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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여행에세이 > 해외여행에세이
· ISBN : 9788993941531
· 쪽수 : 272쪽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여기 젊은이들의 뻔한 방황 이야기 하나 추가요!
1장 백야가 시작되는 여름, 아지트를 찾아서
자전거도로 | 맨발의 할머니 | 첫 번째 꼬레안 | 한없이 고요하고 한없이 눈부신 | 미래의 이웃들 | 도서관 사서 그리고 모히칸 스타일
2장 땅보다 물이 많은 이상한 동네
버스는 편지를 싣고 | 부럽다, 녀석들 | 그때,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 모두 저마다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 나에게도 언제나 그대로인 숲과 호수가 있었으면
3장 이미 아지트를 찾은 것 같아
핀란드의 일요일 | 마음이 기억하는 순간들 | 숲 속의 파티 | 알바르 알토가 일상인 곳 | 가장 좋은 대학은 어디죠? | 다이빙하기 좋은 날 | 홍콩 시티의 W
4장 알바르 알토, 그리고 자전거 도둑
알바르 알토와 함께 보낸 밤, 아니 낮, 아니…… | 비밀은 알바리의 투숙객에게 | 자전거 도난 사건 | 핀란드 경찰과 함께하는 동네 한 바퀴 | 필름을 구하라
5장 숲은 마법처럼 나를 빨아들이고, 모기는 내 피를 빨고
밤 기차의 열기 | 여행 동안의 징크스 | 예술 권하는 마을 | 이상한 숲 속의 나라 | 여행지의 도서관들
6장 순록들아 안녕, 맛은 별로 없었어
순록들이 나타났다 | 뜨거운 오후의 트래킹 | 자판기에서 돈이 나오네 | 다시 남쪽으로 | 비싸지만 비싸지 않은 | 날마다 도착하고 떠나는 사람들 | 삼겹살과 H
7장 잊지 못할 시간들이 흐른다
당신도 사서 고생 중이군요 | 행복은 오두막 103A호에도 있다 | 돌은 객석이 되고 나무는 기둥이 되고 | 가슴 뻥 뚫리는 전망 | 핀란드에 다시 와야 할 이유 또 한 가지 | 결론은 지금 정말 행복하다는 것
8장 어쩌겠는가, 핀란드에는 그것들이 있다
북극선 기념 촬영 | 헬싱키, 여행의 시작과 끝 | 우린 아지트를 찾은 걸까 | 여행은 아직 끝이 아니다
책속에서
해는 뜨지만 지지 않을 수도 있다. 백야가 시작되는 6월, 우리는 아지트를 찾아 핀란드로 떠났다. 일본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여행은 인간을 만든다”고 했는데, 나의 여행들이 내 인생에 어떤 도움이 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인도를 두 번이나 찾아간 것처럼 서울로 돌아온 이후에도 계속 생각나 다시 가보고 싶은 곳들이 있었다. 처음 가본 낯선 동네임에도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들도 있었다. 그런 곳에선 며칠이든 몇 주든 시간을 보내곤 하는데, 그러다 보면 의문이 생긴다.
‘내 남은 생을 모두 이곳에서 보내야 한다면 이렇게 마냥 좋을 수 있을까?’
‘그냥 놀러 온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이 사람들과 이곳에서 살아야 한다면 지금처럼 좋을까?’
이런 생각이 들면 덜컥 겁이 났다. 본격 인생 게임의 현장은 무척이나 치열하다는 것을 고국에서 지나치리만큼 학습한 탓일까? 결국 좋던 것도 갑자기 좋아 보이지 않았다. 아직 그만큼 확신을 가질 만한 곳을 발견하지 못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고향 대한민국에서만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운명도 그렇게 유쾌한 일은 아니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추어 보자면 말이다.
<여기 젊은이들의 뻔한 방황 이야기 추가요!> 중에서
사내의 이름은 ‘T’이다. 두 경찰관의 말을 빌리자면 T는 동네에서 유명한 문제아여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젊고 건장한 경찰관이 그에 대해 설명하며 한마디를 덧붙인다. “only in bad…….” 우선 T와 함께 문제아 듀오인 친구를 찾아보자고 한다. 맙소사, 이런 유명인사들이 내 자전거를 슬쩍하다니. 허탈한 웃음이 나온다. 꽃가게 주인 아주머니가 단번에 이름을 적어준 것도 무리는 아니다(그녀가 적어준 건 경찰관이 아니라 자전거도둑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두 경찰관은 특별히 갈 곳이 없으면 자신들의 밴에 같이 타서 찾아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약간 얼떨떨하지만 Y와 나는 차에 올라 멋진 경찰관들의 안내로 새위내찰로 주변 투어를 시작하기로 한다. 이들은 몇 군데에 전화를 걸고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우리를 안심시킨 뒤 T와 그의 친구가 평소에 자주 은신한다는 곳을 한 군데씩 들르기로 한다. 뻔한 곳에 숨지 않았더라도 조금 더 가봐야 무라찰로까지라는 게 그들 생각이다. 우리가 불안해하는 듯하자 젊고 건장한 경찰관이 짧게 한마디 덧붙인다.
“I know him.”
드디어 투어가 시작된다. 한 장소에 들러 T나 그에 관한 정보를 얻지 못하면 짧게 “Next”를 외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게다가 이게 어찌된 일인지 가는 곳마다 현지인만 알 수 있을 법한 빼어난 절경이다. 핀란드 젊은이들은 탈선도 이런 멋진 숲과 호수에서 한단 말인가. 갑자기 부러운 마음이 생기지만 “Next”는 연이어 들리고 Y와 나는 졸지에 패키지 여행 온 관광객이라도 된 느낌이다. 이제 자전거는 안중에도 없다. 단지 이 상황이 묘하게 웃기다. Y와 나는 뒷좌석에서 연신 킥킥댄다. 경찰관들의 표정도 그다지 심각해 보이지는 않는다.
이번엔 길에서 T의 어머니를 만났다. 이것도 순전히 우연이었다. 젊고 건장한 경찰관은 우리에게 T의 어머니를 소개했는데 졸지에 안면을 트게 된 우리와 그의 어머니가 얼떨떨해하는 찰나, 젊고 건장한 경찰관이 그녀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T가 꼬레 Korea 여행자들의 자전거를 훔쳤다고. T의 어머니가 머리를 감싸쥔다. ‘아이고 아주머니, 저희가 자전거 묶고 다닐 걸, 죄송해요.’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렇게 한참 돌다 마을 한 끝에서 익숙하게 생긴 자전거가 길가에 덩그러니 버려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이상한 추격전의 결말을 고려할 때 T가 대범한 범죄자는 아닌 듯하다. 경찰관들은 곤봉을 들고 혹시 주변에 T가 있는지 확인한다. 하지만 T는 온데간데 없다. 그는 어디로 갔을까. 버려진 자전거가 나의 자전거임을 확인해주자 인자하게 생긴 경찰관이 가볍게 웃으며 밴 쪽으로 다가왔다. 이윽고 우리가 탄 뒷좌석 문을 열어주며 그가 말했다.
“Hyvaa~”
난 이날 ‘휘배’가 어떤 상황에서 쓰는 말인지 확실히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참고로 경찰용 밴의 뒷좌석은 몹시 불편하므로 추천하지 않겠다.
<핀란드 경찰과 함께하는 동네 한 바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