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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서양철학 > 서양철학 일반
· ISBN : 9788993722000
· 쪽수 : 352쪽
· 출판일 : 2009-04-13
책 소개
목차
1. 플라톤의 『국가』
정의는 강자의 이익인가? | 철학자가 왕이 되는 정의로운 국가 | 보이는 세계는 그림자에 불과하다 | 정의로운 사람이 행복하다?
2.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우리가 만들어진 목적은 무엇인가? | ‘행복’이란 말로 모두 표현할 수 없는 행복 | 올바로 행동하고자 한다면 중용을 택하라 | 관조하는 삶이 최고의 행복이다
3.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다섯 가지의 길 | 언덕 위의 신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4. 데카르트의 『제1철학에 관한 성찰』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 |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 믿을 수 있는가? |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 정신과 물질은 다른 실체다 | 신은 완전하므로 반드시 존재한다
5. 홉스의 『리바이어던』
국가가 없는 상태를 상상해 본다면? | 이성이 있는 자라면 자연법에 복종할 것이다 | 마침내 우리가 ‘원하는’ 리바이어던이 탄생하다 | 절대 권력, 과연 타당한가?
6. 로크의 『인간오성론』
관념은 본유가 아니라 경험에서 온다 | 대상의 속성에 대한 관념이 우리에게 인식을 제공한다 | 인간의 지식은 관념의 한계 안에 있다
7. 버클리의 『인간 지식의 원리론』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 | 로크의 구분은 잘못되었다 | 그런데 해답이 ‘신’이라니!
8. 흄의 『인간 오성의 탐구』
관념은 인상의 복사본이다 | 미래가 과거와 같을 것이라는 증거는? | 흄의 회의에 회의가 드는가?
9. 루소의 『사회계약론』
선하고 자유롭게 태어난 인간이 타락하게 된 이유 | 모든 사람이 같은 것을 잃고 얻는 사회계약 | 시민의 이익이 주권의 이익이다 | 일반의지를 거부하는 자는 욕망의 노예일 뿐
10.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형이상학은 왜 대접받지 못하고 있는가! | 형이상학은 가능한가? | 우리의 마음이 세계를 구성한다 | 흔들리는 사변적 형이상학의 토대
11. 헤겔의 『정신현상학』
역사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 ‘절대지’라는 유토피아를 향해 가는 길 | 헤겔의 결론, 과연 승산이 있을까?
12.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현상과 물자체는 인과 관계가 아니다 | 의지로서의 세계; 삶은 가능한 세계 중 최악의 세계? | 의지의 횡포에서 달아나기
13.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 | 혁명을 전제하지 않는 사회주의 실험은 실패한다! | 빗나간 예언과 적중한 예언 | 마르크스의 생각, 지금도 유효한가?
14. 밀의 『공리주의』
최대 행복의 원리에서 도덕성이 나온다 | 쾌락에서도 양보다 질이다 | 반론이 끊이지 않는 밀의 증명 | 공리주의가 말하는 정의
15.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신은 죽었다! | 인간은 초인의 수단이 되기에 가치가 있다 | 니체의 해결책, 과연 최상인가?
16. 포퍼의 『탐구의 논리』
과학이 비합리적이라고? | 귀납법을 버리고 반증의 방법으로! | 과학과 사이비 과학을 구분하는 법 | 과학이 긍정이 아닌 부정만을 말할 수 있다면?
