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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어린이 > 동화/명작/고전 > 외국창작동화
· ISBN : 9788992844390
· 쪽수 : 236쪽
책 소개
책속에서
그때, 내 컴퓨터를 쓰고 있던 사람이 내 목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았어. 여자애였지. 여자애들은 거의 똑같이 생겨서 구별이 안 돼.
긴 머리. 귀걸이. 가냘픈 목소리.
그러면 여자아이야.
나는 이 여자애가 누군지 몰랐어. 이 아이가 나를 싫어하는지 어쩐지도 알 수 없었고. 하지만 싫어할 가능성은 있지.
그 여자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그래서 나는 그 아이의 표정을 보고 알아내야 했어. 눈을 찌푸린 채 입술이 안 보일 만큼 입을 꽉 다물고 있는 표정. 아무래도 기분이 나쁘거나 화가 난 것 같았어. 하지만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지.
“너 지금 나한테 입김을 뿜어 대고 있잖아.”
여자애가 말했어.
“진짜 웃기는 애네.”
‘웃기다’라는 단어는 재미있다거나 우습다는 뜻을 나타내지만 이 경우에는 그렇지 않아. 이것은 이 여자애가 나를 싫어한다는 뜻이지. 아니,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나 때문에 진저리를 치고 있어. 대부분의 여자애들은 나를 보면 이렇게 반응해. 하지만 우리 엄마는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 언젠가는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여자 친구를 사귀게 될 거라고. 내가 얼마나 ‘특별한’ 사람인지 알아보는 그런 아이를 만나게 될 거라고. 하지만 나는 알고 있어. 나를 좋아할 여자애는 없다는 것을. 내가 무엇을 한다 해도, 아무리 열심히 노력한다 해도 말이야.
물론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지.
그랬으면 좋겠어.
내 생각이 틀리고 엄마 말이 맞았으면 좋겠어.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보통 내 생각이 맞더라고.
예일 뉴헤이븐 병원에 다녀온 며칠 뒤,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자폐증이라는 진단을 내렸어. 하지만 그 단어를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
자폐증.
나는 한참 후에나 그 뜻을 알게 되었어. 처음에 엄마, 아빠는 내가 특별한 아이라고 말했어. 다른 사람과는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간다고 말이야.
“엄마, 아빠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았단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말이야. 앞으로는 상황이 더 나아질 거야.”
아빠가 말했어.
“뭐가 문제인지 알게 됐어, 제이슨.”
엄마도 말씀하셨지.
“문제가 뭔지 알아냈으니까 고칠 수 있을 거야.”
부모님은 뭐가 문제인지 한 단어로 알려 주었어. 세 글자로 된 한 단어. 그게 내 이름이나 다름없어진 셈이야. 그밖에도 엄마, 아빠는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해 줬어. 하지만 나는 그때 이미 알고 있었어. 일반적인 말이라도 완전히 다른 뜻을 내포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야.
특별하다.
다르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좀 편안해지기도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