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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어린이 > 동화/명작/고전 > 외국창작동화
· ISBN : 9788992882835
· 쪽수 : 64쪽
· 출판일 : 2010-10-15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엄마가 마당에 서서 안나와 할아버지가 언덕길을 내려가는 모습을 지켜보셨습니다.
안나가 다리가 불편하신 할아버지를 모시고 산책을 나섰거든요. 자갈길을 따라 천천히 옥수수 밭 쪽으로 내려갔어요. 해가 졸음에 겨워 뉘엿뉘엿 언덕 너머로 숨어드는 시간이었어요. 낮 동안 개구쟁이처럼 파랬던 하늘이 수줍은 소녀처럼 빨갛게 물들어 갔어요.
……
“안나야, 귀를 기울여 보렴. 음악 소리가 들리지 않니? 옥수수 밭이 노래를 부르는구나.”
“에이, 할아버지. 옥수수 밭이 어떻게 노래를 불러요?”
“아냐, 잘 들어 봐. 바람이 노래를 실어다 준단다.”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땅에 내려놓고 손을 동그랗게 오므려 귀 뒤에 붙이셨어요.
“안나야, 할아버지처럼 손을 귀 뒤에 이렇게 대 보렴. 그리고 조용히 기다리는 거야. 조용히…….”
할아버지가 안나에게 미소 지으며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눈을 지긋이 감으셨어요.
안나도 할아버지처럼 몸을 꼿꼿이 세우고, 할아버지처럼 손을 동그랗게 오므려서 귀 뒤에 붙였습니다.
안나와 할아버지는 허수아비처럼 꼼짝 않고 나란히 서 있었습니다.
……
마른 옷수숫대 사이로 바람이 몰려와 휘감고 지나가자 사사삭 사사삭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여기저기서 불어온 바람 소리가 섞이더니 점점 커져서 정말 노랫소리처럼 들리기 시작했어요. 할아버지의 쉰 목소리와 같은 마른 소리였어요.
“아, 들려요! 할아버지, 진짜 노랫소리가 들려요! 그런데……, 꼭 할아버지의 목소리 같아요. 크흐흐, 사사삭 사사삭.”
……
할아버지가 팔을 뻗어 옥수숫대에서 옥수수를 하나 따서 겹겹이 싸인 껍질을 벗겨 내고 낟알을 떼어 내어 안나의 손에 쥐어 주셨습니다.
“할아버지가 네게 주는 선물이란다. 내년 봄에 심으렴. 이 쌈지에 넣어 줄 테니 그때까지 잘 가지고 있을 수 있지?”
……
“안나야, 할아버지에게 약속해 줄래? 내년 봄에 잊지 말고 꼭 옥수수 씨앗을 뿌리렴. 혹시 할아버지가 너와 함께 뿌리지 못하더라도 말이야. 너 혼자서라도 꼭 씨를 뿌리렴. 알았지, 응?”
할아버지가 천천히 그리고 아주 부드럽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안나는 할아버지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 수 있었어요.
“약속할게요.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내 옥수수 밭을 보실 수 있도록 태워다 드릴게요. 꼭 봐 주셔야 해요! 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안나의 대답을 듣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으셨어요. 그리고 다시 일어나지 않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