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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93922325
· 쪽수 : 400쪽
· 출판일 : 2010-11-04
책 소개
목차
동기(Motive)
첫 만남(The First Brush)
첫걸음(An Initial Step)
거래(Big Deal)
거물(Big Shot)
작업의 룰(The Rule)
원죄(Origin Sin)
정보원(Informant)
부수적 손상(Collateral Damage)
다윗의 돌(David's Stone)
회복(Recovery)
언커버드(Uncovered)
불편한 진실(Sad but True)
협상(Negotiation)
사업은 사업일 뿐(Business is Business)
구사일생(Close Call)
새로운 국면(Assume a New Aspect)
공감(Consensus)
킥오프(Kick Off)
약속(Promise)
퀄리티 스타트(Quality Start)
빅뱅(Big Bang)
소멸(Extinction)
휴전교섭(A Cease-fire Parley)
자유(Get Free)
저자소개
책속에서
대학교 선배가 있다. 이 사람이 회사 잘 다니고 있는 내게 손짓을 했다.
“좋은 아이템 있는데 창립 멤버로 같이 일해 볼래?”
난 고개를 끄덕였다. 장고(長考) 끝에 악수(惡手)를 둔다고 했던가.
한 달 동안 고민한 결과가 그거였다.
당시 다니고 있던 회사 사장님과 상무님은 다행히도 내가 그만두는 걸 원치 않았다. 도전정신은 좋지만 이제 객기 부릴 나이는 지나지 않았느냐, 그러니 회사와 함께 끝까지 가 볼 생각은 없느냐 등등.
송구하게도 그런 만류를 정중히 거절하고 선배를 믿고 따라나선 것이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난 지금 백수 신세가 됐다.
내 건강을 위해 중간과정을 설명하는 일은 생략하기로 하겠다. 각종 협잡이 난무하는 사기꾼 집단 속에 발을 들여놓은 건실한 샐러리맨이 무얼 할 수 있었겠는가? 선배가 말하던 사업? 그건 시작도 못하고 망가졌다.
그런데 그 선배란 사람, 참 상종 못할 부류다. 사기꾼들 속에서 폼 잡는 것만 배워서 못된 짓만 골라서 했다.
직원은 월급도 못 받고 있는데 고급 승용차를 렌트해 다니고, 술집마담에게 오피스텔 얻어 주고, 영업하라고 만들어 준 회사 법인카드로 250만 원짜리 목걸이 사서 마담에게 선심 쓰고 술 퍼 마시고.
선배가 그러고 다닐 때, 난 봉급은커녕 빚만 점점 늘어났다.
선배가 추진하는 M&A만 성사되면 한 방에 역전될 수 있다고 믿으면서 하루하루를 견뎠다. 누군가 “난, M&A하는 사람이야.”라고 말하면서 접근하면 일단 주둥이를 때리고 다시는 상종하지 마라. 순도 99.9퍼센트 사기꾼에 협잡꾼이다.
살인범들은 신문 기사에 높은 관심을 보인다. 자신이 저지른 일이 발각되었는지,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등의 정보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지만, 일부 과시적이고도 자기애가 강한 부류들은 자신의 업적이 세상에 어떻게 보이는지를 가늠하기 위한 경우도 있다. 심지어는 언론의 방향이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흐르면 직접 연락해 방향을 바로잡아 주기도 한다. 기사를 읽다 말고 신문을 내려놓는 나를 보며 늙은이가 물었다.
“소감이 어때?”
난 불안에 떨고 있는 소심한 살인자도 아니고 정신병을 앓고 있는 연쇄살인마는 더더욱 아니다. 그저 시키는 대로 일하는 노동자일 뿐이다. 늙은이, 도대체 내게서 무슨 반응을 기대한 거야?
“글쎄요.”
사장은 제스처를 하며 뭔가를 말하려 했지만 결국 그만 두었다. 사장의 표정은 김샜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한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 컨설팅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신문에 난 것 때문이라면…….”
“신문에 나는 것은 당연해. 그 정도 인물이 살해당했는데 신문에 안 날 리가 있어?”
살해라는 단어에 유난히 힘이 들어갔다. 아, 그 얘기를 하려는 거였소? 무슨 말을 할지 짐작은 했지만 이런 경우엔 먼저 말하는 것보다 그냥 듣는 편이 낫다.
“아주 싼 값에 사람 죽여주는 놈들이 널리고 널렸는데, 왜 사람들이 굳이 우리 회사에 큰돈을 지불하면서 의뢰하는 줄 아나?”
그러고 보니 이 점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실업에 시달리다 보니 솔직히 돈 말고는 관심 가는 것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약간 다르다. 일반 회사 1년 치 연봉이 내 통장에 들어 있는 관계로 심적 여유가 생겼으니까. 난 어릴 때부터 선생님의 질문에는 맞든 틀리든 언제나 적극적으로 대답했다. 그런 나의 모습을 어떤 애들은 잘난 척으로 보며 싫어했지만 말이다.
지금 이곳엔 날 싫어할 만한 다른 아이들도 없다. 대답을 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신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신뢰지. 의뢰인 정보 보안에 대한 신뢰, 확실한 작업에 대한 신뢰, 사건이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 그 모든 것을 기대하기 때문에 비싼 돈을 주고 일을 맡기는 거지.”
업종을 막론하고 회사에 있어 고객과의 신뢰는 절대적이다. 신뢰가 없으면 회사는 이익을 낼 수가 없다. 지금의 경영환경은 고객의 돈이 아니라 신뢰를 먹어야만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