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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일제치하/항일시대
· ISBN : 9788992775007
· 쪽수 : 213쪽
책 소개
목차
순국 100주년 추모사(열사의 외손녀 유성천 여사)
머리말
사진으로 보는 이준 열사 구국의 발자취
제1장 이준은 왜 헤이그로 갔는가?
1. 서론-민족사의 광맥을 찾아서
2. 을사늑약
3. 한국 공관에서 태극기가 내려지던 날
4. 일성(一醒) 이준 선생의 구국의 일생-국내 행적
제2장 만국평화회의(The Internati*nal Peace C*nference)
1. 서론
2. 평화운동의 기원을 찾아서-호라티우스에서 칸트까지
3. 초기 평화운동의 발자취(1815~1899)
4. 평화의 도시 헤이그(The Legal Capital *f W*rld, The Internati*nal Capital *f Peace & Justice)
* 왜 헤이그인가?
* 평화회의 초청(Invitati*n P*licy)
* 1899년 5월 18일의 헤이그 모습(A Sketch *f The Hague, May 18, 1899)
5. 평화회의(Peace C*nference)
* 19세기의 세계정치 기상도
* 러시아의 고민-황제 칙서(皇帝勅書)의 숨은 배경
-니콜라이 황제 칙서(1)
-니콜라이 황제 칙서(2)
6. 제1차 만국평화회의 개회(The First Hague Peace C*nference, 1899)
* 개회식과 연설
- 네덜란드 외무장관의 대회 환영사
- 제1차 만국평화회의 의장 개회사(1)
* 본회의와 연설
- 제1차 만국평화회의 의장 연설(2)
* 제1차 헤이그평화회의 진행과 결과(The Pr*ceeding & Results *f the C*nference)
- 제1차 만국평화회의 진행
- 제1차 만국평화회의 결과
7. 제2차 만국평화회의(The Sec*nd Hague Peace C*nference, 1907)
* 서론
* 대한제국이 초청되다
- 초청국 명단(프랑스어, 영어)과 초청서한
* 제2차 평화회의는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 네덜란드 외무장관의 개회사
- 의장의 개회사
* 회의장 밖 풍경
* 제2차 만국평화회의 진행
* 제2차 만국평화회의 결과
- 의사록(The Final Acts)
- 결론(c*nclusi*n)
제3장 이준 열사의 헤이그 행적-헤이그에서의 한국 독립운동
1. 구국의 여로
2. 헤이그의 태극기와 대한의 독립선언
* 헤이그 하늘에 나부낀 태극기
* "왜 대한제국을 제외시키는가?"
3. 네덜란드 수석대표의 한국 특사 호텔 내방
4. 네덜란드 외무장관 면담 신청
5. '축제 때의 해골'
6. '한국의 호소'
7. 재미 한인 동포들이 헤이그평화회의에 보낸 호소 전보
8. 평화회의장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제4장 강대국들의 헤이그 행적
1. 네덜란드에 온 일본 군함들과 대규모 일본 대표단
2. 헤이그에서의 일본의 감시
3. 한국 문제에 관한 러시아와 미국의 미온적 태도
4. 한국에 대한 네덜란드의 고민
제5장 이준의 죽음
1. "슬프다, 슬프다(S* Sad, S* Sad)"
2. 이준 열사의 장례
* 첫 번째 장례
* 두 번째 장례
* 세 번째 장례
제6장 이준의 죽음과 헤이그특사사건이 역사 발전에 미친 영향
1. 1905~1945년 역사의 맥
2. 일본의 한반도 합병의 초고속화
3. 항일운동의 촉진제
제7장 한국의 은인
1. 은인과의 대화
2.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스테드의 조언
3. 윌리엄 스테드는 누구인가?
제8장 이준 열사의 사인(死因)에 관한 풀리지 않는 의문
1. 심장마비설
2. 뺨의 종기설
3. 단독(丹毒)설
4. 자살설
5. 그 밖의 설
제9장 돌아오지 않는 밀사
1. 부재(溥齋) 이상설 열사
2. 이위종 열사-부자 열사의 위대한 발자취
맺음말
위대한 죽음, 천 년을 기억하리!
책속에서
19세기는 그때까지 유럽 중심의 세계질서에 일본과 미국이 이에 추가됨으로써 바야흐로 범세계적인 제국주의 정치 질서로 재편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은 1853년 미국의 페리(Perry) 제독이 몰고 온 흑선(Black ship)에 굴복하여 강제로 개국을 하게 된다. 변신에 능한 일본인들은 굴복의 치욕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약 300년 가까이 이어오던 봉건적인 막부체제(1603~1868)를 과감히 청산하고 메이지유신을 단행, 천황 중심의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채택, 정치체제를 국제 경쟁체제로 바꾸었다. 그러고 나서 구미 각국에 유학생들을 파견하여 현대기술과 학문을 배워다가 이를 자기 체질에 맞도록 수정, 적용함으로써 현대 문물의 발전을 시도했다.
1871년에는 중국과 통상협정을 체결하고, 같은 해 파리와 워싱턴에 주재공관을 개설하여 외교의 지평을 넓힌 다음, 선진 제국주의의 본을 따라 재빨리 해군력을 강화하고 아시아 대륙 진출을 서둘렀다.
그 첫 번째 대상은 불행히도 한국이었다. (57~58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