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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잡지 > 대중문화/예술
· ISBN : 9788994027623
· 쪽수 : 128쪽
· 출판일 : 2016-11-17
책 소개
목차
특집 : 시간 없는 시간들
변형하는 시간 ..... 스벤 뤼티켄, 이한범 옮김
아프리카 TV의 지속 시간: 리얼의 무대화 ..... 강덕구
게임 오버와 서사 ..... 권택경
모든, 첫 번째 시간 ..... 현시원
역사의 성좌를 향하여: 양혜규의 블라인드 작업에 관한 노트 ..... 장지한
Interview
A / B : 오민 × 방혜진 대담
Review
검색 엔진의 시대와 이미지의 새로운 위상: 데이비드 조슬릿의 『예술 이후』 ..... 문혜진
좀비를 자세히 보고 싶어 가까이 다가갔더니 그만 죽어 버린 건에 대하여 ..... 김보년
아쿠아리움과 잠수사의 시선 ..... 이정빈
Correspondence
아다치 마사오를 사이에 둔 편지 (2) ..... 김태용, 박솔뫼
저자소개
책속에서
"실제 이미지를 없애고, 소리의 숲속에 놓인 관객의 상상에 집중함으로써 롤러의 작업은 영화가 어디에나 있는 것이면서 동시에 어디에도 없는 것이 되었음을 알렸다. 그의 작업은 필름을 상영하는 것이 문화적인 제의로 여겨지던 약 20여 년간의 시네필 시대 막바지에 위치한 것이었다. 블룸처럼, 롤러가 영화에 개입하던 시기는 내가 '영화적인 것(cinematic)'이라고 일컫는 것이 전통적인 영화의 환경에서 점점 분리되는 때였다. 1980년대가 도래하고 홈 비디오가 급속도로 일반화되면서 영화가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것은 더 빈번해졌으며, 이는 새로운 영화적 예술(cinematic art)의 시대에 그 정점을 맞이했다. 장뤽 고다르에게 영화라는 용어는 단순히 매체가 아니라 이제는 잃어버려 돌이킬 수 없는 사회 시스템 전체를 의미했다. 만약 영화가 필름 생산과 분배에 관한 특정한 체계라면, 영화적인 것은 비유로나 주된 내용에서 문화적으로 연결된 체계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영화적인 것은 물적 지지체로서의 필름과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필름이라는 매체, 장치들, 그리고 생산체계와 결별한다는 점에서 포스트-시네마(post-cinematic)라고 말할 수 있지만, 여전히 영화의 역사에 속해 있다. 즉 필름의 이후로서의 포스트-시네마인 것이다. 작품에서 프레임으로, 에르곤(ergon)에서 파레르곤(parergon)으로. 즉 의미가 발생하고 사회적 상황들이 생산되는 생산 장소로서의 영화로 이동하는 것이다."
(스벤 뤼티켄, "변형하는 시간", 《오큘로》 003호)
"현대 영화의 서사는 가장 미세한 층위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이야기다. 이에 반해 아프리카 TV의 채팅창은 여러 사건을 만들어 내도록 유도하지만, 이는 단일한 서사가 아니라 수많은 입이 내뱉는 수다의 집합일 뿐이다. 이야기는 성립되지 못하고 조그만 수다의 블록들이 존재한다. 아프리카 TV의 이야기는 BJ의 발화와 몸짓과 시청자의 리액션이 서로 교환되면서 발생하는 어떤 상태에 가까우며 이 상태를 초래하는 것은 리얼리티 스펙터클로서의 지속이다. 이제 인터넷 방송의 채팅창은 "하층 계급이나 모험을 좇는 소수의 젊은이들이 자주 드나들던 몇몇 작고 더러운 영화관"의 지위를 차지한다. 인터넷 방송의 생중계 포맷과 극단적인 행위, 저화질 이미지, 그리고 지속이 '리얼'을 조건화한다. 즉 '리얼'을 무대화하기 위한 제도적 공간이 마련되며 이는 앞서 말했던 남한의 남성 하위문화와 결속된 형태로 나타난다. 애초에 이 글에서 밝히고자 하는 바는 길고 긴 지속이 '리얼'함을 환기한다는 것이었다. 많은 이들이 지속에서 윤리적 가치를 찾지만 리얼을 강조하는 영상의 문법은 비윤리적이라는 역설적 상황이 눈에 띈다."
(강덕구, "아프리카 TV의 지속 시간: 리얼의 무대화", 《오큘로》 003호)
"1862년 7월 4일은 어떻게 남아 있게 된 것일까? 루이스 캐럴이 이야기를 시작한 '첫날'이 아니라 '첫 번째 날'이었다는 것을 나는 이렇게 받아들인다. 루이스 캐럴은 7월 4일부터 '지속하는 시간'으로서 날마다 이야기를 이어 나갔던 것이 아니라 7월 15일, 건너뛰어 9월 10일, 어쩌면 겨울에는 뱃놀이를 사양했다가 1863년 4월이 되어서야 이야기를 시작했을 수 있다. 단절되었던 사건이 새로운 탐정을 만나 다시 형광등을 쪼이게 되어 일어나는 모양새가, '첫 번째'라는 표식에는 있다. 첫 번째라는 것은 두 번째와 무지막지한 시간의 갭이 있어도 어쩔 수 없는 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장담할 수 없는 시간, 깨진 시간, 그러니까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다시 올지 지금은 모르는 시간. 그러나 처음이 마지막이 될 거라고 굳이 이별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막연한 언약 같은 것은 필요 없는 시간."
(현시원, "모든, 첫 번째 시간", 《오큘로》 003호, 54쪽)
"왜 블라인드인가? 양혜규는 자신이 블라인드에 매혹된 이유에 대해 "특정한
형태를 만들지만 그 공간을 온전히 에워싸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블라인드는 "부분적으로 공간을 구획하고", "시각 혹은 다른 감각들을 온전히 차단하지 않은 채 공간 주위로 운동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작가의 블라인드가 설치된 공간을 떠올려 보자. 블라인드를 중심으로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구획되고(동시에 해체되고) 그 사이사이를 빛과 향, 또는 소리가 안과 밖을 넘나든다. 이렇게 밖에서 안으로, 안에서 밖으로 운동하는 다층적인 감각들은 마찬가지로 내부와 외부를 넘나드는 관객의 몸(혹은 시각)을 통해 지각된다. 다시 말해 작가가 블라인드를 선택한 건 '일상적인' 사물의 물질성 때문이라기보다 그것이 구축해 내는 구조, 그리고 그 결과 구성되는 공간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이 형식을 역사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모더니즘의 예술가들 역시 이러한 양가적인 형식에 매혹되었다. 그것은 모더니즘의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리드다."
(장지한, "역사의 성좌를 향하여 : 양혜규의 블라인드 작업에 관한 노트", 《오큘로》 003호



















