두 손은 젖어 있었다. 누님의 두 눈으로 눈물이 흘러나린다. 구슬 같은 눈물이 점점이 월계화에 떨어진다. 월계화는 그 눈물을 머금어 엷은 명주로 가린 듯한 달빛에 어렴풋이 우는 것 같다. 누님의 머리는 불덩이같이 더웠다.
“왜 안 자고 나왔니……?”
하며 내 손을 밀치는 그 손은 떠는 듯하였다.
희생화
그는 남학생과 여학생이었다! 그와 누님이었다! 나는 가슴이 설렁하며 일종 호기심이 일어났다. 살짝 남의 집 담 모퉁이에 은신하였다. 둘은 내가 거기 숨어 있는 줄은 모르고 영어로 무어라고 소근소근거리며 지나간다. 그중에 이 말이 제일 똑똑히 들리었다.(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니 아마 이 말인 것 같다.)
“Love is blind.(사랑은 맹목적이라지요.)”
라니까 누님은 소리를 죽여 웃으며,
“But, our love has eyes!(그런데 우리의 사랑은 보는 사랑이지요.)”
희생화
암만 어머님이라도 그때는 부끄러웠어요. 이젠 서로 약혼까지 해놓으니 몸과 마음이 달아 부끄럼도 돌아볼 수 없게 되었어요. 그래서 뻔뻔스럽게 여쭌 것이야요. 어머님 말씀같이 그가 저를 잊을 리는 없어요, 버릴 리는 없어요. 그다지 다정한 그가 그럴 리가 있다고요? 어제 공원에서 단단히 맹서하였습니다. 각각 부모님께 여쭈어 들으시면 이 위에 더 좋은 일이 없거니와 만일 그렇지 않거든 멀리멀리 달아나겠다구요. 배가 고프고 옷이 차더라도 부모도 못 보고 형제도 못 보더라도 둘이 같이만 있으면 행복이라구요. 온갖 곤란과 갖은 고통을 달게 겪겠다구요. 정말 그래요. 저도 그 없으면 미칠 것 같아요. 어머님이 허락을 아니 하신다 할 것 같으면 저는 이 세상에 살아 있을 것 같잖아요.
희생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