17. 에어의 『언어, 진리, 논리』
빈학단의 논리실증주의 | 명제의 진위를 판별하는 에어식 검증 원리 | 철학은 정의와 분석으로써 진리에 도달하는 논리의 학문 | 윤리적 개념은 분석 대상이 될 수 없다 | 검증 원리의 태생적인 약점
18.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
이 세계를 구성하는 존재와 무 | 우리의 자유를 회피하려는 자기기만의 삶 | 타인은 지옥이다
19. 보부아르의 『제2의 성』
타자가 되는 것은 여성들의 운명인가? | 여성은 절대 타자다 | 헤겔주의와 실존주의의 잘못된 만남
20.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
언어의 의미는 곧 언어의 쓰임새다 | 단어의 의미를 알려면 ‘언어놀이’를 알아야 한다 | 철학의 문제는 대답될 수 없다
책속에서
플라톤이 말하는 정의가 얼마나 맘에 드는가?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들을 모두 고려해도 그다지 확신이 들지 않을 수도 있다. 플라톤의 정의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도덕성, 다시 말해 일상적인 개념의 정의와는 좀 거리가 있지 않나 싶을 것이다. 플라톤이 마음속에 그리는 전체주의적 이상국가가 정의로운 국가일 리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플라톤에게 응수하고 싶다면 미심쩍은 생각만으로는 안 될 것이다. 플라톤은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하기 위한 논거를 다듬어놓았으므로, 그에게 응전하려면 생각만 가지고는 안 되고 반드시 논증이 필요하다. 플라톤 이후 거의 모든 사람들이 대화편을 읽으면서 바로 그와 똑같은 우려와 그 밖의 다른 생각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다시 한 번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플라톤 이후 철학의 상당 부분은 플라톤에 대한 타당한 응전을 제시하는 작업에 바쳐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 플라톤의 「국가」 중에서 (본문 33쪽)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1908~1986)는 철학 외적인 분야에서는 뛰어난 소설가이자 사르트르의 평생의 반려자로 알려져 있다 (보부아르는 사르트르를 영향력이 큰 철학자로 언급한다). 보부아르가 사르트르의 철학에 미친 영향은 사르트르가 보부아르의 철학에 미친 영향만큼이나 컸다는 점이 분명해지고 있다. 그러나 보부아르는 그런 관계에 대해 사르트르보다 좀더 자주 언급한다. 어떤 이들은 보부아르를 페미니스트 철학자로 보기도 한다. 그의 책 「제2의 성(Le Deuxi?me Sexe)」은 어쨌든 여성의 본질을 실존주의의 시각에서 다루었으며 페미니즘, 아니 원조 페미니스트 입장에서 다룬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보부아르는 사람들이 자신을 실존주의자로 생각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페미니스트들은 보부아르를 페미니스트로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 보부아르의 「제2의 성」 중에서(본문 323쪽)
데카르트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자신이 난롯가에 앉아 글을 쓰거나 독서를 하면서 책을 들고 있는 것이 자신의 손이라고 순진하게 바라보는 꿈을 얼마나 여러 번 꾸었던가! 실제로는 깊은 잠에 빠져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는 상황에서 말이다. 꿈은 그 꿈을 꾸는 사람에게는 깨어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주 생생하게 느껴질 수 있다. 독자는 지금 이 책을 들고 있는 것이 자신의 손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아니면 손은 베개 밑에 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가? 어쩌면 손이 아예 없는지도 모른다. 조건이 참이면 감각은 믿을 만하다는 생각은 이제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 참이 되는 조건 자체를 꿈꾼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생시와 꿈을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내지 못하면 그 상황은 훨씬 더 나빠진다. 그 방법이 없다면, 다시 말해 두 상태의 차이점을 말하는 데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면 어떤 신념이라도 사실은 단지 그것을 꿈꾸었을 뿐인지도 모른다.
- 데카르트의 「제1철학에 관한 성찰」 중에서(본문 77쪽)
일부 철학자들의 삶을 돌이켜 보다 보면 기운이 빠진다. 철학자가 쓴 책이 불태워지거나, 아니면 아예 철학자 자신이 화형을 당한다. 한동안 신상을 유지하던 이들도 온갖 죄목으로 체포되거나 유배되고 독살되고, 목숨 부지를 위해서 도망을 가야 했다(총에 맞은 사람도 있는데 보통은 제자들한테서였다). 그런 운명에서 간신히 벗어난다 해도 살아 있는 동안 찬사를 받지 못했으며 외롭고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오늘날 위대한 철학자로 꼽히는 이들도 생전에는 비웃음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죽어서도 오랫동안 완전히 무시된 철학자도 있었다). 환호하고 숭배하는 제자들을 앞에 두고 강의를 진행한 철학자는 거의 없다. 유명 잡지의 표지에 실리는 일은 더더욱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모든 상황들에도, 철학자들 자신은 상당히 행복했던 것 같다는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는 확실히 더 행복했다. 철학자들은 많이 웃는다. 심지어 일부 철학자들의 자서전은 쾌활함이 넘쳐난다. 그들의 처참한 삶을 생각해 볼 때 철학책은 불행한 결말로 끝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 예상하지만, 이 또한 대체로 그렇지 않다. 지금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는 까닭은 지금 소개하는 철학책이 그런 면에서 ‘전설적인 예외’가 되기 때문이다. 바로 아르투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다. ‘염세철학’이라고 혹시 들어봤는가? 쇼펜하우어의 철학도, 쇼펜하우어 자신도 매우 염세적이었다.
-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중에서(본문 20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